온몸으로 지휘.. 장애학생 오케스트라의 '악보'가 되다

고양/정경화 기자 2015. 12. 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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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향한 남다른 열정으로 묵묵히 '스승의 길'을 걸어온 교육자들이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했습니다. 자랑스러운 12명의 수상자들을 소개합니다.

['2015 올해의 스승상' 수상 홀트학교 박에스더 교사]

한글 잘 못읽는 학생 위해 직접 '숫자 악보' 만들어

"준비하는데만 20분 걸려… 불협화음이라도 좋아요"

지난 27일 오전 9시 30분 경기 고양시 홀트학교 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는 흑인 영가 '쿰바야'가 흘러나왔다. 단원 26명이 박에스더(44) 교사의 지휘에 맞춰 바이올린과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을 연주했다. 선율이 흥겨운 데다 다섯 음계로만 되어 있어 단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다. 플루트 솔로 부분에서 바이올린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너무 신나게 연주하느라 한 단원의 바이올린 활이 끊어지기도 했다.

박 교사는 온몸으로 지휘했다. 단원들과 한 명씩 눈을 맞추고 발을 구르고 왼팔을 크게 휘저었다. 오른손은 마치 활을 쥔 듯 바이올린 켜는 모습을 흉내 내고, 큰 소리로 음계(音階)를 불러 박자를 놓친 학생이 다시 따라오게 했다.

지난 2012년 창립한 홀트학교 '예그리나 오케스트라'는 지적 장애와 자폐, 지체 장애 등이 있는 초·중·고교생 26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3년 교육부 지정 학생 오케스트라로 선정됐고, 그해 6월 경기도 청소년 관악제에서 일반 학생들과 겨뤄 우수상을 받았다. 임경애 홀트학교 교장은 "공연이나 대회를 치를 때마다 학생들의 집중력과 자신감, 자립심이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 학교 오케스트라는 박에스더 교사가 2008년 '숫자 악보'를 고안한 데서 시작됐다. 오선 악보의 계 이름조차 읽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대신 '1, 2, 3, 4, 5, 6, 7'로 숫자를 붙인 것이다. 예를 들어 동요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는 '53 53 565-35 31 232-'라고 표시한다. 박 선생님은 초등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곡과 학생들이 좋아하는 동요를 더해 100여 곡을 숫자 악보로 고쳤다. 신기하게 아이들이 평소보다 몇 배는 쉽게 숫자 악보를 익히고 외워 연주했다. 박 교사는 "한글도 잘 읽지 못하는 학생이 어느 날 멜로디언으로 '강아지똥'을 연주하더라"며 "음악적 감성이 지적 장애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오케스트라가 모여 연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날 아침도 연습실에 모여 자기가 앉을 의자를 직접 가져오고, 악기를 조율하는 데 20분쯤 걸렸다. 자리에 앉았나 싶더니 어느새 2명이 벌떡 일어나 뛰고, 다시 앉혀놓으면 이번엔 반대쪽에서 "활이 끊어졌다"며 선생님을 찾는다. 한 학생은 연주가 제 맘대로 되지 않는지 활을 바닥에 찧으며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박 교사다. 그는 "제 역할은 아이들이 음악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조용해진 학생들은 이내 연주에 집중했다.

오는 23일 크리스마스 음악회를 준비 중인 예그리나 오케스트라는 요즘 캐럴을 배우고 있다. '울면 안 돼' 연습 도중 신이 난 막내 진영이(8·바이올린)가 일어나 빙글빙글 춤을 췄다. 박 선생님은 진영이와 장단을 맞춰 함께 몸을 흔들었다. "저는 아이들의 연주가 완벽한 '클린' 연주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스트레스만 될 테니까요. 평소엔 음정·박자에 예민한 제 귀가 우리 아이들의 불협화음은 아름답게만 들리니 참 신기한 일이지요."

[부산 사상고 김승만 교사] 25년간 과학교육 매진

교직 생활 25년 동안 쉽고 실용적인 과학 교육에 매진했다. 학생들의 과학 동아리 활동을 지도해 15년간 제자 700여 명과 함께 40개 이상의 상을 받았고, 2010년부터 과학 학습 홈페이지 '사이언스 ABC'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교수법과 수업 내용을 교사·학생들과 공유했다. 미국 물리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등 '연구하는 스승'의 전범을 보였다.

[전북푸른학교 김정은 교사] 장애학생교육 '헌신'

30년간 푸른학교에 재직하며 장애인 특수교육에 헌신했다. 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늘푸른 예술단'을 창단, 학생들의 자신감과 재능을 키워주고 있고 현재도 매일 아침 전교생을 대상으로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를 가르치고 있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장애 학생들을 위해 교사 장학금 조성을 제안해 실현했고, 수시로 사비를 들여 학생들 간식과 악기를 사주는 등 장애 학생 교육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충북 양강초 류원호 교사] 농촌 어린이에 발명교육

'발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촌·벽지 지역 어린이들에게 알찬 과학 교육을 전하고 있다. 영재교육원 발명 영재 강사로 활동하며 교내에서 과학발명 동아리, 토요유레카 교실 등을 운영했고 제자들과 '상수리 과학발명 동아리'를 조직해 다양한 전국 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는 등 농촌 아이들이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경북 정평초 박명숙 교사] 수업 컨설팅·교사 양성

35년간 과학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신규 교사들에게 융합과학(STEAM) 교육에 대한 다양한 수업 컨설팅을 제공하는 수석교사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수석교사가 배치돼 있지 않은 소규모 학교를 찾아가 재능 기부를 하고, 초임 교사들의 수업 계획안을 구체적으로 첨삭 지도하며 우수 교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학교 부적응 학생들에 대한 상담 활동도 실시하고 있다.

[충남 차동초 서정숙 교사] 탈북학생 맞춤형 교육

전교생 100여 명 중 36% 이상이 탈북·다문화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를 전국적인 다문화 모범 학교로 만들었다. 탈북 학부모 연합 동아리 '친친엄마', 북한·몽골 어린이 돕기 운동, 단짝친구 홈스테이 등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한때 재학생 45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를 되살렸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다문화 교육 석사학위를 받고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 숭인초 이소정 교사] '행복한 독서교육' 운영

'행복한 독서교육'을 목표로 쉽고 재미있는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맞벌이 부모가 많아 문화·예술·체육 활동을 접할 기회가 적은 아이들을 위해 연 10회 이상 교내 독서 행사를 기획하고, 독서기록장, 독서인증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갖고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사의 수업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독서 연계 수업 방안도 보급하고 있다.

[대전 충남기계공고 이재범 교사] 어려운 제자 위해 모금

교직 생활 38년 중 30여 년을 모교에서 가르치며 졸업 전까지 학생들이 1~2개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자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12개 전기 관련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자기 계발에 매진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동문회 등을 통해 매년 300만~3000만원의 장학금을 유치하는 등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강원 화계초 장대희 교사] 시골 분교서 예술 교육

폐교 위기에 직면한 시골 분교 학생들을 상대로 보컬밴드, 골프, 바이올린, 음악 줄넘기, 전래놀이 등 다양한 문화·예술·체육 교육 활동을 펼쳐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낙후된 학교 건물의 리모델링을 추진해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고, 강원도의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경기 화수고 장정훈 교사] 진로맞춤형 교육 운영

교직 생활 20년 중 17년을 3학년 담임과 진로진학부장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했다. 화학 특성화, 과학 클러스터 등 적성에 맞는 진로맞춤형 교육과정과 학생 동아리를 만들고, 교사들과 진로진학연구회를 조직했다. 대외적으로는 대학교 입학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전문성을 쌓았다. 수능 이후 프로그램 운영을 주도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기 힘들었던 인문학적 소양과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경기 부발중 채용기 교사] 학교 스포츠클럽 활성화]

학교 스포츠 클럽을 활성화시켜 학생들에게 평생 체육의 기초를 만들어주고 있다. 축구부 감독, 사격부 감독도 도맡아 선수 육성과 학생 건강에 힘썼고, 학생들이 전국대회 우승 등 우수한 성적을 거둬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다문화 가정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휴일에도 학교로 출근해 탁구, 축구 등 예체능 교실을 열어 소외된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전북 전주신일중 최금란 교사] 흡연 예방 중심학교로

38년간 보건교사로 일하며 지역사회와 학생들의 금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학교 부적응 학생을 상담하며 금연 치료의 중요성을 인식, 꾸준히 흡연 예방 중심학교를 운영했고 연평균 400시간 이상의 직무연수를 받아 자기 계발에 앞장서는 모범을 보였다. 청소년적십자(RCY) 활동을 이끌며 학생 단원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응급처치법을 가르치는 재능 기부를 펼쳤다.

주최: 교육부, 조선일보, 방일영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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