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정확한 한문고전 번역서 없어 안타까웠죠"

이선민 선임기자 2015. 11. 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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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번역 활동 공로패 받은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 20대 후반에 매료돼 美 유학 포기 한문 교육도 병행.. 3만여명 배워 최근엔 DB 개발 등 정보화 주력

"월탄 박종화, 두계 이병도, 외솔 최현배, 일석 이희승, 조지훈, 김동리, 홍이섭 선생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을 모시고 우리 고전과 인생에 대해 배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흘렀네요."

이계황(77) 전통문화연구회장은 우리나라 한문 고전 번역의 산증인이다. 그는 한국 고전 번역의 산실인 민족문화추진회(이하 민추)가 만들어진 직후인 1966년 5월 서무계장으로 들어가 편집부장·사무국장·이사를 거치며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민추를 떠난 뒤에는 1988년 전통문화연구회를 만들어 동양 고전의 번역과 보급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오는 30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한국 고전 번역 50년' 기념식에서 원로 한학자인 정태현(79)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와 함께 공로패를 받는다.

성균관대 법대와 대학원을 나온 이씨는 미국의 대학원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인의 소개로 민족문화추진회에 들어갔다. 1965년 11월 학술·예술계 원로 50인이 중심이 돼 한국 고전의 현대화와 전통문화의 계승을 내걸고 출범한 민추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1966년 6월 현판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돈이 좀 모이면 미국으로 가려던 이씨는 민추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사무실에 나오시는 여러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전통문화에 눈뜨고, 성락훈·조규철·조국원·신호열 선생 등 당대 최고의 한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열하일기·목민심서 등을 읽으면서 점차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민추 재직 시절 보람 있었던 일로 한국 고전 번역의 장기 계획 수립과 회관 마련을 들었다. 민추는 '연려실기술'을 시작으로 '조선왕조실록' 등을 번역했는데 좀 더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윤남한·이동환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고전 현대화 계획서를 만들었다. 또 설립 이래 이곳저곳 떠돌던 민추는 노신영 국무총리와 이한동 민정당 사무총장 등의 도움으로 1986년 구기동에 회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씨는 이 과정에서 책을 만들고 사무실을 운영하느라 과로로 쓰러져 민추를 떠나게 됐다.

이씨는 건강이 좀 회복되자 1988년 전통문화연구회를 설립했다. 안병주·송재소·신승운 교수, 한학자 성백효·정태현씨 등 민족문화추진회에 있을 때 맺었던 인연이 자산이 됐다. 서울 낙원상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동양 고전 번역과 한문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민추에서 우리 고전을 번역하면서 그 뿌리가 되는 동양 고전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기본적인 고전조차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집중적으로 작업했지요. 또 동양 고전을 이해하는 저변을 넓히려면 한문 보급이 필요해서 일반인 교육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전통문화연구회는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소학(小學), 고문진보(古文眞寶), 통감절요(通鑑節要), 장자(莊子), 설원(說苑) 등을 국역했고, 중국 유가(儒家)의 대표 경전들에 주석과 해설을 붙인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대학생 대상으로 시작했던 한문 교육은 점차 중년과 여성 대상으로 옮겨져 3만3000명이 거쳐 갔다. 디지털 혁명에도 빨리 적응하여 2000년 '사이버 서당'을 개설해 한문 교육에 활용했고, 최근에는 동양 고전의 정보화에도 관심을 가져 '동양고전종합DB' '동양고전어휘DB' 등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이다.

이계황 회장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전통 시대에 중국이 한자 문화권의 중심이었고, 근대 들어 일본이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등을 통해 동양 학술계를 제패했듯이 이제는 한국이 한문 고전과 정보화를 연결해 한자 문화권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일의 삼국정립(三國鼎立)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서 문화의 융합을 이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동양 고전의 국역·교육·정보화가 삼위일체가 돼야 합니다."

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도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이 회장은 "팔자에 맞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병이 낫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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