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시민사회 변화 이끈 반세기

2015. 11. 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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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백낙청 없는 창비’로

백낙청, ‘창비’ 편집인 공식 퇴임
‘신경숙 표절’ 논란 대응 관련
“한국문학 품격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 기울여”
편집인 없이 한기욱 교수 주간 내정

“창비 50년은 시련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의 퇴임을 준비하던 최근 반년 남짓은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위기와도 또 다른 시련의 기간이었습니다. 물론 상당 부분 자업자득이며 새로운 각오로 제2의 50년을 출발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기에 원망보다 감사가 앞섭니다. 그렇다 해도 오늘 수상하신 여러분의 명예를 위하여, 특히 창비를 통해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는 세 분 신인을 위해, 창비는 어쨌든 부끄러움보다 긍지를 느낄 일이 더 많은 동네임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25일 저녁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출판사 창비의 통합 시상식 폐회 인사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창작과 비평>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1966년 1월 약관 스물여덟 나이에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지 꼭 50년 만이다. 백 교수는 “저는 계간지 일에서만은 깨끗이 손을 뗄 작정”이라며 자신의 퇴임 이후 창비 후속 체제 및 새 계획 등에 대해서는 “새해 초에 신임 발행인, 주간, 부주간 들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유신과 신군부의 군사독재, 민주화 국면과 신자유주의의 전일적 지배에 이르는 반세기를 거쳐 온 소회가 적지 않을 텐데, 백 교수는 특히 지난 6월 불거진 신경숙 표절 논란과 그에 대한 자신과 창비의 대응에 퇴임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한 작가의 과오에 대한 지나치고 일방적인 단죄에 합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패한 공범자로 비난받는 분위기에서, 그 어떤 정무적 판단보다 진실과 사실관계를 존중코자 한 것이 창비의 입장이요 고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더 큰 뭇매를 자초하기도 했습니다만, 한 소설가의 인격과 문학적 성과에 대한 옹호를 넘어 한국 문학의 품위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표절 시비와 그에 대한 창비의 대응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독자와의 소통능력이나 평소 문학동료들과의 유대 형성, 사내 시스템의 작동 등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면서도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어떤 ‘기본’을 어렵사리 지켜낸 것만은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낙청 편집인의 일선 후퇴로 <창작과 비평>은 ‘백낙청 없는 창비’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창비 주간과 발행인을 거친 문학평론가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는 “최근 2~3년 사이 백낙청 선생의 화두가 ‘대전환’이었다”며 “창비 역시 ‘백낙청 이후’라는 대전환을 맞는 셈인데, 새로운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자면 백 선생이 정말로 손을 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 교수는 “백 선생은 뛰어난 문필가이자 사업가적 능력도 지닌 분이라서 백 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창비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이제는 건강도 챙기면서 좋은 글을 쓰는 데에 주력하셨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창비 부사장을 지낸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백 선생은 국내에서 4·19를 겪지는 않았지만 창비 창간은 4·19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가능했다고 본다”며 “김동리·조연현·서정주가 주도하던 50, 60년대 ‘순수주의’ 문학 체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연 것이 창비와 백 선생의 문학사적 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백 선생 퇴임 뒤 어떤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백 선생의 강력한 자장은 어떤 식으로든 작동하지 않을까 한다”며 “백 선생 체제의 창비가 사회과학 담론에 힘을 쏟으면서 문학 쪽에는 소홀한 감이 있는데, 앞으로의 창비는 문학이 대폭 강화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1970년 김현·김치수·김주연과 함께 <문학과 지성>을 창간해 ‘창비·문지 양대 계간지 시대’를 연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엊그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양김 시대가 역사 속으로 들어갔듯이 백낙청 선생의 퇴진으로 창비·문지가 주도하던 계간지 시대도 마지막 단계에 이른 느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백 선생과 창비는 우리 문단과 사회에 계간지 문화를 일으켰고 한글 세대 문학을 키웠으며 이데올로기적 금기를 극복하려 노력함으로써 한국 문학과 문화, 시민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창작과 비평> 창간 논의에서부터 깊이 관여했던 원로 언론인 임재경 창비 편집고문은 “남북 분단 해소라는 큰 과제에 백낙청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한 지식인은 많지 않다. 분단체제론을 이론적으로 설파하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활발한 실천 활동을 펼쳐온 이가 백낙청”이라며 “창비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지식인, 문필가, 통일운동의 이론가요 실천가로서 역할은 계속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낙청 편집인과 백영서 주간, 김윤수 발행인이 동반 퇴진한 뒤 후속 체제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후임 편집주간으로는 백낙청 교수의 제자이자 현 부주간인 한기욱 인제대 교수(영문학)가 내정된 상태다. 한편 편집인은 따로 두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백 교수의 영향력이 어떤 식으로든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최재봉 선임기자, 한승동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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