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스토리] 마법같은 선율..건반 위의 '젊은 거장 ' 손열음

입력 2015. 11. 13. 11:42 수정 2015. 11. 13. 12: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니저 없이 홈피 관리서 호텔·항공기 예약까지 모두 셀프..안정된 삶보다 사회적 역할 고민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그녀의 서른살 이야기

“손열음이 치는 거 멋있어가지구…”

드라마 ‘밀회’의 주인공 이선재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스페인 광시곡’ 연주를 듣고 따라친다. 이선재는 퀵서비스 배달원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다. 이 드라마를 본 손열음은 이렇게 말한다. “이선재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보고 싶다면 TV를 켜면 된다!”

다섯살부터 시작된 수련, 부모와 스승의 뒷받침, 후원자의 지원에 힘입어 세계적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탄생했다. 올해 나이 서른. 부와 명예를 누리는 안정된 삶보다는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젊은 거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손열음은 올해 10월 개관한 금호아트홀 연세에 구비된 피아노를 직접 골랐다. 현재 손열음이 거주하고 있는 독일 하노버는 피아노 제조업체 스타인웨이 공장이 있는 함부르크에서 한시간 거리다. 손열음은 “피아니스트들은 리허설을 하고 바로 본공연에서 쳐야하니까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피아노 위주로 서너개를 우선 골랐다”며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선택한 피아노는 성격이 좀 강하고 색깔이 있는 편이라 매력을 느꼈다”고 소개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스케줄, 홈페이지 관리도 혼자 척척=손열음은 지난달 한국, 일본, 중국, 크로아티아를 오갔고 이달에도 홍콩, 예루살렘을 거치며 바쁜 연주 일정을 소화한다. 그런데도 매니저 대신 혼자서 항공권ㆍ호텔 예약을 척척 해내고 자신의 홈페이지 관리도 직접 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메이크업도 스스로 해낸다.

“제가 항공권 예약을 항공사 직원보다 잘해요. 한번은 항공사 직원이 항공편을 못 찾길래 제가 편명 불러주면서 ‘이거 끊어주세요’하니까 ‘어떻게 찾았냐’며 놀라더라고요. 호텔도 하도 많이 예약하다보니 호텔 예약 사이트 VIP예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하게 되요”

손열음은 올해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매니지먼트사 ICA와 계약을 맺었다. 그래도 공식 홈페이지 관리는 여전히 자신의 몫이다.

“예전에는 웹디자이너를 고용해 홈페이지를 관리했었죠. 하지만 제 요구사항을 일일이 말하기가 번거로웠어요. 요새 홈페이지 만들기에 재미가 들려서요. 친구들한테도 ‘너 홈페이지 있어?’ 이러면서 만들어주고 있어요”

손열음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배운 솜씨로 무대에 오르기 전 직접 메이크업을 한다. 대학 졸업 연주회 때 선배, 동기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실력이다.

손열음은 이처럼 연주 외에 다른 일들까지 혼자 해내는 것이 벅차다고 투정부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러시아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 대회장에 찾아갔던 어른스러운 모습 그대로다.

“그때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기 위해 혼자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무서웠죠. 그래도 누가 같이 갈 수도 없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당시에 키가 지금 키랑 같아서 어른만하긴 했어요”

교사인 손열음의 어머니는 손열음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다음날 한국에서 날아왔다. 어머니는 삼일간 손열음과 함께 있다 개학을 앞두고 다시 떠났다. 이 대회에서 손열음은 2위를 차지했다.

이후 세계 각지로 연주하러 다닐 때도 손열음은 혼자다. 하지만 혼자 있어도 “진짜 안 심심하다”고 한다.

“공연기획사에서 운전기사를 대동하게 해주면 저한테는 그게 벌이예요. 누가 절 기다리고 있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가야하는 것을 못 견뎌요. 서울에서도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녀요”

▶대범한 서른살 피아니스트=수없이 연주 여행을 다니다보면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기차가 멈춰서는 일도 빈번하다. 고생 끝에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피아노가 안 맞을 때도 있다.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 달리 피아니스트들은 공연장에 있는 피아노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어릴 때는 피아노를 가리긴 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그래봐야 저만 손해니까요. 확실히 다른 악기 연주자에 비해 제가 덜 예민한 것 같아요. 아무데서나 잘 자기도 해요”

음악가들은 예민할 것이라는 선입관과 달리 털털하다. 손열음의 어머니에 따르면 어릴 때는 낯가림이 극도로 심해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겁내던 아이였다. 하지만 음악에 관련해서는 자신의 주장이 확고했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팀장은 “손열음이 16살일 때부터 봐왔지만 한번도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손열음의 연주를 본 평론가나 관객들은 “자신감 넘친다”는 평가를 하곤 한다.

“자신감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둬야할 지 모르겠어요. 어떤 곡은 자신있지만 어떤 곡은 진짜 어렵거든요. 그래서 누가 제 연주를 좋아한다고 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없어요. 무대 위에서 제가 재미있어하고 너무 좋아하는 것을 자신감있다고 보시는 게 아닐까요”

타고난 체력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연주가 스스로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기운이 빠진다.

“엄청난 마법같은 순간을 창조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안됐을 때(웃음), 관객 반응이 덜한 것같다는 느낌이 들 때 신경 쓰이고 미련이 남아요. 커튼콜보다는 연주하고 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저한테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음반 녹음할 때가 힘들어요.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니까요”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결선 무대였다고 한다. 연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멈추지 않고 계속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손열음이 2위, 조성진이 3위를 차지했다.

손열음은 내년 2월 두번째로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개최한다. 지난 2013년 첫 독주회에 이어 3년만이다. 이번에는 1910~1920년에 작곡된 라벨, 스트라빈스키, 거슈윈의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작곡된 지 딱 100여년이 지난 곡들을 제 나이에 연주해보고 싶었어요. 처음 발표될 당시에는 기존 음악들과 완전히 다른 음악들이었죠. 독주회는 3년에 한번씩 하려고 해요. 다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독주회보다 힘들지 않냐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독주회가 훨씬 힘들어요”

독주회는 두시간여 동안 피아니스트 혼자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 손열음은 독주회 한 번 할 에너지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열번에 앙상블 연주 스무번도 하겠다고 말한다.

“제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레퍼토리(연주곡목)가 많은 편이죠. 제가 치고 싶은 곡들을 죽기 전까지 무대에서 한번씩 다 쳐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한 15~20% 정도는 친 것 같아요”

▶간섭하지 않은 어머니와 개성을 살려준 스승=손열음이 처음 관객들 앞에서 피아노를 친 것은 6살 때 원주 치악예식장에서였다. 이 때부터 손열음의 어머니 최현숙씨는 많으면 일주일에 다섯번 딸의 레슨을 위해 원주에서 서울까지 운전했다. 하지만 자녀의 일에 하나하나 간섭하는 헬리콥터맘은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로 어학연수를 온 남동생이 학원에 빠지자 화를 내는 손열음에게 “놔둬. 신경쓰지마”라고 하는 엄마다. ‘자녀가 스스로 걸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엄마’ 최현숙씨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국내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예종에서는 김대진 교수를 사사했다. 김 교수는 손열음을 보고 항상 “특이하다”고 말해왔지만 제자의 개성을 무시하거나 틀에 가두려고 하지 않았다.

“저한테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이 너무 좋은 스승님들을 만난 거예요. 요즘 어린 후배들을 보면 재능은 1%에 불과하고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열음을 동경하는 후배들은 손열음에게 조언을 구하는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손열음은 섣불리 조언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남을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교수를 하면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손열음은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이 없다고 한다.

“저한테 안정성이라는 것은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지금은 교수가 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연주하러 돌아다니는 일이 지겹다고 하는 주변 친구들이 점점 많아져요. 하지만 저는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한군데 못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주자가 꿈=직업이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손열음은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도 데뷔했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가 나오기 전인 16~18세기에 인기있던 건반악기다. 손열음은 바흐가 작곡한 당시의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십여년 전부터 꿈꿔왔던 일이다. 이외에도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은 아직도 길다.

“저는 생각만 많아요. ‘몇년 안에 꼭 이걸 하겠어’ 이런 독한 성격은 아니예요.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걸러지겠죠.(웃음)”

가요 등 다른 장르에서 콜라보레이션 제의도 꽤 들어오지만 고사하고 있다.

“크로스오버를 고퀄리티로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저는 약간 고지식해요. 뭔가를 섞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제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대신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경직된 관념을 깨는 것이다. 클래식 공연을 보는 일이 ‘소수만의 축제’가 아니라 ‘다수의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할 방법을 구상 중이다.

“독일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동네 사람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의 리허설이나 졸업 연주를 보는 거예요. 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해요. 비싼 돈을 주고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런 공연을 맨날맨날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클래식 대중화와 함께 사회공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손열음은 어릴 때부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지원 등을 받으며 자라왔다.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손열음을 로린 마젤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에게 소개해 협연을 주선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음악가라는 게 어떻게 보면 약간 비사회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연주자들은 사실 의식이 있었던 순간부터 음악 밖에 모르고 살아왔어요. 그리고 공연장으로 찾아오시는 관객들과 교감하게 되죠. 한분의 관객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귀중한 일이예요. 여기에 더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인터뷰 말미에 손열음은 조성진의 쇼팽국제콩쿠르 우승 이야기를 꺼냈다. “월드컵 우승만큼 대단한 일”이라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면서 “클래식음악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클래식음악이 외딴 섬이 되지 않고 대중에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찾기 위해 ‘젊은 거장’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리아이 영어글쓰기, 어떻게 교육하나요]
‘에이즈 감염’ 톱배우 엽색행각에 할리우드 초비상
공급은 적고, 매매량은 증가하고, 서울 중심 중대형 아파트 인기
[Enter 엔터] 싸이 ‘강남스타일’보다 빠르다…세계적 인기 모으는 ‘여고생 아델’
비키니女 데리고 거리 유세? 황당한 구의원 후보
단숨에 SNS 좋아요 7만개…톱모델, 런웨이 前 즉석 누드사진 ‘대박’
“北 젊은 미망인ㆍ이혼녀 고위간부 몸종 선발”<RFA>
모딜리아니 경매서 1600억원 부른 젊은 한국인, 알고보니…
올 수능 3大포인트 ‘新유형ㆍ변형지문ㆍ종합사고’…‘물수능’의 역습
[영상] 미녀모델 빅맥 22개 ‘폭풍흡입’…식신 몸매가 이 정도?
부산에 들어서는 선시공•후분양 타운하우스, 금정 우진 더클래식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