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시각장애 재무분석사 .. 꿈을 좇다보니 길이 보였어요

이영희 2015. 10. 2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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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 』 펴낸 신순규씨

그는 삶을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비유했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경로가 틀렸습니다’ 하는 내비가 있고, ‘재탐색을 시작합니다’라고 하는 내비도 있죠. 제 삶은 후자였습니다. 계속 새로운 길에 들어섰고, 그때마다 삶을 재탐색하며 여기까지 왔죠.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재밌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라는 타이틀로 미국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일하고 있는 애널리스트 신순규(48·사진)씨. 최근 에세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을 출간하고 한국을 찾았다.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난 이렇게 성공했다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 남달라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감동의 순간을 전하고 싶어 3년간 점자 컴퓨터로 글을 썼다”고 했다.

 재탐색의 시작은 아홉 살 때였다.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아들을 안마사로 키우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강한 신념에 따라 피아노를 배웠고, 미국 오버브룩 맹학교의 초청을 받아 열다섯 살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음악가로서의 역량이 모자란다는 판단에 따라 일반 고교에 진학해 공부에 매진했다.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과 조직학을 공부한 후 투자은행 JP모건에 들어갔다. “학자를 꿈꿨지만, 결국 제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첫 성공사례가 되어보자’ 마음먹었죠.”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애널리스트로서 일할 수 있는 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세세한 숫자에 집착하기보단 기업이 가진 스토리를 잘 따라가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다”고 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흔들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실패하죠. 정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핵심적인 것만 검토할 수 있는 건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가진 장점입니다.”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기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책에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며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가치(본다는 것, 꿈, 가족, 일, 나눔)에 대해 적어나간다. 자신처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그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라고 조언했다. “능력(ability)과 장애(disability)는 영어로 세 글자 차이에요. ‘dis’의 s, 즉 자신만의 기술(skill)을 갖고 장애인을 넘어서 사회의 한 일원이라는 i, 즉 정체성(identity)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를 넘어서겠다는 d, 결의(determination)가 있으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온도·소리·냄새·촉감 등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그는 “시력을 잃기 전에 봤던 풍경 중 기억나는 게 뭐냐”는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스무 번이 넘게 수술을 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 안대를 풀면 늘 엄마의 얼굴이 눈 앞에 있었어요. 그 얼굴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 기억 속의 엄마 얼굴이 정확한 지 이제는 잘 모르겠네요.”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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