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암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 이들 아픔에 눈이 가요"

입력 2015. 10. 2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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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아만자' 책으로 펴낸 김보통 작가

웹툰 '아만자' 책으로 펴낸 김보통 작가

(고양=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웹툰 '아만자'의 작가 김보통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몇 해 전 번듯한 직장을 관두고 만화가가 된 작가는 '보통'이라는 단어에 끌려 필명을 그렇게 지었다. "회사 안 다니고, 로스쿨 안 가도 그냥 이렇게 보통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작가 소개는 '삼십대 만화가', 여섯 글자로 끝이다.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올해 부천만화대상 부천시민만화상을 수상한 '아만자'를 최근 5권짜리 단행본으로 펴낸 작가를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필명처럼 욕심 없고, 관심을 싫어하는 성향을 보여줬다.

작가는 "그냥 누가 알아보는 게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는데 참 편하더라"면서 "친척들이 '회사 그만두고 뭐 하냐'고 만날 물어보는데, 만화가가 된 걸 보고 '돈은 되냐'고 하실까 봐 걱정도 됐다"고 웃었다.

작가가 회사를 떠난 계기는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픈 아버지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은 마음의 병이 됐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해주겠다고 하기에 바로 퇴사를 결정했어요. 행복해지려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병을 얻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러고 6개월을 놀았는데 조금씩 불안해 지더라고요. 관심이라도 받고 싶어서 시작한 트위터에서 사람들 프로필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죠. 그림을 보고 놀리는 사람도 있고, 험담하는 사람도 있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게 여기까지 왔네요."

작가의 취미는 소문을 타고 웹툰 플랫폼 관계자의 귀에 들어갔다. 한 사이트에서 회사원과 관련한 만화를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때 다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만자'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건 아버지 때문이 맞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충분히 갈 수도 있었는데 바쁘다고 피한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렇게 잘못한 것에 대해 속죄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수를 한 거죠."

'아만자'는 스물여섯 살 말기 암 환자 박동명의 투병기다. 작품 제목은 '암 환자'를 발음 그대로 쓴 인터넷 유행어다.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암과 싸우는 박동명의 모습, 그리고 그가 꿈속에서 정체 모를 '사막의 왕'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박동명이 암 진단을 받자, 숲이 우거졌던 꿈속에 어두운 사막이 등장한다. 그의 병세가 악화할수록 사막은 커진다.

주인공은 꿈속에서 '사막의 왕'을 만나는 날이 곧 죽음의 순간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사막은 곧 죽음이 아님을, 죽음이 절대 어두운 것만은 아님을, 반전이 있는 작품의 결말은 말해준다.

작가는 "암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실패와 실연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현상'이고, 현상이 벌어졌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안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은 작품에 '진짜 암환자'의 처절한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았다. 동명에게 좋은 치료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거액의 치료비 때문에 부모는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동명의 여자친구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만 해라, 죽는 모습까지 봐서 뭐 하려고 하냐'는 핀잔을 듣는다.

"많은 사람이 암 환자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저 죽어가는 사람으로요. 저는 만화에서 환우와 가족 사이에 진짜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부분을 슬퍼하고 아파하는지요. 그냥 아프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실비 치료를 고민하고, 항암제에 중독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109회 연재를 하는 동안 많은 암 환자에게서 응원의 메일을 받았고 심지어 작가가 진짜 암 환자가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현재 탈영병 체포조를 소재로 군대의 부조리를 고민하는 만화 'DP', 심리학 전문가들과 함께 독자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내 멋대로 고민상담'을 연재 중이다. '아만자'에서처럼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작가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의 아픔이 굉장히 눈에 거슬린다. 젊은 암 환자나 탈영병 등이 그런 것"이라며 "다음 만화도 '아픔조차 주류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룰 것 같고, 그렇게 소수의 독자를 꾸준히 모으면서 갈 것"이라고 말했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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