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 생각에.." 차비 줘 3수생 시험 보게 한 역무원

2015. 10. 2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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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두정 전철역 근무 김태일씨 입실 30분 전 지갑 잃은 청년 도와

[서울신문]충남 천안시 두정 전철역에 지난 18일 오전 8시 30분쯤 학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김태일(52) 역무원에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얼굴이 사색이 된 청년의 손에는 수험표가 들려 있었다.

그 청년은 “오늘 실기 시험이 있어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인데 깜빡 잠들었다 일어나니 가방이 열려 있고 지갑이 없어졌다. 입실이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차비가 없다”며 얼이 나간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서 “1만원만 빌려 달라”고 덧붙였다.

김 역무원은 “수험표로 수험생인 게 확인됐고 얼굴 표정도 ‘차비를 잃어버렸다’며 일부러 떼를 쓰는 사기꾼들과 달라 얼른 지갑에서 1만원을 꺼내 청년에게 건넸다”고 밝혔다. 청년은 “감사하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그다음 날인 19일 새벽 페이스북에 “천안시 두정역 역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태양컴퍼스’ 등을 펴낸 소설가 신승철씨로 그 청년의 아버지였다. 신씨는 “4년제 대학 문창과에 가려고 아들이 삼수 중이었는데, 소매치기를 당해 시험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시험장까지 갈 방법이 없었다. 3년 동안 준비해 온 자신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당시의 놀란 심정을 표현했다. 그는 “아들에게 수험표를 보여 주며 두정역에 근무하시는 분들에게 사정을 얘기해 보라고 권했다”며 일이 잘됐다고 전했다. 빌린 돈은 두 배로 계좌 이체했다.

신씨는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저는 이번 일로 희망을 보았다. 큰돈이 아니고 큰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으나 저와 아들에게는 절박하고 큰일이었다”고 밝혔다.

장항선에서 근무하다 지난 3월 전철역인 두정역에 배치된 김 역무원은 20일 “내 아이들 생각에 그런 것인데 무슨 큰일이라고 그러느냐”고 쑥스러워하면서 “적은 돈이 그리 소중할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절절히 느꼈다”고 웃으며 말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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