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창설70년 형사를 말하다①]서울청 성폭력특별수사대 박미혜 경감

배현진 2015. 10. 1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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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박미혜 서울시경찰청 성폭력 특별수사대 경감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성폭력수사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0.15.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박미혜 서울시경찰청 성폭력 특별수사대 경감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성폭력수사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5.10.15. bluesoda@newsis.com

'제복에 반했던 스무살 순경, 30년 후 성폭력수사관 되기까지'

【서울=뉴시스】배현진 기자 =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던 A양의 손목에는 여러차례 칼로 그은듯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학교에서 진행한 심리검사서에는 자살 위험성이 높다는 경고문구가 표기돼있었다. 자초지종을 묻자 A양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벌 받았으면, 많이 혼났으면 좋겠어요."

A양이 친할아버지로부터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해온 건 5살때부터.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면서 할아버지댁에 맡겨진 후 7년동안 A양은 지옥 속에서 살았다.

그가 더 참담했던 건 친할머니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할머니는 A양에게 "미친년"이라면서 "네가 행실이 이상하다"며 탓했고 "너 하나만 참으면 모두 조용히 살 수 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혀를 내두룰 정도로 폭력적인 이 일은 지난해 서울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 1팀장 박미혜 경감이 실제로 맡은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냐는 반문을 그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아동 성추행 성폭행 사건의 대부분은 면식범 소행이에요. 아마 70% 가까이 될 걸요?"

지난 12일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친족간 성폭력 접수건수는 1766건이었다.

박 경감은 "피의자 대부분은 뻔뻔하게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들이 대개 우울증을 앓고 자살기도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얼마 전 자매가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도 박 경감이 담당했다. 십 여년간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언니는 경찰에 신고도 못한 채 고통을 겪다 지난해 자살했으며 같은 피해를 겪은 동생 역시 자살기도를 하다 경찰에 구조되면서 전말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즉각 수사를 맡은 박 경감은 당시 결정적 피해사실을 증언해 줄 언니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인 진술, 의사 소견서 등 증거 자료를 이잡듯이 모아 친부 김모(53)씨를 기소했다. 신고할 여력도 없이 자포자기했던 모녀를 설득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박 경감이 모녀의 상처치유에도 관심을 기울인 덕에 현재 모녀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 아동 전담 성폭력수사 "심리적 소모 크지만 필요성 공감해 자원"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아동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저질러지는 성폭력 범죄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으로 지난 2013년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 설치됐다.

박 경감이 이곳으로 발령받은 건 지난해. 2005년 광진경찰서 여성청소년 계장으로 일하면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전담 부서의 필요성을 느껴왔던 터였다. 그는 고생을 사서한다는 동료들의 만류를 제치고 이곳에 자원했다. 어떻게든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에서다.

그가 지난해 처리한 성범죄 건수는 500여건. 지금도 그의 손에는 300건의 사건이 들려있다. 인면수심의 비인간적인 범죄를 항상 접해야 하니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피의자가 구속되고 피해자가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것만 보고 있으면 못 견디죠. 다른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얻는 보람으로 극복해나가는 거죠."

◇ '내가 수사 안 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6만명 가운데 전국 여경이 450명이던 시절, 친척권유로 우연히 경찰시험을 보게 된 박 경감은 1986년 서울 종암경찰서 경무과에서 첫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경비업무부터 대공, 수사, 운전면허시험감독, 여성청소년 계장, 성매매 단속, 여성가족부 파견근무, 성폭력특별수사대 팀장까지 박 경감은 그동안 경찰업무를 두루 거쳤다.

공안통치가 한창이던 1988년에는 또래 대학생 사상범들을 대하며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직장 내 좁은 여성의 입지 탓에 갈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본격적으로 강동경찰서에서 수사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경찰이란 직업을 재발견하게 된다.

IMF로 연쇄부도가 일어나던 당시는 경제사범도 증가하던 때였다. 각 경찰서마다 일이 넘쳐났고 그녀 역시 100건 가까이 되는 사건을 한번에 처리해야했다. 개중에는 반반한 외모를 가지고 작정하고 여자들을 등쳐먹는 사기꾼도 있었는가 하면 살아보려고 이리저리 애쓰다 결국 빚더미에 앉아 철창신세를 지게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안타까웠던 건 철물점을 운영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빚을 갚지 못해 결국 구속됐던 한 여자의 사연이다. 다리를 절던 그녀는 아이 둘 딸린 남자와 결혼했으나 가게 운영이 신통치 않아 파산까지 내몰렸다. 급기야 남편마저 그녀 앞으로 빚을 남기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꼼짝없이 구속만 기다리던 그녀를 위해 피도 한방울 섞이지 않은 딸이 경찰서로 찾아와 박 경감을 붙들며 "엄마 좀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두 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단다.

"내가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법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그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박 경감 목소리에 착잡함이 묻어났다. 사기죄로 결혼식 전날 구속시킨 30대 여성 역시 가끔 떠오른다.

"장사하다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던 것 같은데, 보니까 악한 사람은 아니더라구요. 결혼은 글쎄요...아마 어렵지 않았을까요. 구속된 여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흔하지도 않고..."

눈물, 콧물 진득이 배어있는 사건을 접하며 박 경감도 사람들을 더 깊숙이 헤아릴 수 있게 됐다.

피해자나 가해자를 만나도 한 번 더 귀 기울였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다보니 광진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으로 근무할 때는 인근 지역 학부모들이 아이들 문제로 상담을 청해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공교롭게도 그때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두 녀석이 많은 도움이 됐죠."

엄마따라 어릴때 부터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던 20대 아들들은 지금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이야기 잘 들어줬던 사람으로 남고파

제복입은 덕에 아시아게임 개막식을 공짜로 볼 수 있다며 마냥 신나했던 스무살 여순경. 어느덧 30년의 세월을 지나 성매매단속 업주에게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능수능란한 베테랑이 됐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다.

"수사를 하다보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지원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도 가해자 처벌이죠. 피해자들이 힘들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로 잘 들어줬던 사람, 도와주려했던 사람.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그게 경찰이 할 일이라고도 생각하고요."

10년이 지나 퇴직 후에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박 경감은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져도 진심이 담긴 사람의 눈빛은 변할 수가 없다"며 "소외된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준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선한 눈을 지녔으면 한다"고 수더분하게 웃었다.

bh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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