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운동화.. 이번엔 자전거

이기문 기자 입력 2015. 10.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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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에 자전거 전도사 변신.. 박재갑 국제암대학원大 교수] 국토 종주 이어 4대강 길 완주 "노인이 병원 가지 않아야 애국.. 사이클보다 훌륭한 운동 없어" 모금 겸해 암 환자에 5000만원

등에 멘 가방을 열자, 헬멧과 물통, 나일론 옷이 주렁주렁 나온다. 모두 자전거용품이다. "내 무기(武器)들입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내 건강을 든든히 지켜주니까요." 박재갑(67)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자전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난 주말 이곳부터 임진각까지 자전거로 왕복한 그는 바지를 걷어 탄탄한 종아리를 보여주었다. 몸무게 90㎏에 육박하는 그는 "작년에만 자전거로 5㎏을 뺐다"고 말했다.

박재갑 교수는 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 32년을 마친 뒤, 자신이 세워 초대 원장을 지냈던 국립암센터로 돌아왔다. 월·금요일은 서울대병원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화·수·목요일엔 국립암센터에서 진료하고 수술하는 외과의사로 지낸다. '금연 운동가'와 '운동화 전도사'로 유명했던 그는 퇴임 때 "'운출생운(運出生運·운동화 출근, 생활 속 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펼쳐 보겠다"고 했었다. 이후 실제로 전국을 돌며 해마다 강연만 70번 넘게 해왔다. 요즘도 책상 위 일정표에는 1시간 단위로 스케줄이 빽빽하다. 하지만 토요일은 고스란히 비워놓았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다.

자전거와의 인연은 작년 5월 시작됐다. 국립암센터에서 '소아암 환우 가족들을 위해 자전거 국토 종주로 모금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초대 원장인 내가 불참해서야 되겠어?" 아내에게 참가할 뜻을 비쳤다. "노인네가 평생 타지도 않던 자전거를 타겠다니, 사고 나기 딱 좋아요. 말도 안 되는 얘길 하시네요." 구청 '할머니 체조' 강좌에 다니던 아내가 타박했다. 그가 되받았다. "유엔이 새로 정한 평생 연령 기준을 보면 66~79세가 중년이니 나는 이제야 새파란 중년이지. 80세가 못 되면 노(老)자를 갖다 댈 게 아니지요." 그 길로 50만원짜리 국산 자전거를 장만해, 석 달 동안 주말마다 총 1000㎞를 달리며 맹연습했다. 그러더니 부산에서 국립암센터까지 598㎞를 달려 소아암 가족들에게 성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그 일을 계기로 매달 200㎞ 넘게 라이딩하는 열혈 자전거족(族)이 됐다. "자전거 길을 잘 닦아놨어요. 자전거 타고 우리 땅을 달리면 시시각각 꽃이 피고 향기롭죠. 온갖 새도 날아오고. 주위 하늘과 산과 들과 꽃 모든 게 천국이죠. 천국을 즐기는 겁니다." 그는 국토 종주에 이어 4대강 자전거 길도 완주했다. 이제는 아내도 "그래도 다칠까 겁나니 혼자서 타지는 말라"며 토요일 새벽이면 떡과 음료수를 싸준다.

"머잖아 수명 120세 시대가 옵니다. 일흔에 은퇴하고 50년을 건강하게 살지 않으면 자식과 후손이 병원비 대며 부양하느라 진이 빠져요. 노인이 병원에 가지 않고 건강해야 애국하는 겁니다." 그는 "관절에 큰 무리가 가지 않고 하체 튼튼히 하는 데는 자전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며 "돈도 별로 들지 않으니 최고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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