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죽기 전에 대한민국이 性에 대해 솔직해지는 걸 보고 싶다"

신정선 기자 2015. 9. 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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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NOW] 더 야한 소설로 돌아온 마광수

1990년대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소설 '즐거운 사라'로 한국 사회의 성역(性域)을 깨뜨렸던 마광수(64) 연세대 교수가 최근 신간 '나는 너야'(어문학사)를 냈다." 이제까지 쓴 소설 중 제일 야하다"고 자평(自評)한다. 지난 14일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죽기 전에 대한민국이 솔직해지는 걸 보고 싶다"며 "한국 사회 위선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성 문학을 통한 창조적 불복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즐거운 사라' 발표 후 24년이 지났다. 변화를 느끼나.

"음란문서 배포 혐의로 검찰에 잡혀갈 때 '이 사건은 10년만 지나도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틀렸다. 성의 이중성은 더 고착화됐다. 바뀐 것도 있다. 내가 30년 전부터 주장한 화려한 네일아트가 널리 퍼졌고, 아무도 못 알아듣던 페티시(fetish, 특정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도 흔한 단어가 됐다. 섹시하다는 말이 이젠 칭찬이 됐지 않나."

마 교수는 "현재 관점에서 보면 '즐거운 사라'가 그다지 야하지 않은 게 아니냐"고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이게 더 야하다"며 건넨 책은 '사라'보다 먼저 낸 '권태'(1990)였다. 최근 개정판을 내면서 초판에서 5㎝였던 여주인공의 손톱을 10㎝로 늘렸다. 그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것도 야하다"며 소설 '인생은 즐거워'를, "시집도 있다"며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를 건넸다.

―'사라'는 작정하고 논란을 일으키려고 발표한 건가.

"우리나라는 성 문제를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뚜껑만 덮어놨다. 내가 그 뚜껑을 열겠다는 생각이었다. 잡혀갈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작인 '권태'보다 덜 야했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소설을 판금시킨 경우는 있어도 구속은 내가 처음이었지 않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왜 그렇게 성만 강조하나.

"사랑의 밑바닥을 파헤치면 결국 성욕이다. 소설을 파고들면 사랑 아닌 게 없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겉은 전쟁 소설이지만 따지고 보면 주인공 나타샤의 연애 얘기다. 성욕 없이 사랑만 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유달리 긴 손톱을 좋아하는 것은 일반적인 취향은 아닌데.

"어릴 때부터 그랬다. 중학교 3학년 때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여자를 보자마자 반했다. 내 손가락이 길어서 그런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투사된 결과다. 긴 손톱은 나에 대한 사랑인 거지."

마 교수는 이번 학기 '문학과 성' '연극의 이해' 등 두 과목을 강의한다. 정년(停年)이 한 학기 남았다. 그새 저서를 50권쯤 펴냈다. 28세에 교수로 임용된 그의 박사 논문은 윤동주 시 전작을 국내 최초로 분석했다. '상징시학' 등 그가 낸 학술서는 지금도 높게 평가받는다.

성 문제를 대하는 엄숙주의를 거부하는 마 교수는 문학에서도 거드름 피우지 않고 쉬운 문장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동주를 박사 논문으로 선택한 것도 "윤동주의 문장이 가장 쉬우면서 시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 교수는 "문학은 문화의 하수도"라며 "현학적인 상수도 문학은 없어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은 성희(性喜)이기에, 바로 옆에 있는 행복인 성희에 쉽게 다가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그의 문학이다.

―외설과 예술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보나?

"외설은 없다. 보는 사람 마음에 달린 것이다. 요즘처럼 야동과 야설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책 하나 보고 성충동을 일으켜 폭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마 교수는 오른손 검지 하나로 컴퓨터 자판을 친다. 굽은 허리로 책상에 앉아 손가락 하나를 두들겨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성 상담을 요청하는 이메일에 답장을 쓴다. 휴대폰은 인터넷이 안 되고 사진기 기능도 없는 구형이다. 취미도 없고, 활동하는 모임도 없다. 문학이 유일한 일이고 벗이며 취미다.

―신간 '나는 너야'가 20년 전 '즐거운 사라'에서 발전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전부 호러소설만 썼지 않나. 이번엔 순정 소설도 들어 있다. 야한 게 섞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변화를 준 것이다."

―같은 주제만 반복하는 것은 작가로서 퇴보가 아닌가.

"건방지게 말하면 사명감 때문이다. 남이 안 할 걸 할 때 묘한 승리감을 느낀다. 자살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하고, 행복 지수는 최하인 나라에서 어떻게든 행복과 가까이 가보려면 성에 대한 이중성을 버려야 한다."

지난 3월 모친 김순희씨가 지병으로 타계한 후 그는 혼자 산다. 가장 최근의 연애는 58세 때였다. 30세 연하의 여성팬이 이메일로 먼저 프러포즈했다. 치매로 고생하던 모친을 돌보던 그는 결국 그녀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성에 대한 관점이 변한 점은 없나.

"환갑이 넘으니 늙었다는 실감이 났다. 성만 주장하기에는 내가 늙긴 했다. 그래도 애인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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