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이 돕는 사람인데" 알고보니 장학사

이민선 입력 2015. 9. 13. 15:05 수정 2015. 9. 1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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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학교를 찾아서⑥] '꿈의 해오름 자전거 학교'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
ⓒ 꿈의 해오름 자전거 학교
'꿈의 해오름 자전거 학교(아래 자전거 학교)'는 장학사가 직접 팔 걷고 나서서 만든 학교다. 장학사가 직접 나서서 꿈의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학교는 광명시 관내 중학생 100여 명을 모아 지난 7월 6일 문을 열었다. 오는 10월 말 학생과 주민이 함께하는 '마을 축제'를 끝으로 수업을 마친다. 광명 초·중학교 교사 15명이 지원자로 참여했다. 이 학교는 광명시 경륜장(스피드 돔)에 있다.

자전거 학교가 추구하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참된 자유의 가치 배우기'와 '평화로운 삶을 위한 존중 실천하기' 등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해지기'다. 지난 3일 오후 이 학교를 찾았다.

자전거 타면서 평화로운 세상 배울 수 있을까?

 인터뷰에 시원하게 응한 아이들. 앞줄 왼쪽 이승준(중1), 오른쪽 김재영(중2). 뒷줄 왼쪽부터 조수민(중2), 이현지(중2), 김주은(중2)
ⓒ 이민선
'자전거 타면서 도대체 어떻게 행복을 찾는다는 것일까. 참된 자유의 가치는 어떻게 배우고. 혹시 아이들에게 경륜선수 꿈을 심어 주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자전거 학교'를 찾았다. 강의실은 당연히 경륜장일 것 같아 경비원에게 "경륜장 입구가 어디냐?"고 물으니 "오늘은 경기가 없어서 문을 열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자전거 학교 아이들 수업은 어디서 하느냐?"라고 묻자 "아~"하고는 친절하게 위치를 설명했다.

수업 장소는 자전거 타는 곳과 거리가 멀었다. 경륜장 한편에 있는 강당이다. 아이들이 한두 명씩 모여드는데 옷차림 역시 자전거 타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수업은 자전거 타기와는 별 관련이 없는 폐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었다. 자전거와의 관련성은 폐자전거 부품도 잘 손질하면 좋은 상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정도였다.

교사로 보이는 이에게 "교장이 누구냐"고 물으니 "이 학교에는 교장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학교를 책임지는 사람은 있을 텐데요?"라고 묻자 "책임진다고 하긴 좀 그렇고,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있는데, 그게 바로 접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접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이 학교를 설립한 차미순 광명 교육지원청 장학사다. 이 학교를 세웠고 서류상 대표로 돼 있으니 설립자 겸 교장인 셈이다. 그런데 어째서 교장이 없다고 한 것일까?

"진짜 없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결정했어요. 아이들한테 교장이 없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없어도 될 것 같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어요. 전 서류상 대표지만 실제 하는 일은 행정 도우미예요. 실무자죠. 물론 교장이 없어도 학교는 잘 굴러가고 있고요."

현직 장학사가 직접 나서서 꿈의 학교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좋은 공간(스피드 돔)을 금·토·일요일만 쓰고 나머지는 비워두는 거예요.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꿈의 학교가 뜬 거죠. 그래서 청소년수련관, 평생학습원 등에 '꿈의 자전거 학교'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하고 뛰어다닌 거죠."

"자전거 천국 덴마크, 아이들이 가자고 했으면 어떻게든 갔을 것"

 자전거 학교를 설립한 차미순 광명 교육지원청 장학사
ⓒ 이민선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차 장학사가 자전거 학교 설립에 팔을 걷게 된 배경에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그의 확신이 있다. 그는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생태파괴 등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자전거가 해결할 것이라 믿고 있다. 자전거 학교의 바탕에 '학생 스스로 정신'과 함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그의 확신이 녹아있었다.

"자전거 인구가 늘면 자연히 차도를 줄이고 자전거 도로를 늘리게 될 거예요. 꿈의 자전거 학교를 거쳐 간 학생들이 이 일을 해냈으면 좋겠어요. 덴마크 같은 유럽 선진국은 자전거 천국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광명시가 그런 자전거 천국이 됐으면 좋겠어요. 만약 아이들이 덴마크를 견학하자고 제안했으면 전 어떻게든 갔을 겁니다. 모든 프로그램을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했거든요."

자전거 학교라고 해서 단순히 자전거만 타는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 평화교육'이나 '감수성 기르기' 같은 공동체 정신을 기르기 위한 교육에서부터 자전거 영화 만들기, 자전거 쿠키 만들기, 폐자전거 수리하기 등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폐자전거 수리하기'라고 차 장학사는 말했다.

"그 무더운 여름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자전거를 수리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 집중력이 굉장했지요. 교사생활도 20년 이상 했는데, 학교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어요. 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 그랬을 것입니다. 자전거 모양 쿠키 만들기는 사실 실패예요. 실패를 예상했지만 말리지 않고 그냥 뒀어요. 실패할 여유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자전거 학교는 실수와 실패를 허용하는 공간이니까요."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은 '자전거 선발대'다.

"좀 거친 아이들, 학교에서 짱 먹고 그런 아이들 30여 명이 왔는데 중간에 모두 가버렸어요. 그때 참 힘들었어요. 교사가 있는데도 막 욕하고, 잘하는 아이들 방해하고, 그런데도 어찌할 바를 몰라 멀뚱멀뚱 구경만 하는 참담함을 겪어야 했어요. 그중 5~6명이 다시 왔는데, 받아줘야 할지 정말 고민스러웠어요. 결국, 여기 아니면 뒷골목에서 아이들 괴롭히기밖에 더 하겠냐, 여긴 꿈의 학교니까 여기서라도 받아야지 하는 마음에 받아 줬어요. 그 애들을 위해 급히 만든 게 '자전거 선발대'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자전거 선발대 활약은 눈부셨다. 이 아이들은 서포터인 교사와 함께 6시간을 달려 자전거 여행 예정지인 '경인 아라뱃길'을 사전 답사, 이 길이 아이들에게 너무 힘든 코스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덕분에 좀 더 여유로운 코스인 한강 선유도로 자전거 여행지를 바꿀 수 있었다. 차 장학사는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게 값진 경험이 됐을 것"이라며 이 프로그램이 성공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방학 없어졌어도, 아이들보다 선생인 내가 더 행복

 꿈의 해오름 자전거 학교 서포터로 참여해 행복하다는 류서진 선생(광명북중학교)
ⓒ 이민선
행복이 자전거를 타고 오려면 '자전거 학교' 서포터와 아이들부터 행복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까? '자전거 영화 만들기' 서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류서진 선생(광명북중학교)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할 때도 있고, 덕분에(?) 방학도 없어졌지만, 아마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나고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 열의가 굉장해요. 그 열의가 제게 에너지를 주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안 따라와서 교사가 진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달라요. 제가 '얘들아 이렇게 해볼까?' 하면 아이들이 '선생님 이런 것도 있어요'하고는 스스로 해 나가요. 제가 제시한 방향의 '플러스알파'를 해내는 거죠. 수업할 때 저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고요. 내년에도 (자전거 학교) 하면 꼭 다시 오고 싶어요."

자전거 영화는 시나리오 작성, 촬영, 연기까지 모두 학생들이 도맡아서 했다. 교사는 글자 그대로 서포터일 뿐이다. 이 영화는 자전거가 사람으로 변해 주인공인 왕따 여학생을 도와주는 얼개로 이루어졌다.

[왕따 여학생은 자전거를 무척 아낀다. 어느 날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자전거가 '후지다'는 말을 듣고는 욱하는 마음에 자전거를 버린다. 마음이 바뀌어 나중에 다시 찾으러 갔는데 자전거가 사람으로 변해 말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에는 여전히 자전거일 뿐이다]-영화 줄거리-

아이들도 행복한지 알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공교롭게도 자전거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조수민·이현지·김주은)이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고통 끝에 행복이 왔다"고 말했다. 자전거 타는 게 힘이 들어 고통스러웠지만, 재미가 있어 결과적으로 행복했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기회가 된다면 다른 영화도 찍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여학생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재영 학생(중 2)은 "전학 와서 친구도 없고 우울했는데 이곳에 와서 친구도 만났고, 무엇보다도 자전거 타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이승준 학생 (중1)은 "자전거 역사나 자전거 안전수칙 등을 알게 돼서 유익했다"며 "내년에도 오고 싶다"라고 말했다.

행복해 지기가 목표인 '꿈의 해오름 자전거 학교',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었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시원하게 응하고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밝히는 아이들 모습에서 자존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찾을 수 있는 그런 자존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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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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