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 92주년> ②재일동포 감독 "간토 다큐는 내 사명"
간토대지진 경험과 스승의 권유로 세 번째 작품 제작 시작
(창원=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어린 시절 민족 차별을 많이 당했습니다. 소학교 4학년 때 답답한 마음에 '왜 조선인은 차별을 받아야 하나'라는 작문을 썼어요. 그 글을 본 선생님의 소개로 열차로 30분이나 걸리는 조선인학교로 매일 등교했습니다."
간토(關東)대학살을 주제로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재일동포 오충공(吳充功·60) 감독은 간토대지진에 천착하게 된 계기를 전하며 어린 시절 차별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오 감독은 이달 17∼21일 연합뉴스와 간토대지진 희생자 강대흥씨의 유가족을 함께 취재하며 틈틈이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는 조선인이라는 것이 티가 나면 눈총받던 시절이었지만 오 감독은 조선인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웠고, 그곳에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오 감독이 처음에 간토대학살 영화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사실 우연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다 늦깎이로 입학한 요코하마방송영화전문학원(현 니혼영화대학)에서 졸업작품을 고민하던 중 동급생들이 간토대학살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오 감독은 나이도 많은 데다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감독직을 맡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데다 시간도 촉박해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시 지도교수였던 지바 시게키(千葉茂樹) 영화감독이 "오군, 내가 도와줄 테니 이 작품은 졸업작품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해"라고 격려하는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오 감독은 결국 1년을 더 준비해 간토대학살 60주년인 1983년에 맞춰 첫 작품 '숨겨진 손톱자국'을 내놨고, 3년 뒤인 1986년 두 번째 작품 '불하된 조선인'을 선보였다.
오 감독은 거의 30년 만에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4년 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1923년 간토대학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차에 스승으로 모시는 재일사학자 강덕상 전 시가(滋賀)현립대 교수가 오 감독의 작품을 '미완성'이라고 지칭하면서 3번째 작품을 찍을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오 감독은 "대지진 피해가 심했던 때라 작품을 잘 찍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그때 '내가 해야겠구나' 하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번 작품은 지난 30년간 새롭게 밝혀진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간토대학살 피해자 유족들에게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오 감독은 작년 제주 출신 피해자 조묘송씨의 유족을 찾은 데 이어 올해에는 경남 함안 출신 피해자로 한국에는 가묘(假墓)가, 일본에는 진짜 묘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화제가 된 강대흥씨의 유족을 만났다.
오 감독은 "강대흥씨는 진주 강씨인데 내 어머니도 진주 강씨"라며 "강씨는 나의 먼 친척이거나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며 "뭔가 인연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함안에 있는 강대흥씨의 가묘에 들러 흙을 한 줌 담았다.
이 흙은 내달 4일 일본 사이타마(埼玉)에서 열리는 추도식 때 강씨의 유골이 있는 묘에 뿌릴 계획이다.
오 감독은 인터뷰 중 간토대학살 문제는 한일 간 역사에서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지금 유족들은 모두 60대가 넘었고 일부 유족은 나를 만난 뒤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면서 "그것이 한국 정부가 하루바삐 간토대학살 관련 진상규명 특별법과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라고 역설했다.
이어 "한국이 일본 정부에 간토대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단 며칠 사이에 6천여명이나 학살된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진상규명 요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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