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자립은 서로 돕는 것이지요"

2015. 8. 2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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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증 장애' 딛고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 받은 한경숙씨

[서울신문]“인생의 절반은 비장애인으로, 나머지 절반은 장애인으로 살아 왔어요. 비장애인이었을 때 앞만 보고 달렸다면 장애를 얻은 뒤로는 옆을 보고 함께 걷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행복합니다.”

한경숙(52) 수원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장이 27일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받아 새로운 ‘인간 승리’의 기록을 썼다.

한씨는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지체장애인 중에서도 ‘최중증 장애인’(국민연금공단 판정기준 400점 이상)에 속한다. 이런 최중증 장애인으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5학기 내내 쉼 없이 수원에서 서울로 통학하는 강행군 끝에 얻은 결실이다. 한씨는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 목표였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소회를 전했다.

등교부터 필기, 시험공부까지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았다. 보조기구 없이는 펜을 쥘 수도 없었다. 욕창 때문에 긴 시간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강의 도중에도 ‘신호’가 오면 화장실로 달려가 ‘넬라톤’(일시적으로 도뇨관을 요도에 넣어 방광에 차 있는 소변을 빼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1990년 섬유예술을 전공하며 교수를 꿈꾸던 28세 나이에 한씨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장애는 그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들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공부밖에 몰랐던 한씨는 자신의 처지를 바탕으로 장애인 인권 현장에 몸을 던졌다.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2011년엔 수원시에 12대밖에 없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적정 수준인 44대로 늘리기 위해 5박 6일간의 시의회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얌전한 성격에 가녀린 목소리였던 제가 구호를 외치려고 소리 지르는 연습까지 하니까 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그는 현재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외출은커녕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 타인에 의존적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대학원에 다닐 때 비나 눈이 오면 활동보조인이 차를 대는 사이 학교 건물까지 눈, 비를 홀딱 맞으며 혼자 이동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씨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삶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회”라고 강조했다. “자립은 혼자서 모든 걸 다하게 두는 게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게 서로 돕는 거예요. 제가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함께 걷는 삶을 저 스스로 실천해 보일 겁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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