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매일 대중탕에 간다 .. 연대감 느끼고 사랑하는 법 배운다

박정호 입력 2015. 8. 8. 00:42 수정 2015. 8. 8.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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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서울 사는 스위스 장애인 철학자 졸리앵
수도승처럼 머리를 바짝 자른 알렉상드르 졸리앵. 컴퓨터 글쓰기가 힘들어져 그가 구술하면 아내나 친구들이 대신 원고를 입력해준다. “컴퓨터 자판이 고문 도구처럼 보일 때도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졸리앵은 새로 번역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인간이라는 이 망할 직업! 즐거우면서도 엄격한 이 직업.”
큰딸 빅토린(오른쪽), 아들 오귀스탱과 함께한 졸리앵.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이 오늘을 즐기는 아이들은 그에게 인간을 공부하는 또 다른 철학교사다.
졸리앵의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 있는 아이들의 그림이다.

‘어서 오세요!!! 행복한 우리 집’.

 아파트 현관문부터 포근하다. 비뚤배뚤, 아이들의 색연필 글씨가 정겹다. 꽃과 별, 개와 고양이 그림이 손님을 환영한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이내 장난감을 치운다. “안녕하세요~.”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천진하다. 경계심이 없다. 방에서 아버지가 나온다. 걸음새가 불편하다. 몸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린다. 환한 미소로 “앉~으~세요”라며 자리를 권한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강대 인근의 한 아파트. 스위스 출생의 장애인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앵(40)을 만났다. 최근 번역된 그의 『인간이라는 직업』을 읽은 직후였다. 신체 결함을 정신 단련으로 극복해온 철학 에세이다. 그는 『약자의 찬가』 『고마워요 철학부인』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등을 내며 유럽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아 왔다. 아이 셋의 아빠, 가족이라는 만만찮은 무게를 짊어진 가장이기도 하다. 그는 왜 지금 서울에 있을까. 인터뷰는 『인간이라는 직업』을 번역한 임희근씨의 프랑스어 통역으로 진행됐다.

 - 왜 서울에서 지내나.

 “서울에 온 지 2년 반쯤 됐다. 가톨릭 신자이지만 불교를 더 알고, 마음 수행도 더 깊게 하고 싶었다. 내게 서울은 커다란 인생학교다. 불교와 기독교, 그 밖의 여러 전통이 나란히 있는 게 보기에 좋다. 큰딸 빅토린(11), 아들 오귀스탱(9)도 일반 초등학교를 다닌다. 저보다 한국어를 훨씬 잘한다. 막내딸 셀레스트(5)도 있다. 당분간 스위스에 돌아갈 계획은 없다. 한국에서 익힌 것을 더 심화시키고 싶다. 아이들도 즐겁게 지낸다. 줄넘기·태권도도 배웠다.”

 - 서울 지하철을 즐겨 탄다고 했다.

 “집 가까이에 지하철역이 있다. 지하철은 서울을 만나는 훌륭한 수단이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은 둘째치고 전철 안에선 온갖 계층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엮이게 된다. 평소 사람을 좋아하는데, 철학이란 것도 결국 남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행위다. 지하철은 그런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그곳에는 평등이 있다.”

 - 평등이라니, 무슨 말인가.

 “겉으로 드러난 것, 즉 복장이나 외모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뜻에서다. 지하철에선 누가 사장이고, 누가 직원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다. 서울의 대중목욕탕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다.”

 - 요즘엔 거의 집에서 샤워를 하는데.

 “매일 오후 동네 목욕탕에 간다. 스위스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에서도 평등을 발견한다. 서로 물을 뿌려주고, 씻겨주지 않는가. 타인을 존중하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몸의 신성함을 깨닫게 된다. 대중목욕탕은 내게 치유의 장소다. 사회적 자아나 겉치레를 떠나 사람 사이의 무한한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 독일 등 유럽에도 대중탕이 있지 않나.

 “경험이 부족한 탓일까, 한국처럼 풍부하게 누리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공공장소임에도 모두 순수해 보였다. 서로 편견 없이 눈길을 주고받는 게 좋다. 유럽에서는 몸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이런 건강한 시선이 뒤틀리곤 한다. 복지제도는 스위스가 한국보다 잘돼 있지만 다분히 기계적(테크니컬)이다. 한국이 훨씬 자연스러운 곳 같다.”

 - 인간이 직업이라는 표현이 새롭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인간의 실존은 커다란 일터다. 누구든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 장애인은 특히 그렇다. 동정이나 연민 같은 남들의 시선에 자칫 노예가 될 수 있다. 어려서 신체장애 때문에 죽고 싶은 때도 많았다. 탈수 중인 세탁기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사지 반듯한 정상인이 얼마나 되고 싶었겠나. 삶은 그런 질곡에서, 비극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행복은 저 멀리 있지 않다.”

 졸리앵은 태어나면서 뇌성마비를 앓았다. 엄마 배 속에서 심하게 움직이다 목이 탯줄에 감겨 세상에 나왔다. 처음에는 평생 걷지도 못할 것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세 살 때부터 17년 동안 특수센터(재활기관)에서 지냈다. 연습에 연습을 하며 아홉 살 때 처음 두 발로 서게 됐고, 열여덟 살에 자전거도 탈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상업·인문학교를 거쳐 스물둘에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공했다.

 - 장애 예술가는 많아도 철학자는 드문데.

 “평생 담배나 말면서 살 처지였다. 특수센터에서 그런 직업교육을 받았다. 10대 중반 ‘너 자신을 알라’ ‘인간의 악행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처음 접했다. 세상이 흥미로워졌다. 질문거리가 많아졌다. ‘장애아가 철학은 무슨 철학’ 하는 회의적 반응도 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끝까지 믿어주셨다. 또 특수센터 교목(校牧)이었던 모랑 신부님의 각별한 지도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 철학이 밥 먹여주느냐는 비아냥도 있다.

 “철학은 사고의 엄정성을 갖추게 한다. 장애인인 만큼 치료와 치유에 관심이 크다. 철학은 그 상처의 근원을 성찰하게 한다. 예컨대 우리의 몸을 들여다보자. 두 가지 극단이 존재한다. 마라도나 같은 신체를 우상화하거나, 반대로 욕망의 결집체인 육체를 감옥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둘 다 옳지 않다. 남을 부러워하면 질투에 사로잡히고, 반대로 무작정 깎아 내리면 허무에 빠진다. 인간은 순간순간 변한다. ‘지금, 여기’가 핵심이다. 나 자신도 매번 다른 장애인이다. 사람은 고정된 시선 안에 가둘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신비한 존재다.”

 - 공부가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특수센터에서 지난 30년간 대학을 들어간 이는 10명이 안 된다. 결핍은 인간이 성장하는 원천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 지적·신체적 능력이 급속히 발전했다. 책도 많이 읽었다. 목 근육이 뭉치고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인생은 즐거운 전투다. 죽는 순간에도 전진해야 한다. 삶의 최악은 고통이 아니다. 절망이다. 절망에 빠지면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돕는 게 철학의 임무다.”

 - 그것을 솔(soul) 빌딩이라고 했다.

 “보디빌딩처럼 철학도 훈련(트레이닝)이다. 그리스 철학자도 행복을 훈련에 비유했다. 수영·펜싱을 배우는 것과 같다.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남을 판단하지 않고, 분노에 빠지지 않고, 슬픔에 침몰되지 않으려면 많은 수련을 해야 한다. 기도와 명상이 필요한 이유다.”

 - 요즘 불교에 심취한 것 같은데.

 “아침·점심·저녁, 하루에 세 번 명상을 한다. 아내·아이들도 함께한다. 몸이 안 따라 좌선(坐禪)은 못하고 누워서 한다. ‘무문관(無門關)’ 화두를 들고 있다. 철학은 논리적·지성적이다. 명상은 삶의 지혜를 포용한다. 『금강경』 『육조단경』 등도 공부했다. 욕망·사물 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을 익힌다. 행복은 쟁취가 아니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그곳에서 비롯한다. 가톨릭을 저버린 건 아니다. 명상을 하면 신앙도 더 깊어진다. 종교는 네거리가 만나는 광장과 같다.”

 - 장애 때문에 주목받는 측면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장애가 없었다면 철학에 눈을 뜨게 됐을까. 장애는 내게 실험실과 같다. 타인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내 안의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다. 행복에는 세 가지 기둥이 있다. 삶의 덧없음을 직시하는 명상과 나를 편견 없이 받아주는 친구,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적 참여다. 장애인으로, 가장으로, 작가로 주변에 기쁨을 주는 내 세 가지 소명을 뚜벅뚜벅 실천해가겠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기에…. 『우신예찬』을 쓴 에라스뮈스(1466~1536)의 말이다. 공감한다.”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S BOX] 선(禪) 수행 이끈 ‘아버지 같은 신부님’ 서명원 교수

“(나를) 정신적으로 이끌어주시는 아버지 같은 신부님 덕에 나는 날마다 복음과 친숙해지는 법을 배우며 선(禪) 수행도 더 깊게 하는 법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직업』에서 졸리앵이 한국 독자에게 보낸 글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아버지 같은 신부님’은 서강대 종교학과 서명원(62·사진) 교수를 말한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예수회 신부인 서 교수는 가톨릭과 불교의 만남을 실천하는 ‘벽안(碧眼)의 수도자’로 유명하다. 2005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성철(性徹·1912~93) 스님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졸리앵이 한국에 오게 된 데에도 서 신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년 전 스위스에서 신부님의 강연을 라디오로 들은 적이 있어요. 일상의 지혜를 체득한 스승을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바로 이분이라고 직감했죠. 이후 벨기에에서 진행된 신부님의 피정(避靜·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오랜 시간 자신을 살핌)에 참여하게 됐어요. 진정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제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었죠.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셨고요.”

 서 신부는 졸리앵에게 ‘혜천(彗泉)’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어주었다. ‘지혜가 샘물처럼 흘러넘쳐라’는 뜻이다. 졸리앵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신부님은 지식이 깊으면서도 마음이 선하세요. 장애인들은 보통 마음의 상처가 큰데, 신부님 덕택에 삶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됐습니다. 철학을 넘어 지혜의 문에 도달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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