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뭘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배를 타려고

2015. 7. 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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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서 항해사 변신.. 김연식씨의 '1막 2장'
[동아일보]
항해사 김연식 씨는 “인생의 항로를 벗어나 얻은 건 다름 아닌 ‘자유’였다”고 말하며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뭐? 배를 타러 간다고? 미쳤어?”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가족도, 친구도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인천에서 지역신문 기자를 하다 3년 만에 관두고 백수 생활을 한 지 꼬박 1년이 될 무렵이었다. 그에겐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이었지만 남들에겐 ‘도망’처럼 비쳤다. 그래도 아직은 무엇을 시작해도 늦지 않은 20대가 아닌가. 2010년 배를 탔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승선생활은 어느덧 6년째가 됐다. 항해사 김연식 씨(32) 얘기다.

김 씨를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씨는 지난달부터 3개월간 ‘뭍’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9월부터 다시 6개월간 바다로 나간다. 김 씨는 “축구장보다 큰 부정기 화물선을 타고 매년 지구를 네 바퀴쯤 돌고 열두 나라 항구에 기항한다”며 “지중해, 희망봉, 아마존, 보스포루스, 마젤란 해협, 수에즈, 솔로몬 제도 등 안 다녀 본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기자직을 관둔 건 그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직장을 나오니 일주일 만에 후회했다. ‘여러 나라에 가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무역회사 해외파견직, 항공 운항인턴 등 여러 곳을 지원했다. 모두 낙방.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도 하고 자동차정비도 배워봤지만 구직은 쉽지 않았다.

이런 막막했던 시기에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이 국비로 해기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바로 이거다’란 느낌이 왔다. 그는 “여행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어찌 됐든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며 “일부러 정해진 항구만 왕래하는 정기선이 아닌, 중간중간 상륙을 할 수 있는 부정기 화물선을 택했다”고 말했다. 지도에 작은 글씨로도 표시되지 않는 오지까지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김 씨는 연수원에서 해양대 학생들이 3년간 이수하는 전공 필수과목을 여섯 달 만에 끝냈다. 가장 낮은 직급인 실습생 신분으로 1년간 무급 승선도 했다. 맨손으로 갑판을 청소하고 화물창을 오르내리는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 속에서 동료 여러 명이 중도 하차하는 모습을 보며 고민도 많이 했다. 그는 “나도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배에서의 생활이 잘 맞았다. 덕분에 지금은 중앙상선 2등 항해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배 타길 정말 잘했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닌단다.

반복적인 항해가 지겹지는 않을까. 그는 “지겹진 않지만 가능하다면 앞으로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서 운항하는 배나 크루즈, 아라호 탐사선 등 다른 종류의 배도 타보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현재 하는 일을 즐기며 열심히 하다 보니,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인생의 항로를 벗어나 불확실한 곳으로 뛰어들라”고 말했다. 그 자신이 처음에는 도망치듯 삶의 항로를 틀었지만 뜻밖의 적성을 발견했고 가능성이 언제나 무한대라는 점을 발견했다는 것. 그는 최근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라는 책을 펴냈다. 자신과 비슷한 20대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친 김 씨가 옆에 두었던 바이올린을 어깨에 멨다. 휴가 기간에 레슨을 받아 9월에 출항했을 때 배 위에서 멋지게 연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연주하는 모습. 김 씨의 모습엔 여유가 넘쳐 보였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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