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라 부르지 마세요, 20년 준비해왔으니

프랑크푸르트/어수웅 기자 2015. 7. 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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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미스터리 여왕'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 인터뷰] 43세때 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전세계 천만부 팔린 베스트셀러 최근 신작 '산자와 죽은자' 펴내 "14살때 쓴 소설부터 쭉 퇴짜맞아.. 첫 책 '상어의 도시'는 自費로 내"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독일 소설가 넬레 노이하우스(48)가 궁금했던 까닭은, 단지 전 세계 1000만부를 넘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차라리 자비(自費) 출판으로 시작했던 무명 작가의 인간 승리 스토리가 더 끌렸다.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 그의 신작 '산자와 죽은자'(북로드 펴냄)를 펼쳤다. 600쪽 분량의 사전 두께였는데, 두 번의 기내식을 마치고 나니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해 있었다. 밀도 높은 흡인력이었다. 단골이라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한 바(bar)에서 노이하우스를 만났다. 실밥 풀린 낡은 보라색 V넥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독일의 조앤 롤링(해리포터 작가)이라는 억만장자가, 올 풀린 셔츠라니(웃음).

"만약 스무 살에 작가로 성공했다면, 아마도 으스대며 살았겠지. 하지만 마흔 무렵에 처음으로 인정받고 나면, 그 사람의 캐릭터가 달라지기는 힘들다. 나는 베개도 옛날 베개 그대로 쓰고, 타는 차도 옛날 차 그대로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외모나 재산이 아니더라고(웃음). 변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의 첫 대형 홈런은 43세 때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었다.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작가 최초의 독일 베스트셀러 1위 작품. 국내에서도 이듬해 번역되어 그 해 해외 소설 1위를 기록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요나스 요나손, '오베라는 남자'의 프레드릭 배크만 등 국내 출판사의 유럽 작가 발굴 기폭제가 된 것도 그였다. 하지만 이 상업적 성공 이전까지 노이하우스는 20년 동안 무명(無名) 작가였다.

―자비 출판으로 미스터리의 여왕이 되다니. 신데렐라 스토리다.

"천만에. 10군데 넘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14살 때 노트에 손으로 쓴 내 첫 소설 이래, 20년 넘는 퇴짜였다. 결국 38세에 내 돈 3500유로(약 440만원)를 들여 첫 책 '상어의 도시' 500부를 인쇄했다. 독일에서 자비 출판 제도가 생긴 게 그 무렵이었다. 다음 해에 쓴 '사랑받지 못한 여자'도 자비 출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눈덩이 효과랄까.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점점 책을 찾았다. 난 이전에 '소시지 공장 사모님'이었다. 전 남편이 사장으로 있던 공장 입구에 책을 깔아놓고 팔았다. 두 번째 책은 3주 만에 1000권이 나갔다. 출판사가 연락을 했고, 남의 돈으로 세 번째 책을 펴냈다. 마침내 네 번째 책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베스트셀러 1위가 됐다. 그때 받았던 전화를 잊지 못한다. '넬레, 당신 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작가는 수다스런 옆집 누나, 푸근한 이웃집 아줌마 같았다. 대화가 즐거운 듯 자신의 동네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15분 거리,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 켈크하임(Kelkheim)이었다. 아우디 SUV를 직접 운전하면서, 그는 이번 책 '산자와 죽은자'에 나오는 살인 현장이 바로 저 교차로라고, 빵집 여인이 저격수의 총을 맞은 수퍼마켓이 바로 저곳이라고 가리켰다.

'산자와 죽은자'는 장기 밀매(密賣)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적(私的) 복수와 그 정당성을 질문하는 범죄 소설. 맨해튼이나 상하이처럼 첨단 도시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동네 사람들의 현실감 넘치는 미스터리라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우리네 수육을 닮은 지역 특산 소고기 요리를 먹으며, 노이하우스는 자신도 심장 판막 이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 책을 쓰기 직전인 2012년의 일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었다는데, 그녀는 인공 판막은 소음이 심해서 돼지의 심장 판막을 이식받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켈크하임 특산이라는 사과 와인을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켜면서.

소위 '인생 한방'의 상징으로 넬레 노이하우스를 떠올리는 작가 지망생들이 있다. 작가는 와인과 한담(閑談)으로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취미가 직업이 되어서 나는 너무나 고맙고 행복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에 신데렐라가 된 게 아니다. 20년 동안 혼자 썼고, 20년 동안 훈련해 왔다. 성공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이야기한다. 20년 동안 혼자서 쓸 준비가 되어 있냐고."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면 잘하게 되며, 잘하면 찾는 사람이 생긴다고 했다. 이 호탕한 여성작가의 성공 비결이 꼭 소설가 지망생에게만 필요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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