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6만명 돌본 '입양아의 주치의'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5. 7.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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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천賞' 받는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 조병국 명예원장] 지원 요청 잦아 '국제거지' 별명 홀트 17년 근무 후 퇴임하고도 후임자들 못 버티자 돌아와 15년 "어엿하게 큰 아이들 보면 뿌듯"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치료하고 수술해야 하는데 1960~70년대 우리나라에는 돈이 없었다. 젊은 여의사는 미국·독일·노르웨이에서 의료 기부를 받겠다고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해외 기부자들에게 얼마나 매달렸는지 '국제 거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의 사망진단서를 하루에도 몇 장씩 써야 하던 시절이다.

'한국 입양아의 주치의'로 불리는 조병국(82·사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 명예원장이 13일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이 주는 제3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 명예원장은 50여년 동안 새 부모를 찾아가는 입양아 6만여명을 치료했다. 성천상은 JW중외그룹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사장을 기려 2013년 제정됐다.

195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조병국은 1962년부터 15년 동안 서울시립아동병원 소아과에 근무하면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76년부터는 홀트아동복지회와 인연을 맺고 부속의원에서 입양아들의 치료에 헌신했다. 1993년 정년 퇴임했지만 후임자들이 격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자 다시 돌아와 2008년까지 15년 동안 '전(前) 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진료했다.

그는 "세상을 뜬 아이에게 제대로 된 수의(壽衣)도 입히지 못하고 창호지를 대충 잘라 덮어 놓던 시절도 있었다"며 "외국에 하도 원조를 많이 요청하다 보니 정부로부터 '자제하라'는 경고까지 받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의대 동창인 남편은 그를 적극 도왔다. 아이들이 동전이나 단추를 삼키면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남편이 있는 한양대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런 조 명예원장도 해외 입양을 '아기 수출'이라며 무조건 비난할 때는 힘이 빠졌다. "집 없고 병든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부모와 가정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국내에 자원하는 부모가 없으니 해외로 눈을 돌렸을 뿐입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입양 서류에 '~에 버려졌음' 대신 '~에서 발견됐음'이라고 기록하던 그다.

그래도 아이들은 큰 기쁨을 안겨줬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 뇌성마비 소년은 소아재활의학 전문의가 돼 국제학회에서 그를 찾아왔다. 나중에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아이는 미국에서 의수(義手) 사업을 하는 양부모를 만나 컴퓨터 전문가로 컸다. 척수 기형으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것이라던 아이는 대학에 들어가 밴드의 리더가 되기도 했다. 그는 "양부모의 도움도 컸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노력해서 앞길을 연 것"이라며 "지금껏 내가 한 일이 부끄럽지 않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조 명예원장은 팔순 고령인 지금도 홀트 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아들을 보살피고 있다. 장애가 심해 입양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사는 곳이다.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마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도 돌보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창립자인 해리 홀트의 딸이다.

"할머니와 같이 살아보셨어요? 할머니가 손자들 돌보는 생활 그대로예요. 아이들 이부자리 정리하고, 아프면 봐주고 그렇게 살아요." 중외학술복지재단은 다음달 24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성천상 시상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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