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사형수' 유인태 의원, "내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건.."

전수용 기자 2015. 7. 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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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 받을 때 사형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처절히 느꼈다"

6일 여야(與野) 의원 172명이 ‘사형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제출했다. 15대 국회부터 매번 제출된 사형제 폐지 법안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우리나라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는 58명. 하지만 1997년 12월을 마지막으로 18년째 사형집행이 없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나라를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지만 아예 법조문에서 사형을 없애자는 게 특별법 내용이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건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67) 의원이다. 그는 2004년에도 174명 의원 서명을 받아 사형 폐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 의원은 왜 사형제 폐지에 안간힘을 쓰는 걸까. 7일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2004년에 이어 11년 만에 다시 사형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유독 사형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뭔가.

“아무래도 개인적 경험이 영향이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당시(민청학련 사건) 정말 사형이라는 건 없어져야 되겠구나 하는 걸 처절히 느꼈다.”

유 의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 7월 민청학년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곧바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사건 관계자 등 8명은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4년 4개월을 복역한 유 의원은 2012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 선고를 받을 때 심정은 어땠나.

“학생들이 반(反)유신 시위한 걸 가지고 내란에다가 국보법을 적용하고. 우리가 공산정권을 세우려 했다는데 사형선고를 하니 그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데 사형 선고 때 졸았다는 얘기가 있던데.

“피고인이 졸 수 있나. 내가 아니라 어머니 얘기다. 당시 선고 때 피고인 가족은 1명만 방청이 가능했다. 국방부 안 군사법정에서 공판이 열렸는데 7월에다가 오후 2시쯤이어서 졸릴 때다. 김지하 시인 어머니가 모친보다 나이가 위신데 ‘여편네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데 졸고 있느냐’며 깨웠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사형은 생각도 못하셨겠지.”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온 유 의원은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특유의 입담과 소신 발언으로 ‘엽기 수석’이란 애칭을 얻었다. 그런데 그도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자주 졸기로 유명했다. 재미있는 건 아무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졸면서도 들을 건 다 듣는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이런 면모를 잘 알아서인지 이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형벌은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것인데 국가 권력이 흉악범죄를 저질렀다고 사람을 죽이는 권리까지 갖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다. 응보(應報) 감정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더는 국가 권력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살인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그래도 사형제가 흉악범죄 억지력이 있는 것 아닌가.

“유엔의 두 차례 조사에서도 사형제가 흉악범죄 억제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도 사형을 폐지한 주가 살인율이 더 낮다.”

―사형제를 없애면 대안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다.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흉악범을 세금으로 먹여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데 종신형이 되면 노역을 시킬 수 있다.”

―피해자 가족의 감정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피해자 가족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사회 공동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국가가 범인 죽이는 걸로 할 일 다했다고 끝내면 안 된다.”

―국민의 반대 여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사형제를 폐지했던 외국도 반대 여론이 높았다. 특히 프랑스가 존치 여론이 높았는데 의회와 정치 지도자들이 폐지했다. 이후 부활하자는 목소리도 전혀 없다. 유럽에서도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다. 한중일 중에서 우리나라가 폐지에 가장 근접해있으니 한국이 고리를 끊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2004년에도 175명의 의원이 서명했지만 결국 본회의 표결도 못 했다.

“당시 공청회도 했는데 법사위에서 발이 묶여 본회의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법사위원장이 반대했고, 새누리당 간사도 반대였다. 15대부터 18대까지 네 차례 사형제 폐지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표결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171명 의원 서명을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의원들 도장 받기 정말 어렵더라. 직원이 도장 받으러 의원실 가면 ‘의원님 지시 없었다’고 해서 몇번씩 들락날락하고…. 여러 사람 도움을 받았다. 가톨릭과 불교는 사형제 폐지가 교리인데 염수정 추기경이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달라며 강론을 했고, 조계종 자승 스님도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설득했다. 여러 분이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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