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싸우는 사람들] ④ 서울시방역대책본부 검사반 김영은 보건연구사

박세환 김판 기자 2015. 6. 22.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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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이러스랑 싸우고 있어? 보고 싶어"
서울시메르스방역대책본부 검사반 보건연구사들이 19일 경기도 과천 서울보건환경연구원에서 검사를 위해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실(BL3)에 들어가기 전 방역복을 입고 있다. 서울보건환경연구원 제공

‘엄마, 보고 싶어. 바이러스랑 싸우고 있어?’ 하루 종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씨름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하는 엄마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엄마는 ‘이겼어’라고 답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메르스 바이러스 검체를 들여다본다.

서울시메르스방역대책본부 검사반 보건연구사 김영은(36)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첫째가 아홉 살, 둘째는 일곱 살이고, 막내는 아직 세 살밖에 안 됐다. 김 연구사는 하루 24시간 중 15시간가량을 경기도 과천의 서울보건환경연구원 연구실에서 보낸다. 자는 시간만 빼고 메르스 의심환자의 검체 검사에 몰두하고 있다.

“당연히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죠. 그래도 멀리서 보기만 해요. 혹시라도 옮기면 안 되잖아요.” 김 연구사가 퇴근하는 시간은 일러야 오후 11시쯤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방문을 열면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세 아들은 곤히 잠들어 있다. 김 연구사는 잠든 아이들을 만지고 뽀뽀도 하고 싶지만 돌아선다. 혹시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남편과도 각방을 쓴 지 3주가 넘었다.

지난 19일 서울보건환경연구원에서 만난 김 연구사는 울먹였다. “그나마 저는 상황이 나은 편이에요.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시거든요. 검사팀 12명 가운데 아이 엄마는 저를 포함해 8명이나 돼요. 다들 저랑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미안함이요.” 김 연구사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엄마의 존재가 아이들 학교에 알려질까 걱정했다. 혹시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항상 조심스럽다.

서울보건환경연구원에는 매일 서울 각 지역의 보건소에서 보내는 메르스 의심환자의 검체 샘플이 들어온다. 12명의 연구사가 실험실에서 양성·음성 판정을 내리고 질병관리본부와 서울시에 통보하는 구조다.

모든 검사는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실(BL3)’에서 이뤄진다. 접촉을 통해 감염이 이루어지는 만큼, 검체를 검사하는 실험실은 철저히 통제된다. BL3 실험실의 출입문은 딱 하나뿐이다. 안전을 위해서다. 이 문을 닫으면 내부와 외부는 공기도 통하지 않는다. 문 안쪽은 음압 상태라 저기압이 형성돼 있어 혹시나 병원체가 누출되더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출입문에 들어선 뒤 네 차례 문을 더 열어야 실험실에 도착한다.

김 연구사는 “문을 열고 닫을 때 기압 차이 때문에 ‘아우∼’ 하는 소리가 나는데 여우 소리처럼 들려 소름이 끼친다”며 “양성 검체를 들고 밀폐된 실험실 안에 들어갈 때마다 ‘사고가 나서 갇히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밀폐된 공간이 주는 두려움이다.

에어컨을 켜놔도 방역복 안에서는 땀이 줄줄 흐른다. 김 연구사는 최근 실험실에 옷을 10벌 정도 가져다놨다. 땀을 흘려 입을 옷이 모자라지만 쇼핑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샘플 하나를 처리하는 데 2∼3시간이 걸린다. 장갑을 벗으면 흥건하게 고여 있던 땀이 물처럼 쏟아진다. 두통도 끊이지 않는다.

21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전국에서 1만3800건 정도의 메르스 유전자 검사가 이뤄졌다. 이 가운데 849건이 서울보건환경연구원에서 이뤄졌고, 19건이 양성으로 판정됐다. 김 연구사는 “검체가 양성으로 나오면 가슴이 철렁하다”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김 연구사에게 가장 두려운 건 살인적인 근무환경도 가족의 감염도 아니다. ‘자신의 실수’가 가장 두렵다고 했다. 실수로 검체가 오염돼 판정에 오류가 생긴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음성과 양성을 오락가락한 임신부 환자의 검체를 8번이나 검사했을 때엔 ‘실험을 제대로 하는 게 맞냐’는 지적에 속도 많이 상했다. 요즘 김 연구사는 하루 종일 검체를 검사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피곤함과 압박감이 더해지면서 온몸이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겁다.

처음 메르스 검사를 시작했을 때 김 연구사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도 “굳이 꼭 그것 해야 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김 연구사는 “그래, 우리가 해야지 누가 하겠어”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엄마들이 믿고 안심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10배 더 집중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있다. 사명감이 없다면 하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엄숙한 표정으로 묵묵히 실험실로 걸어 들어갔다.

박세환 김판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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