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안갯속 인생의 불빛.. 책 읽을수록 섹시한 뇌"
남을 웃기는 게 일이었다. 정작 자신은 웃지 못했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고 PD로부터 ‘비호감’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폭음을 거듭했다. 음주운전으로 방송에서 퇴출까지 당했다. ‘독서’라는 회초리를 들었다. 하루에 한 권꼴로 읽어댔다. 책과 신명나게 놀았더니 ‘자신’이 보였다. ‘책이 길’임을 알리고 싶어 책을 냈다. 제목은 <북세통>(베가북스). ‘북(책)으로 세상과 통하다’는 의미다.
14일 <북세통>을 들고 경향신문사를 찾은 개그맨 최형만씨(48·사진)의 얼굴엔 희색이 가득했다. 최근까지 강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는 최씨는 “메르스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고 있지만 그 덕에 책과 열심히 씨름하고 있다”며 웃었다. 강연에서 독서와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심각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전 어디까지나 개그맨일 뿐이죠. 유머와 소통을 주제로 강연합니다. 무겁지만 의미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가득한데….”
<북세통>에서 최씨는 “독서는 안갯속 같은 인생을 밝히는 헤드라이트”라고 역설한다. 1987년 KBS 공채 출신인 그는 ‘책 읽는 개그맨’으로 통했다. 명절이나 성탄절 때마다 그는 동료들에게 책을 선물했다. 최씨가 어느 날 신학대학원 동기의 집에 갔는데 책장에 그가 선물로 준 책만 100여권이 꽂혀 있어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한참 방황할 때 “인마! 똑바로 살아!!”라는 노숙인의 한마디에 술 대신 책을 찾았다는 최씨는 “해결책은 그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도올 김용옥 교수를 패러디할 때도 성대모사에만 안주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도서관은 “인생을 바꾸는 마술관”이었다.
최씨에게 독서 편식이란 없다. 원칙은 있다. ‘깊이 읽기’다. 괜찮은 책이라면 두 번, 세 번 읽는다. 책에 자신의 생각을 적고, 어떤 때엔 욕도 쓴다. ‘섹시한 뇌’를 만드는 데에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고 믿는 그는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는 르‘뇌’상스가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경제 수준이 일류라 해도 독서를 하지 않는 국민 의식은 하류 인생을 맴돈다”며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대 풍자와 유머 철학이 빈곤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마사지가 아닌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서 정치 세태와 부패한 재벌 기업을 비꼰 고(故) 김형곤씨를 언급했다.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해 세상에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 김형곤 선배가 그립다”는 그는 김씨의 따끔한 충고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개그맨은 자기 색깔과 철학이 있어야 해. 우린 코미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화게릴라야!”
최씨는 “언젠가 김형곤 선배를 잇는 ‘독(讀)재자’가 나올 것”이라며 “독서로 내공을 쌓아 세상을 향해 ‘독(讀)화살’을 날리자”고 후배 개그맨들에게 당부했다. 인터뷰를 마치자 그는 아주 훌륭한 책이니 꼭 읽어보라며 ‘믿음’을 주제로 한 책을 손에 쥐여줬다. ‘독(讀)한 전도사’ 최형만은 웃고 있었다.
<글 고영득·사진 서성일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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