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화가' 아닙니다, 전업작가로 살고 싶어요

홍상지 2015. 6. 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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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음 아트센터' 최진섭 작가사고 전신마비 .. 오른팔만 움직여10년 넘게 장애인 가르치며 봉사"장애 이용하고픈 마음 넘어서야"
최진섭 작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요즘 항아리나 도자기 등 전통미를 살린 정물화 그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인물화보다는 정물화를 사람들이 더 소장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악산 삼막사 아래 작은 마을이 최진섭(57) 화가가 어렸을 적 살던 곳이다. 어린 최 작가는 집 툇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달콤한 버찌의 맛을 보려 겁없이 나무에 올랐다. 가끔 들판에 떨어져 있는 포탄 등을 주워다가 번데기나 엿으로 바꿔먹기도 했다. 4형제 중 둘째인 그를 유난히 예뻐하던 할머니의 미소는 늘 포근했다. 18살 때까지 이어진 그 시절의 기억은 최 작가 그림의 오랜 주제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안양의 ‘소울음 아트센터’를 찾았을 때 최 작가는 햇살을 맞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전동 휠체어에 비스듬히 누워 붓을 놀렸다. 기자를 보더니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이렇게 됐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만의 농담이다. 사실은 18살 여름, 친구들과 동네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가 났다. 경추 6, 7번이 골절돼 전신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매일 누워서 병원 천장만 바라봤다. 욕창을 막기 위해 왼쪽으로 누워 3시간, 오른쪽으로 누워 3시간.

 “ 친구들의 대학 입학 소식, 결혼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부럽고 비참했죠. 그러다 합병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어요. 삶과 죽음이 몇 번 교차하고 나니까 ‘그저 살아만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약간의 신경이 남은 오른팔 손가락으로 붓을 잡은 건 그때부터였다. 사고 전 화가를 꿈꿨을 정도로 그림에는 꽤 소질이 있었다. 전문 화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초부터 천천히 익혀나갔다.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누워 그림을 그리는 게 그로서는 고행에 가까웠지만, 즐거웠다.

 1992년 최 작가는 다른 장애인 화가들과 ‘소울음 3인전’이라는 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그림을 처음 대중들 앞에 선보였다. 그리고 그해, 자신의 고향인 안양에 ‘소울음 아트센터’를 개관했다. 장애인들이 그림을 배울 만한 제대로 된 화실이 없다는 게 늘 안타까웠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재활이 돼요. 소울음은 그런 치유의 공간이자, 꿈을 찾는 공간이죠.” 전국 각지에서 그림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장애인들을 가르친 지 10년이 넘었다. 매년 장애인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일어서는 사람들의 기록전’, ‘소울음전’ 등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 학여울역 세라믹팔레스홀에서 ‘봄, 울림 ART&Talk 콘서트’를 개최했다. 관객 앞에서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장애·비장애인 통합 오케스트라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가 함께해 각 작품에 어울리는 곡들을 연주했다. 공연장 대관료와 차량 대절비 등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지원받았는데, 목표 금액의 140% 이상이 모였다.

 최 작가는 인물화, 그 중에서도 노인을 주로 그려왔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닮은. 하지만 요즘은 인물화뿐 아니라 정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그림에 자신의 독창성을 담으려 노력한다. 장애인 화가에서 ‘장애인’을 뺀, ‘화가’ 그 자체로 입지를 굳히고 싶어서다. “전시를 할 때도 ‘장애인’이라는 글자는 가급적 안 붙여요. 사실 장애인이라는 것만으로 주목을 받다 보니, 이를 이용하려는 장애인 예술가도 많아요. 장애인 스스로 그 벽을 넘어야죠.”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트센터의 규모를 키워서 기숙사형 학교로 만드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는 제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여 그림 팔아 잘 먹고 잘 사는 보통 전업작가가 되는 겁니다.”

글·사진=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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