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동포가 한땀 한땀 功들인 자수로 交感합니다

허윤희 기자 2015. 6.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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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그림 北에 보내 받아 온 완성작 15점 모아 전시회 여는 함경아씨] 맡긴 자수 1년 후 오고 절반 실종.. 완성도 제각각이지만 관여 안 해 "동포와의 소통, 그 자체가 작품"

작가 함경아(49)는 몇 년 전 독일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북한의 집단 예술인 카드 섹션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졌다. 김일성 주석의 얼굴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권총 이미지로 이어졌다. 카메라가 최대한 클로즈업한 찰나 낯선 화면 하나가 잡혔다. 쥐고 있던 컬러 차트 앞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재빨리 다시 뒤로 숨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지휘자의 사인을 보려고 순간적으로 얼굴을 내민 거죠. 한 소년이 거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한 픽셀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함경아는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6년 만의 개인전을 갖는다. 오는 4일부터 7월 5일까지 열리는 '유령 발자국(Phantom Footsteps)'전에서 자수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작업 과정이 독특하다. 중국을 통해 북한에 디지털 이미지의 회화 밑그림(도안)을 보내면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이 한땀 한땀 수를 놓아서 작가에게 완성품을 보내줬다.

"어떻게 작업하라는 지시문을 따로 쓰지는 않아요. 프린트된 밑그림을 보고 그들이 '해석해서' 자수를 입히는 식이죠. 많은 과정이 '우연'으로 이뤄집니다. 검은색을 써도 어떤 사람은 빨강, 노랑, 파랑을 써서 검은색을 만들지만 어떤 사람은 그냥 검은색을 써요. 어떤 작품은 완성도가 높고, 어떤 건 아주 떨어지지만 제가 전혀 관여할 수 없죠."

작업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다. 한 번 보내면 보통 1년 반 후에 돌아오고, 의도했던 색깔과 다르게 나오기도 했다. 보냈던 작품이 실종되기도 여러 차례. "10개 중 6개는 중간에 사라졌다고 보면 돼요. 해골이 그려 있으면 안 되고, 보석 같이 반짝이는 건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100%를 다해서 공을 들여 보내도 거기서 돌아오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며 "이 작업 시작하고 성격이 많이 변했다. 아주 많이 내려놓았다. 내려놓지 않으면 방법이 없기 때문에"라고 했다.

함경아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회화·설치·비디오·퍼포먼스 등 실험성 강한 작업을 통해 권력과 이데올로기 등을 폭넓게 다뤄왔다. 다분히 사회적 성향을 띠면서도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장엔 대형 화면에 거대한 샹들리에를 수놓은 '샹들리에 연작', 화려한 추상 이미지 속에 텍스트를 숨겨놓은 'SMS 연작'이 펼쳐져 있다. 이미지 사이에 'Money Never Sleeps(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Are you lonely, too?(당신도 외로운가요?)' 'Big Smile(크게 웃어 봐요)' 등 문구를 '은밀히' 숨겨놓았다. 샹들리에 연작은 컬러 차트 뒤에 숨어 있던 소년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화려한 샹들리에 이면에 한 픽셀, 한 땀을 위해 노력을 바친 북한 자수 공예가들과, 분단의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통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는 2008년 서울 마포의 집 대문 앞에서 삐라를 발견한 경험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북한 사람이 자수를 놓기 위해서 텍스트를 어쩔 수 없이 읽고 보게 되는 행위가 '삐라'와 비슷한 기능 아닐까요? 공간적 거리와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뛰어넘는 소통의 시도 자체, 그것을 둘러싼 과정 모두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함씨는 "매일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이 한땀 한땀 수놓은 정교한 스티치를 통해서 뜨거운 교감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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