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때 위안부 끌려가 대만·싱가포르 등서 처참한 삶

박영수기자 입력 2015. 5. 28. 11:41 수정 2015. 5. 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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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짓던 할머니, 恨 못풀고 또 하늘나라로

창원 이효순할머니 어제 별세"사죄안할 거야" 자주 되뇌어 이젠 생존 할머니 52명 남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하고 또 세상을 떠났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은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가 지난 27일 오후 7시 50분쯤 경남 창원 파티마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28일 밝혔다. 90세.

이 할머니는 지난해 11월부터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일본군의 사죄를 바라며 힘겹게 생명의 끈을 잡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2명으로 줄었다.

지난 192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세이던 1941년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배를 타고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한 후 대만과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으로 끌려다니며 위안소에서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이 할머니는 광복 후 22세 때인 1947년쯤 시모노세키 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 할머니는 부산과 마산, 서울 등지에서 생활하다 2007년 창원에 사는 여동생(80) 집 옆에 단칸방을 얻어 생활하는 굴곡진 삶을 살았다. 여동생에게 의지해 창원에서 여생을 보내려 했지만, 건강이 악화하면서 이듬해부터 요양병원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이 할머니는 천식과 패혈증이 심해지면서 지난해 11월 창원 파티마병원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달고 치료를 받아 왔다. 간병은 그의 하나뿐인 혈육인 여동생이 맡았다. 정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로 등록된 이 할머니에게 생활안정자금과 병원비 등을 지원해 왔다.

이경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는 "이 할머니는 '공식 사죄하면 얼마나 좋겠냐'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며 "하지만 병문안을 온 학생들에게 '일본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사죄를 하겠느냐, 일본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시민모임은 각계 사회단체와 시민 등으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29일 오후 7시 빈소에서 추모식을 개최하고,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

창원=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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