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립 단장 "한센인 돕는건, 사람이 사람대접 받게 하려는 법조인의 의무감"

입력 2015. 5. 28. 03:00 수정 2015. 5. 28.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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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낙태' 국가배상 이끈 한센인권변호인단 박영립 단장
[동아일보]
한센인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이끌고 있는 박영립 변호사가 21일 소록도 한센인이 찍힌 사진집을 들고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운명을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믿음이 생길 수 없다.’ 2008년 작고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흘러간 시대극처럼 이따금씩 우리의 기억을 헤집지만, 한센인의 아픈 과거를 보듬고 그들과 꾸준히 신뢰를 주고받는 이도 있다. 한센인권변호인단장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의 박영립 대표변호사(62·사법연수원 13기) 얘기다. 강제 단종(정관수술)·낙태로 인해 피해를 본 한센인들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총괄하는 ‘한센인의 대부’를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첫 배상 판결 받았을 때요? 이제야 이분들이 사람대접 받는구나 싶었습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세 번째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박 변호사는 지난해 4월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결을 떠올렸다. 당시 재판부는 “정관절제수술 및 임신중절수술을 한 행위는 불법 행위로서 국가가 헌법이 보장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침해했다”며 “단종수술을 받은 8명에게는 각각 3000만 원씩, 낙태수술 피해자에게는 4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시작으로 올해 2월에 이어 20일에도 같은 배상액으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나왔다.

박 변호사는 2004년 대한변협 인권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처음 한센인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일본 변호사들이 자국 정부가 과거 한센인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대만과 한국 등의 공동 대응을 제안하며 찾아왔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시행됐던 강제 단종 및 낙태 정책은 잠시 중단됐다가 광복 후 1949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졌다. ‘씨를 말리겠다’며 국가가 시행한 단종수술의 피해자는 1800여 명. 2007년 일본에 이어 한국 정부도 한센인 피해자지원법을 만들었지만 지급되는 생활지원금은 월 15만 원뿐이었다. 이미 일본 도쿄지법에서 소록도한센인 보상청구소송 패소 판결이 났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011년 650명 정도가 5차례로 나눠 국가에 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곧바로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국내 첫 검정고시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로 법조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전남 담양에서 무작정 상경해 시장 점원, 양복 기능공, 여관 심부름꾼, 공사장 인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22세에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숭실대 법경대를 수석 합격한 뒤 갖은 노력 끝에 19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사시 합격 수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전 지극히 이기적이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박 변호사는 시종일관 자신을 낮췄다. 항상 소송이 끝나면 자신에게만 조명이 집중된다는 점에 미안해하며 공동 변호인단을 일일이 거명하기도 했다. 그는 “벌어들이는 수입뿐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법률적 지식 등도 10분의 1을 바쳐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에 의무감이 생긴다”고 밝혔다. 한센인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한 그에게서 믿음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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