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르치며 가정 행복 찾아준 '경찰관 선생님'

2015. 5. 1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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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덕진서 박태순 경위.."아버지에 한글 가르치자 초등생 아들 좋아져"

전주덕진서 박태순 경위…"아버지에 한글 가르치자 초등생 아들 좋아져"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스승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퇴색하면서 '매 맞는 교사', '땅에 떨어진 교권', '스승의 날 휴업' 등 해마다 이 맘 때면 부정적인 키워드가 언론을 뒤덮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 특별한 '경찰관 선생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월 전북 전주덕진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박태순 경위에게 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교사는 "한 아이가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박 경위에게 도움을 청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A(12)군은 어릴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아버지와 할머니, 몸이 불편한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A군의 아버지(55)는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식을 돌볼 새가 없었고 이런 이유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A군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박 경위는 교사의 도움 요청을 받은 뒤 A군을 상담했고,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않으면 아이를 선도할 수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는 여러 차례 상담 요청을 한 끝에 A군의 아버지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A군의 아버지는 어려서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고 연탄가스를 마시는 바람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가 생활했지만 정착에 실패하고 10여년 전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내가 집을 나간 뒤 혼자서 A군을 돌봤지만 글도 모르는 아버지가 학년이 차츰 올라가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그렇게 부자간의 대화는 단절됐고, A군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박 경위는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뒤 글을 몰라 항상 위축된 A군의 아버지가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치센터 한글 공부방과 노인 복지센터 등 복지시설을 알아봤으나 생계를 위해 오후 7시께나 시간을 낼 수 있는 A군의 아버지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고민 끝에 박 경위는 스스로 한글을 가르치기로 하고 지난 2월부터 주말을 빼고 하루도 빠짐없이 A군의 아버지를 만나 오후 7시부터 두 시간씩 '한글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 핑계, 가족 핑계를 대며 수업을 빠지려던 A군의 아버지도 집까지 찾아가 수업을 하겠다는 박 경위의 열정에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A군의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거리의 간판을 읽을 수 있을 정도까지 한글 실력이 늘었다.

한글을 배우면서 A군의 가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처음에는 글을 모른다는 것이 창피해 아들에게 한글을 배운다는 사실을 숨겼던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집에서 한글 연습을 했고, 이런 아버지를 따라 아들도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A군도 박 경위와 선생님, 변화된 아버지 덕택에 학교생활에 차츰 적응을 해나갔다.

또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공부방에 와서 공부할 정도로 부자간의 사이도 좋아졌다.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A군의 아버지는 박 경위를 '선생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박 경위는 "A군의 아버지가 한글을 배우면서 표정도 밝아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어느 날은 '글 연습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옆에 와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더라'며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정말 기뻤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박 경위는 "일과 후 개인 시간을 쪼개서 수업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지만 한 가정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며 "A군의 아버지가 한글을 다 떼고 나면 셈법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선생님'으로 남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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