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앓는 '기스트' 환자 둘이 430km 국토대행진에 나선 까닭

안준용 기자 2015. 5. 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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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8시 물안개 핀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 두 중년 남성이 섰다. 배낭에 전국 지도를 꽂아 넣은 오세욱(50)씨가 마지막으로 운동화 끈을 고쳐묶는 강대식(61)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형님∼ 이제 출발하시죠.” “한 번 가볼까.”

오씨와 강씨는 위장관벽 근육층에 발생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기스트)’ 환자다. 기스트는 인구 10만 명 당 1~2명에게 생기는 희귀 질환. 오씨는 십이지장 기스트, 강씨는 위 기스트를 앓고 있다. 둘은 앞으로 16일간 430㎞를 함께 걷는다.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대장정에 나선 건 1년 전 한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씨는 작년 4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김성환씨를 만났다. 기스트 말기 환자였던 김씨는 “동료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며 당시 15일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국토 종단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일반들에게 기스트를 알리고 한 달에 720만원씩 하는 항암제 비보험 문제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걸으며 한국 기스트 환우회 인터넷 카페와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진과 이야기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환자들이 코스 중간 중간에 함께 참여했다. 오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오씨는 지난해 4월 2일 경기도 오산에서 성남까지 약 30㎞에 이르는 거리를 김씨의 가방을 대신 들고 그와 함께 걸었다. 김씨는 낯선 동행자에게 “그저 고맙다”고 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얘기로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됐다.

오씨는 “김씨가 내 몸이 상할까봐 염려하면서도 자기는 우리 환자들을 대표해 나선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면서 “고통을 이겨내고 국토 종단에 나선 그에게 감동 받아 ‘내년엔 꼭 함께 도전하자’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국토 종단에 성공한 뒤에도 그와 오씨는 꾸준히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김씨가 항암 치료를 계속 받던 중 작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실의에 빠진 오씨는 그 무렵 석달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받던 서울아산병원에서 새 짝을 만났다. 2009년 기스트 진단 직후부터 이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해온 강대식씨다.

오씨는 강씨에게 김씨와 했던 1년 전 약속을 얘기했다. 강씨도 “병원에서 봉사하며 보험 적용 안 되는 비싼 약값 때문에 죽어가는 기스트 환자들을 많이 봤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한 번 국토 종단에 도전해 이 병과 환자들의 고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다”며 동참하겠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들이 말렸지만, 이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틈틈이 체력을 기른 이들은 이달 11일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광주∼전주∼논산∼세종∼용인을 거쳐 26일 서울아산병원까지 이르는 총 430㎞ 도보 행진을 구상했다. 환우회 회장에게 국토 종단을 공식 환우회 행사로 하자고 제안했고, 서울아산병원의 지원 하에 ‘제1회 국토대행진’이 기획됐다.

둘은 전구간을 걷고, 환우회의 다른 기스트 환자들은 구간마다 합류하는 식으로 참여키로 했다. 이들은 약값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기스트 환자들을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매 1km 마다 50원씩, 완주 시 총 2만1500원 상당의 기부를 부탁하는 모금활동도 벌인다.

두 사람은 출발 하루 전날인 10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강윤구, 류민희 교수와 함께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출발 당일인 11일, 오씨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꼭 잘 해낼 테니 먼 나라에 계시더라도 꼭 지켜봐주세요.” 그는 1년 전 희망을 주고 떠난 김씨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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