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흑석동 반지하방에도 카네이션이 피었습니다.. 아들처럼 두 독거노인 돌보는 '순경' 이야기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다가구주택. 앞마당에 쭈그려 앉아 빨래를 하던 이난형(81) 할머니가 누군가를 보고는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어디 아팠어?" "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창밖을 내다봤지." "엊그제는 집 앞에 큰 경찰차가 왔기에 나 보러 온 줄 알고 따라 나갔어."
할머니가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맞은 이는 동작경찰서 남성지구대 이계열(54) 경위다. 감기에 걸린 탓에 오지 못하다 2주 만에 할머니를 찾아오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이 경위의 손을 어루만졌다.
이 경위가 카네이션을 꺼내 "우리 어머니 같다"며 가슴에 달아주자 할머니는 "내게도 아들 같다"고 말하더니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서둘러 가야 한다는 이 경위를 배웅하기 위해 굽은 허리로 집 밖까지 나온 할머니는 순찰차가 출발할 때까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날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놓인 또 다른 흑석동 주택가에선 이종순(90) 할머니가 붉은 벽돌담에 기대어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멀리서 순찰차가 보이자 주름 깊은 얼굴에 해사한 웃음꽃이 피었다. 이 경위가 순찰차에서 내리자 할머니는 두 손으로 맨땅을 짚으며 간신히 일어났다. "아이구 순경, 고마워요 이렇게 또 와줘서."
마중 나온 할머니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이 경위는 빨간 카네이션을 꺼내들었다. "예뻐요. 할머니." 이 경위가 오른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자 쑥스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얼굴에는 봄볕보다 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해 반지하 단칸방으로 들어간 이 경위는 "손 아픈 덴 괜찮으시냐" "염색할 때가 되었다"며 살갑게 이것저것 챙겼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를 건넸다. 일찍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10년 전 함께 살던 여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뒤 완전히 혼자가 됐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찾아주는 발걸음은 드물었다. 할머니는 "곧 죽을 사람을 신경써줘서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경위는 6년째 두 할머니의 '아들'이다. 1주일에 서너 번은 찾아 안부를 묻고 안색을 살핀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자란 이 경위는 2010년 흑석동 치안센터에 근무하면서 재개발구역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두 할머니를 살펴드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안부전화를 하다 차츰 직접 찾아가 소식을 묻거나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경찰 제복을 낯설고 두렵게 느끼던 할머니들도 이젠 하나뿐인 '순경 아들'을 기다린다.
이맘때는 이 경위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기다. 환절기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노인이 많아서다. 그는 "귀가 안 좋은 이종순 할머니께 전화할 때 통화연결음이 길어지면 순간 가슴이 무너진다"며 "한 번은 전화를 받지 않아 달려가 보니 못 들으신 거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살아나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전수민 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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