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을 잇다] 서른 번 반복하니 '조상의 色' 나오네요

단양/심현정 기자 2015. 5.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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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연 염색 匠人 김경열] 단양 밭에서 홍화 등 직접 재배, 어의·갑옷·명성황후 병풍 복원 외조부·외삼촌 기법 뛰어넘어.. 체계적 후대 전수 위해 논문도

충북 단양 시골길을 달리니 너른 밭이 보인다. 홍화(紅花) 밭이다. 파종을 막 마친 봄이라 꽃을 볼 순 없지만, 6~7월이면 온통 붉게 물든다. 주인은 밭 어귀 작은 기와집에 사는 김경열(56)씨다. 직접 재배한 홍화를 말려 색소를 내 옷감에 물들이는 전통 자연 염색 장인이다.

마당에 들어서자 예닐곱 개 큰 대야에 담긴 홍화 색소가 보인다. 처마 밑에는 그 색소로 물들인 붉은 옷감들이 걸려 있다.

김씨는 이 홍염(紅染) 옷감으로 조선 임금이 사냥갈 때 걸쳤던 철릭을 만들었다. 이것을 염색 단계별로 색이 다른 옷감 다섯 필과 함께 출품해 2008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염색을 서른 번 넘게 반복하니 아름다운 붉은색이 나오더군요. 어의(御衣)에 쓰는 최고 기술인 홍염 장인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어요."

그는 홍염뿐 아니라 찔레꽃·쪽 등 자연 염료를 이용해 염색한 직물로 만든 옛 복식이나 책 표지를 복원해왔다. 이순신 5대손인 이봉상 장군이 입었던 갑옷, 명성황후의 10첩 병풍, 순천 선암사에 보관된 대각국사의 가사(袈裟)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은 규장각 소장 의궤 표지에 사용된 직물의 복원에도 참여했다.

그의 본래 직업은 명주실을 만들고 염색하는 것이었다. 외조부·외삼촌을 이어 3대째 명주실 공방을 운영해왔다. "열여섯 살 때부터 외삼촌에게 배웠습니다. 누에고치 삶고, 숙성하고, 실 뽑고, 염색하는 전 과정이죠." 군 제대 후엔 서울 면목동에 공방을 차려 중·고교 가정 시간에 쓰는 바느질 교구를 만들어 팔고, 한복 제작자나 침선(針線)·자수 전문가에게 명주실을 팔았다.

자연 염색과 옛 물건 복원에 빠져든 건 문화재 전문위원이던 복식학자 김영숙씨 덕이다. "1991년 숙대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활옷을 복원해보라고 하셨어요. 1년 동안 작업해 기증했습니다." 옷감과 실 염색과 재단은 김경열씨가, 바느질과 수놓기는 침선 전문가인 아내 이형숙(56)씨가 맡았다.

이후 복원을 의뢰해오는 사람이 늘었다. 명성황후 10첩 병풍은 2005년 경복궁 고궁박물관 개관 때 기증했다. "양파 껍질과 치자에서 노란 물을 빼고, 검은 바탕은 오배자·찔레꽃·장미꽃으로 만들었어요. 수놓기까지 다 합쳐 2년 걸렸습니다." 2007년에는 홍염 가사 40종을 복원해 가사전(袈裟展)도 열었다.

그는 "수없는 시행착오와 기다림 끝에 오천년 우리 조상의 빛깔을 재현했다 싶을 때의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고 했다.

직접 작물을 재배한 건 1989년부터이고, 단양에 자리잡은 건 1999년이다. "자연 염색은 풍토적 특성이 중요해요. 염색이 잘 되는 환경이 따로 있는 거죠. 경기 파주부터 충북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어요." 현재 단양에 7000평 밭을 가진 그는 "여기도 주변 개발이 시작돼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야간고 졸업 후 공부와 담쌓고 지내던 그는 학점은행제로 학사 학위를 따고, 자연 염색을 소재로 석사 논문도 썼다. 그동안 연구한 기술이 많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남기고 또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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