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입력 2015. 4. 29. 03:00 수정 2015. 4. 29.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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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
국내 만화가로는 첫 초대전..원화-드로잉 등 500여점 전시

[동아일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 전시실에서 허 씨가 대표 캐릭터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 만화가 최초로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하는 그는 자신의 만화 앞에서 “잘 그렸어요, 잘 그렸어”를 연발하며 애정을 드러내 주변에 웃음을 선사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딱 3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

1974년 데뷔한 27세 청년 허영만(68)의 각오는 날이 서 있었다. 데뷔 3개월 만에 ‘각시탈’이 인기를 끌어 계속 만화를 그렸다. 40년이 흘러 청년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두꺼운 안경을 낀 중년이 됐다.

지난달 그는 커다란 벽에 지금까지 그린 만화 제목을 손으로 썼다. 모두 215편. 쓸 때마다 그의 얼굴이 벌게졌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듯 만화를 그린 대본소 만화 시절 작품 중에는 불태우고 싶은 원고도 있어서다. 제목을 다 쓰고선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 많이 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라고 썼지만 영욕의 역사가 담겨 있기에 품고 가기로 했다.

오늘의 허영만을 있게 한 ‘각시탈’과 영화로 제작된 ‘타짜’,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이동기 씨가 허 씨의 만화를 원작으로 그린 팝아트(위부터).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40년의 허영만 만화 인생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이 29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국내 만화가를 초대한 것은 처음이다.

개막을 앞둔 28일 전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 씨는 “첫 번째 만화 전시가 성공해야 제2, 3의 한국 만화 전시가 열릴 수 있다”며 “‘나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란 말을 가장 좋아하는데 허영만의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선 허 씨가 그린 원화 15만 장과 드로잉 5000장 중 500여 점을 선별했다. ‘각시탈’ 초판본 원화 149장은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된다. 갱지, 달력, 대학노트 등에 기록한 스토리, 아이디어, 메모를 통해 그의 창작 과정도 엿볼 수 있다.

허 씨는 전시관 중 ‘창작의 비밀―캐릭터, 연출, 스토리’ 전시실에서 쉽사리 발을 옮기지 못했다. 자신의 손을 거울에 비춰 가며 도박사의 손을 생생히 묘사해 낸 ‘타짜’, 전국 야구장을 모두 취재해 야구장 모습을 사실적으로 살린 ‘제7구단’ 등의 원화를 볼 때마다 추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특히 그는 ‘비트’ 원화 앞에서 “제가 봐도 정말 잘 그렸다”며 “같은 오른손으로 그리지만 작품 성격에 따라 새 그림체로 그리려고 무척 노력했다”고 말했다.

허영만에게 다 있지만 딱 하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여자 캐릭터. 전시관에서 여자 캐릭터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는 “만화 초기엔 여성을 등장시키지만 한참 진행하다 보면 여자가 사라진다. 여자를 예쁘게 못 그리니까 자꾸 없어지는 게 단점”이라고 했다.

허 씨의 문하생 출신인 ‘미생’ 윤태호 작가가 문하생 시절 허 씨 작품에 그린 그림도 전시됐다. 허 씨가 제자에게 건넨 쪽지에는 제자에 대한 사랑과 만화가로서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태호, 항상 네 작품의 내면을 믿었다. 그림 좋고, 긴장감 놓치지 않는 연출 좋고, 이 시대는 당신들 것이다. ‘이끼’를 보고 있자니 흑백만화는 생명이 없어 보인다. 이제라도 칼라 공부를 해야 쓰겄다. 윤태호에게 지지 않겠다.”

그가 매일 쓰는 ‘만화일기’엔 그의 최후가 그려져 있다. 향년 107세, 작업 도중 숨을 거둔다. 그 아래 ‘만화의, 만화를 위한, 만화에 의한 인생’이라고 써 두었다.

“항상 2등이란 얘길 들었는데 이젠 어깨를 겨루던 동료가 보이질 않으니 1등이 됐어요. 나는 남들이 비장하다고 할 만큼 스스로 담금질했어요. 앞으로도 조금씩 발전할 겁니다.” 7월 19일까지. 문의 070-7533-8998. 8000∼1만2000원.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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