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지하철까지 현대판 역사화가..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展 연 서용선 화백

손영옥 선임기자 2015. 4. 27. 02: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호미술관·학고재 동시기획전.. 서민의 외롭고 지친 일상 시각화

서용선(64)은 역사화가다. 계유정난, 동학혁명, 6·25전쟁 등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표현주의적 형상과 강렬한 원색으로 화폭에 담았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자'로 불리는 그의 시선이 우리 시대의 역사로 옮겨왔다.

서울 종로구의 금호미술관(80여점)과 학고재갤러리(20여점)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 전은 현대판 역사화의 난장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뉴스가 특유의 과감한 붓 터치로 시각화됐다. 그를 최근 금호미술관에서 만났다.

압도하는 건 휘어진 육송 14장을 연결, 캔버스 삼아 그린 '2014 뉴스와 사건'이다. 소나무 향이 진동하는 나무판 위에 세월호의 비극이 암청색 가라앉는 배, 시위대의 노란 깃발로 상징화되어 있다. 소재는 거침이 없다.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 재판관,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한 화면에 담겼다.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는 1980년대 민중미술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판화가 아닌, 옹이까지 밴 거친 나무판에 아크릴로 그린 방식은 민중미술보다 더 나아갔다.

"세월호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진동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캔버스가 아닌 더 강렬한 재료가 필요했어요."

첫 시도라 모험이었지만, 그는 나무판이 튕겨내는 진동에 몸을 섞어가며 지난 1년을 기록했다. 과거보다 색은 가라앉았다.

금호미술관에는 이 그림과 함께 세계 주요 도시의 풍경이 주로 걸렸다. 그에게 도시는 지금의 역사다. 그런데, 서울 베를린 뉴욕 베이징 멜버른 등 도시는 달라도 사람들의 행태와 표정은 비슷하다. 서울의 지하철 역삼역 주변을 서성하는 남녀들은 하나 같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걷고 있다. 익명의 그 얼굴들은 외로워 보인다. 독일 베를린의 알렉산더플라츠역, 호주 맬버른의 스완슨 거리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지쳐 있고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그는 "근대에 와서는 권력의 탄생 자체가 자본과 결탁 되어 있고, 자본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며 "그 중에서 지하철은 대량 운송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관철하는 우리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사건뿐만 아니라 세월호조차도 자본의 속성이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출근하기 위해 낯선 사람과 1시간가량을 맞대고 간다는 상황 자체가 어색한데 소외의 이미지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자본이 탄생시킨 '괴물' 지하철에 대해선 비판적이지만, 이걸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은 높아진 듯 하다. 이전 작품에서 지하철의 둔중한 외관만 그리거나, 사람이 나와도 겨우 뒷모습정도로만 처리했던 것에 비하면 신작들에선 사람들의 윤곽이 좀더 구체적이다.

흥미 있는 건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신체 비례가 작달막하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70, 80년대에 청춘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국수주의적인 게 내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해외를 돌면서 이제야 화폭 속에 외국 사람을 담거나 영어 글자를 넣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전시에는 세계 각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뉴욕 지하철에서 만난 흑인, 서로 데면데면한 버스 승객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로 관심이 꽂혀 있지만, 도시의 다양한 군상들로 시선은 확장됐다. 인천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행객, 베를린 거리의 버스커(거리의 악사), 뉴욕 바의 무용수들, 뒤샹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17세기 유럽 화가들이 그린 서민의 일상 풍경이 그 시대 표상이 되지 않았나요. 우리에겐 평범해 보이는 모습도 후대에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풍경이 될 겁니다."

서용선은 남들보다 4∼5년 늦게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22년간 교수로 지냈다. 그러다 그리고 싶을 때 맘껏 그리고 싶어 2008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