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잔다르크' 김마리아..널리 알리고 싶어요
"난 평범한 삶을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족두리를 쓰지 않았지만 결혼한 것과 다름없죠. 일본인 재판관이 현모양처가 되라고 했을 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과 결혼했으니까요." 많은 이들 기억 속에서 잊혔지만 일제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신여성이 있었다. 김마리아(1892~1944)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그의 사상과 삶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학계와 종교계에서 활발하다. 이 운동의 중심에 있는 양현혜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54)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여성으로는 나혜석 박인덕 김활란 등이 있지만 이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며 "그러나 김마리아는 여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고 리더로서 균형을 이루면서 살았다"고 평가했다.
황해도 장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김마리아는 조용하면서도 내공이 꽉 찬 여성이었다. 애국지사들에게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낸 그는 도쿄 유학 시절인 1919년 2·8독립선언에 참여했고 2·8독립선언서를 품에 지니고 국내에 들어와 전국 각지를 돌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을 촉발시킨 주요 인물 중 하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김마리아와 같은 여성동지 열 명만 있었던들 대한은 독립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초의 항일부녀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하다 투옥됐고 갖은 고문을 당해 뼛속에 고름이 생기는 지병을 얻어 광복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물론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김마리아처럼 온몸을 바쳐 애국하라는 것은 무리지요. 그러나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그의 삶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 의식과 책임을 가지고 확고한 신념으로 살다 간 여성이 있었다고. 특히 참된 지도자상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란 와야 할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묻고 그 길을 제시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죠." 김마리아는 한동안 국사책에 언급됐지만 지금은 교과서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왜 잊혔을까.
"여성이라는 측면도 있고, 후손이 없다는 점, 마리아라는 이름도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가 너무 물질 성장 위주로 달려오다 보니 기억해야 할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 측면이 크지요." 늦었지만 지난해부터 김마리아 삶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모교인 정신여고 총동문회와 장로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 3·1절에는 KBS에서 다큐멘터리 '김마리아,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다'가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
"김마리아는 일제의 고문으로 가슴 한쪽이 없었어요. 미국에서 돌아와서도 일제의 감시로 신학만 가르치다 신경쇠약으로 돌아가셨지요. 그럼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어요. 김마리아를 역사의 저편에서 불러내야 할 때가 왔지요." [이향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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