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사가 김이나 '나의 노래는'

전병근 기자 2015. 4. 1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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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칭찬 받는 데 익숙했다. 그런 식의 '인정'에 대한 욕구가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적당한 선에선 그게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평생 그런 것과 싸워온 것 같다. 칭찬 받기 위해 자꾸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 그게 가사를 쓸 때는 굉장히 도움이 된다."

"꿈을 위한답시고 무모해져서는 곤란하다. 내가 말하는 무모함이란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장밋빛 안경을 쓴 채 고통과 어려움은 미화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피해 의식에 젖기 쉽다. 잘된 사람은 왜 잘된 건지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작사에 올인하겠다는 식은 무모하다. 자기 꿈을 계속 키울 수 있는 현실 기반을 마련하는 게 1번이다. 그 다음이 가요를 많이 듣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래에서 곡은 얼굴, 가사는 성격이다. 히트곡은 일단 멜로디가 좋아서 인기를 끈다. 하지만 롱런하는 데는 가사가 중요하다."

"좋은 가사란 곡을 잘 살리는 가사다. 작사가로 칭찬 받고 싶어서 쓰는 건 실패한다. 가수와 잘 맞지 않는데도 잘된 곡을 나는 본 일이 없다. 한 곡을 위해 스태프가 얼마나 마음을 합쳐 노력했느냐의 문제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협업이다."

"가사를 포함해 좋은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다 보면 결국 세계관의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단순한 트렌드 읽기나 리듬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직업은 시류를 심하게 타는 일이다. 계속 버티려면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내 이야기만 고집하지 않는, 그런 아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바로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수록 잘 하는 작사가다. 작사가란 문학인이 아니라 음악 산업의 스태프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찍 정상에 오른 이의 표정이 이런 걸까. 곱게 생긴 얼굴에 여유까지 묻어난다. 음반에 적힌 이름으로만 알다가 처음 실물을 대한 작사가 김이나(36)가 그랬다. 올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가 주는 작사 부문 대상 수상자. 등록 회원 2만여 명 중 저작권료 수입이 1위라는 뜻이다. 2012~14년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도 3년 연속 올해의 작사가상을 받았다.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 그의 대표곡을 열거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한다. 아이유의 '좋은 날',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가인의 'PARADISE LOST', 에일리의 '저녁하늘',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임재범의 '어떤 날, 너에게'... 수로는 300여 곡에 달한다.

얼마 전엔 긴 산문을 이은 자전 에세이까지 냈다. '김이나의 작사법'(문학동네). 띠지에 올린 저자 사진이 못내 촌스러워 보이는 샛노란 표지의 책을 뒤적이다 인터뷰까지 감행하게 된 것은 '작가의 말'에 나오는 첫 대목 때문이었다.

"한 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좋은 일꾼이라고는 생각해왔다. 지금도 작사를 부탁받은 곡의 데모를 받아 들을 때면 변함없이 설렌다. 의지와는 달리 언제라도 이 산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걸 떠올리면 많이 두렵기도 하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수요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지간히 애쓰며 살고 있다.

언젠가 작사에 대한 책을 쓰게 된다면, 일이 가장 많을 때 아주 솔직하게 쓰겠노라 다짐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좋은 편집자를 만났고, 한 권의 책을 채울 수 있을 만큼 할 이야기도 많아졌음에 감사한다. (중략) 난생처음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쓴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이곳에서의 내 생존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이 '일이 가장 많을 때'임은 분명해 보였다. 지난달 26일 오후 인터뷰 약속 장소인 서울 시내 레스토랑.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늦은 식사로 계란프라이를 얹은 김치볶음밥을 들고 있었다. 옆엔 매니저까지 대동했다. "요즘 너무 바빠져서 기획사에서 붙여준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느 연예인 못지 않은 외모 탓에 작사가라기보다는 가수 지망생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던 터였다.

어쨌든 기자로서는 '지난 10년 사이에 할 이야기가 정말 많아졌는지', '그의 '생존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 확인할 차례였다.

-이력이 다채롭다.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지금은 최고의 작사가다. 어떻게 된 건가?

회사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어서 다녔다. 작사가로 일을 시작한 후에도 한동안 그랬다. 원래 (대중가요) 작곡가들을 좋아했다. 작곡가 콘서트도 자주 다녔는데, 한번은 김형석씨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열린 콘서트였다. 그때 잠깐 스치듯 뵙게 된 자리에서 무대뽀로 "선생님께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꿈나무를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 그럼 네가 실력을 한번 보여줘 봐" 하면서 녹음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갔다.

"자 쳐 봐라" 해서 피아노를 쳤는데, 아마 당연히 엉망이었겠지. 선생님이 "아직 화성학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이 수준 정도로는 프로에게 레슨 받을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 했다. 그러고는 "제가 그동안 많이 만나뵙고 싶었고, 최근에 선생님 콘서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 굉장히 많은데 제 블로그에 올려뒀으니 와서 구경하세요" 하고 나왔다.

그 뒤로 선생님이 내 블로그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일기 같은 것도 눈여겨 본 모양이었다. "글을 재미나게 쓰고,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작곡보다 작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데모 곡을 신인에게 맡길 기회가 생기면 네게 맡기겠다"고 했다.

-원래 작사가가 꿈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꿈은 아니었다. 그냥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정도. 지금도 사실 편곡과 음악에 관심이 많다. 고등학교 때 들었던 '그대 내게 다시'라는 곡(김형석 작곡, 노영심 작사)에서 처음 '가사'를 느꼈다. 그 전까진 그냥 노래로만 들었다. 내 생각엔 많은 사람이 지금도 노래를 그런 식으로 감상한다고 본다. 먼저 노래랑 친해지고 나중에 보니까 "어라, 가사도 좋네?" 이런 식으로. 지금도 늘 그때 내 경험을 살려서 생각한다. 곡을 먼저 듣고 가사를 쓴다.

-대학 때 전공은 미술사로 돼있다.

학교에서 택하는 전공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나한테도 학교 전공은 무의미했다. 물론 미술에 관심은 많았다. 하지만 전공 선택은 약간, 지적인 허세로 택한 것 같다. 지금 하는 일과는 별 관련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른 분과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했다. 미술사라는 게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긴 한데 그림을 텍스트로 설명하지 않느냐고. 그러니 그게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됐을 수 있겠다고.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음악을 텍스트로 풀어내는 작업이니까.

듣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했다. 역시 살면서 많은 것들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나 글 쓰는 취미는 없었나?

취미는 있었다. 초등학교 때 상도 받고. 무슨 백일장 같은 거 있으면 참여하고 싶어하고 선생님도 그런 걸 많이 시키셨고.

-문학 소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뭘 쓰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한테도 편지 써주고 하면 나랑 친하지 않은데도 다들 받고 싶어했다. 재미있다면서. 원래 이렇게 자기 자랑하는 게 인터뷰 맞겠지?(웃음) 제대로 된 산문은 아니고 시, 아니면 짧은 편지 정도의 산문이었다.

-작사가가 되기 위한 코스랄까, 그런 게 있나?

그런 건 없다. 영화 감독의 길이라는 게 따로 없는 것처럼. 작사가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있겠지만 작사가가 되는 법 같은 건 없다.

-운인가?

상당 부분은 운에 달렸다고 본다. 하지만 그 운이 내게 왔을 때, 그 기회에 부응해서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느냐의 차이라고 본다. 내 경우엔 김형석 작곡가를 만났던 게 운이라고 생각한다.

-준비라면 어떤 걸 말하나?

일단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혼자서 음악 없이 쓰는 글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은 것과 작사가가 되고 싶은 것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싱어송라이터는 자기 이야기를 자신이 만든 음악에 붙이는 작업, 동시에 하는 작업이다. 반면, 작사가는 가사만 쓰는 작업이다. 전혀 다르다.

나는 데뷔곡인 '10월에 눈이 내리면'을 쓰고 난 후 몇 년 동안 쓴 곡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워낙 아는 사람끼리 일하는 곳이라서 의뢰를 받아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다른 직장이 없으면 버티기가 어렵다. 작사에 '올인하겠다'는 식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무전여행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겠다는, 뭐 그런 식의 나이브한 생각이다.

-본인은 어떻게 했나?

작사가로 서기까지 여러 직장을 다녔다. 첫 직장은 사브 로즈마운트 코리아라는 회사였다. 계측기술이 있는 회사였는데, 제일 크게는 인공위성, 작게는 기름통 같은 것 위에 다는 계측기를 한국에 납품하는 회사에서 마케팅팀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냥 인쇄물 챙기고 연락처 목록 업데이트하는 일을 했다.

-그때도 작사 습작은 했나?

그땐 아니었다. 작사는 모바일 콘텐츠 회사로 가면서. 그게 나로서는 첫 음악 관련 일이었다. 그때는 소리바다 때문에 음반 시장이 다 죽고 유일하게 음악 관련 매출을 올리는 최고의 플랫폼이 모바일 콘텐츠였다. 벨소리, 컬러링. 그때는 작사가가 되겠다는 것보다 음악을 만드는 막후에서 일하고 싶었던 거다. 공연기획사든 음반 재킷 디자인 회사든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결국 그런 일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모바일 콘텐츠 1팀이 된 거다. 우리 최대 고객이 SKT였는데 벨소리를 납품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쪽에서 다운 받으면 가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연계하는 일을 벌이고 다녔다. 작은 일이지만 내게는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음악계와 닿은 게 그때인가?

그렇다. 그때 박효신씨를 처음 만났다. 박효신씨가 이번 내 북콘서트에 와주기로 했는데 그 시절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그러다가 가사를 써보겠느냐고 하며 데모가 와서 처음 써볼 기회가 생겼는데 덜컥 된 거다. 그때 드디어 내 작사가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했다. 그런데 책에도 썼듯이, 그래봐야 아무도 모른다. 작사가 김이나라는 이름을 아는 대중은 일부의 일부의 일부, 관심 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걸 업으로 삼으려면, 감성을 키운다든지 하는 걸 떠나서, 무조건 자기 꿈을 계속 키울 수 있는 현실 기반을 마련하는 게 1번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 가요를 많이 듣는 거다.

내 경우는 전혀 관련 없는 것들 속에서 그래도 계속 (음악과 관련된) 뭔가를 했던 거 같다. 나 혼자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어쨌든 저 음악 산업 안에 들어갈 거라는 확신.

-전업 작사가가 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던진 건 언제인가?

결혼하고 1년 뒤였다. 결혼을 해서 그만둔 건 아니다. 내 월급보다 저작권료가 더 많아졌을 때 그만뒀다. 회사 다닐 때도 저작권료가 가끔씩 월급보다 많이 나올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한 곡이 괜찮다고 그만둬선 곤란하다. 그야말로 한 때에 불과해서. 어떤 달은 300만원 들어왔던 게 몇 달 후엔 20만원 들어오곤 한다. 한 곡 떴다고 직장까지 그만두기엔 수입이 굉장히 불안정한 거다. 평균치가 아무리 못 해도 월급보다는 더 나온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만뒀다.

-혹시 남편은 어떤 일을 하나?

결혼 당시엔 함께 일하던 대기업 팀장이었다. 지금은 이쪽에서 음반 제작,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작곡가에 비해 작사가는 상대적으로 빛을 덜 받는다. 지위나 처우 같은 건 어떤가?

천차만별이다. 평균치로 위상을 말하기엔 편차가 너무나 심하다. 일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편차가 아주 심한 직업이다. 일이 많은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괜찮고 자유롭고 편하게 살지만, 아닌 사람들이 많다. 사실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작곡가들은 서로 교류가 있다. 음악적인 멘토나 선후배가 있다. 반면에 작사가는 협업할 일이 없다 보니 그렇지 못하다. 개인적인 친분이야 몇몇 있지만 일로 맺어지는 그런 관계는 없다. 예를 들어 작곡가는 "네가 리듬을 잘 하니까 네가 이 부분을 하고 내가 이 부분을 맡을게" 하면서 같이 작업도 하지만 작사가는 그럴 일이 없다.

-본인은 일이 많은 편에 속하나?

많은 편이다.

-히트곡이 굉장히 많다. 요즘 떴다 싶은 곡들을 보니 상당수가 김이나 작사다.

원래 작사가란 직업이 그렇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작사가만 공통분모로 놓고 듣진 않으니까. 잘 의식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쓴 곡은 몇 곡이나 되나?

보니까 300곡 정도 된다고 한다.

-다 기억하나?

물론 보면 기억하는데, 일일이 다 외고 다닐 순 없다.(웃음)

-묵혀둔 미발표 가사도 있나?

원래 나는 작업 방식이 미리 써두는 걸 못한다. 사실 그게 무의미한 것 같다. 가사는 시처럼 텍스트만 두고도 좋은 글이 필요한 게 아니다. 멜로디가 먼저 오면 거기에 어울리는 말을 써야 하는 게 작사다. 가끔 테마는 미리 생각해둘 수도 있다. 그게 몇 줄의 글, 이런 형식이 아니고, 어떤 상황 설정이다.

가령, '아이야 나랑 걷자'(아이유와 최백호의 듀엣 곡)라는 곡 가사의 경우에는, 어떤 말 한 줄을 어디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드문 경우다. 보통은 곡이 먼저 나오고 가수가 있어야 그 캐릭터를 상상하면서 가사가 나온다.

그냥 어떤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경우는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 싶은 것. 가령, 들풀은 그냥 한번 돋아나면 계속 풀이지만, 그 옆의 들꽃은 봄이 오면 피고 지고 하지 않나. 그러면 풀이 '나도 내년엔 피려나' 하고 기다리는 그런 것. 너무 불쌍하지 않나?(웃음)

<아이유 & 최백호의 '아이야 걷자' 작사 후기>

최백호 선생님과 아이유가 듀엣 곡을 부르게 된 것은 이 곡 작곡가인 박주원님이 일전에 최백호 선생님과 작업한 일이 있어서 닿은 인연이었다. 최백호 선생님으로 결정되기 전에 나는 아이유의 가사 중에 '아이야 나랑 걷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유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입장이었지,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막상 최백호 선생님과의 듀엣이라고 하니까, 그 말은 선생님 입에서 나오고, 위로받는 사람이 아이유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걷는 두 사람이 그려졌다.

현자들이 선문답하듯 선생님과 아이유가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해봤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누가 봐도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라, "그냥 저 멀리 나랑 한 바퀴 걷자"는 말만으로도 힘이 실리는 캐릭터가 바로 최백호 선생님인 것 같았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으니"라는 후속 가사의 경우는 아이유에게 "네게 해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 거다"라는 예언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야 나랑 걷자"라는 말이 의뢰 받은 곡 도입부의 최백호 선생님 첫 멜로디 음절에 정확히 맞아들어갔다. 이 곡을 만나려고 내게 미리 와 있던 한 줄이었나보다.

-데모 곡을 받고 가수가 누군지 알고 쓴다고 했는데, 다른 작사가들도 그렇게 하나?

그렇다. 싱어송라이터는 다르다. 작사부터 해도 되고 곡부터 써도 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사가가 일을 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가수가 앨범을 내기로 결정되면 작곡가들 경쟁을 거쳐 수록곡이 정해진다. 그러면 작곡가가 여러 작사가에게 데모를 돌려 가사를 받는다. 그 중에서 작곡가가 마음에 드는 가사를 선택하는 거다.

작사가가 되려면 이런 음반 산업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 책에 음악 산업 관련 이야기를 쓴 것도 그 때문이다. 나도 같은 공정 단계에서 작사 의뢰를 받는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작사부터 한다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친한 작곡가와 장난 반으로 할 때나 그렇다.

-책에 보면 '궁예질(사람 얼굴만 보고 마음을 꿰뚫어보는 관심법을 의미)'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가수가 제일 잘 들어맞았나?

가사의 주인공이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꼭 맞아 떨어져야 좋은 가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잘 아는 가수에 대해서는 아는 면과 다른 허구적인 요소를 더하기도 한다. 내가 상상한 것과 정말 비슷했던 가수는 박정현이었다. 아쉽게도 함께 해본 곡은 한 곡뿐이다.

-'김이나표 가사'와 잘 맞다고 생각되는 가수가 있나?

글쎄, 일단 작업을 같이 많이 해본 가수는 가인, 아이유다. 아이유는 내 가사도 잘 소화하지만 자신이 쓴 가사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자기 언어로 자기가 하고 곡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싱어송라이터가 베스트라고 하는 거다. 단순히 가사 내용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수의 실력을 말할 때 보통은 가창력이나 성대까지만 생각하는데, '발음 싸움'이 있다. 얼마나 발음을 '맛있게' '착 감기게' 내느냐 하는 문제다.

아이유가 바로 그런 발음에 뛰어난 가수다. 딱딱한 발음을 부드럽게도 낼 줄 알고, 때로는 부드러운 발음을 일부러 '씹어서' 부를 때도 있다. 자유자재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아이유가 '발음 맛을 아는' 가수라고들 한다. 그런 가수가 직접 가사를 쓸 때엔 '내가 어떤 발음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쓰는 거다. 아마 일부러 계산을 안 해도 머릿속에서 그런 작업이 진행될 거다.

아무래도 같이 작업을 많이 한 가수의 가사가 잘 나오기는 한다. 그 사람을 잘 아니까. 내 경우엔 가인이랑 잘 맞는다. 특히 타이틀곡이 아닌, 큰 부담 없는 수록곡일 때 곡이 잘 나오곤 한다.

-같이 해보고 싶은 가수는?

정말 막연하게 그냥 함께 작업하고 싶은 분을 꼽는다면 나훈아 선생님. 내가 연륜 있는 선생님과 작업해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확실히 가사를 다루는 자세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보통 가사를 쓸 때는 가수가 부르는 걸 상상하고 쓴다. 가사란 게 써 놓은 글과 불러보는 게 너무 다르다. 나도 직접 소리를 내 불러보면서 쓰곤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게 있다. '이 단어는 발음을 좀 흘리듯 부르면 좋겠다' '이 부분은 딱딱 끊어 불러줬으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관록 있는 가수들은 작사가의 상상대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임재범씨가 그랬다. 가사를 쓰면서 '아, 이런 부분은 음정 같은 건 신경쓰지 말고 포효하듯 해주면 좋겠다'고 상상했는데 녹음할 때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거다.

그런 분은 가사를 처음 볼 때부터 여유가 있다. 어린 가수들은 가사를 처음 보면 시간을 들여 캐릭터 파악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할 여유가 없는 편이다. 반면에 연륜이 쌓인 가수는 그렇지 않다. 가사를 대사처럼 소화한다. 그래서 '거장'이라는 가수들과 작업하면 작사가로서 부담은 되지만 그 과정이 정말정말 짜릿하다.

-나훈아는 나이 차가 꽤 나는 가수인데?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세대 차이라고 해도, 내가 어릴 때 구창모씨가 한창 활동했다.(웃음)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던데 어떤 음악을 주로 들었나?

그때도 한국 음악부터 팝송까지 다양하게 들었다. 늘 최신 유행곡, 메인스트림 음악을 듣는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이었다. 약간 상업적인 걸 즐긴다고나 할까.

-대중음악 작사가가 되려면 그래야 할 것 같긴 하다.

자기가 그런 노래를 정말 좋아해야 한다.

-대중의 트렌드 변화도 잘 읽어낼 것 같다. 요즘 느끼는 변화가 있나?

예전에는 가사들이 주로 깊은 감정만 다뤘다. 너무 얕은 감정은 굳이 가사로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랬다. 희로애락 어떤 감정이든 다 농도가 짙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얕은 감정이 대세다. 예전 같으면 굳이 풀어낼 필요가 없는 느낌들을 가사로 쓴다.

예를 들어 요즘 '썸'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썸 탄다'는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설령 예전에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해도 그걸 '썸'이란 말을 쓰지는 않았다. 혼자 짝사랑만 하다 말거나, 속만 태운 거다. 요즘 애들은 '썸 탄다'는 관계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걸 즐긴다.

그런 애매모호한 감정이 요즘엔 훌륭한 얘깃거리가 되고, 그 세밀한 감정선에 대한 얘기로 노랫말을 쓴다. 그런 게 대중의 공감을 얻는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쪼개졌구나' 하는 걸 느낀다. 더 자잘한 감정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거다. 그게 세대 문제인지, 다른 어떤 건지는 명확하진 않다. 하지만 바뀐다는 느낌은 분명하게 온다.

-책에서 "곡은 얼굴, 가사는 성격"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호감을 끄는 건 얼굴 아닌가. 그러다 더 길게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성격이라는 요소다. 노래에서는 곡과 가사가 그런 역할을 한다.

처음 노래를 들을 때, 가사 때문에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면 모를까. 대중적으로 히트치는 곡은 일단 멜로디가 좋아서 인기를 끈다. "저 사람 멋있다" 소리를 들으려면 얼굴이 좀 돼야 하는 것처럼, 곡은 첫인상 싸움에서 튀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성격이다. 성격이 매력적이어야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내 경험도 그랬다. '그대 내게 다시'를 들을 때 처음엔 그냥 좋아서 맨날 들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한 구절이 마음에 콱 박힐 때가 있다. 마냥 좋아서 듣다가 문득 보니 '어라, 이 노래 가사는 이렇네?' 하는 거다. 그때 깨닫는다. 멜로디가 밝아서 신나는 노래로 알았는데, 가사를 보니 슬픈 노래인 경우도 있다.

얼굴이 멋있고 예뻐서 만났는데 오래 봤더니 성격은 또 이런 매력이 있네? 하는 식으로. 노래도 롱런하는 데는 가사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보면, 달콤한 가사를 쓰는 사람인데 생각은 아주 현실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작사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음악 산업을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고 했다. 작가나 예술가로 생각해 본 적은 없나?

작사가라는 직업을 예술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꿈은 있다. 다만 이번 책은 자서전이 아니다. 작사법에 관한 얘기다. 그래서 작사법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그냥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작사와는 별개의 욕망이다. 멜로디 없이 홀로 선 글을 쓸 때에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시에도 운율이 있다. 대중가요의 가사 역시 운문의 형식을 띤다. 작사가도 문인이라거나 작가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지금까지는 해본 적 없다. 문학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 가사를 써본 적이 없다. 내 생각엔 작사와 작곡에 노래까지 다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경우에는 문학에 가깝다고 본다.

내 경우에는 시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꿈이다. 아주 나중 일이 되더라도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

-곡마다 가사의 주인공이나 설정이 다르다. 쓰면서 자신의 변화 같은 걸 느끼나?

굉장히 많이 느낀다. 작사도 이런데 하물며 문학은 더 그럴 거라 생각한다. 결국 좋은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다 보면 결국 세계관의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단순한 트렌드 읽기나 리듬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나 우리 직업은 시류를 심하게 타는 일이다. 계속 버티려면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내 이야기만 고집하지 않는, 그런 아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바로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존경하는 작사가 중에 양재선(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 '차마',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 등 작사), 박창학(윤상의 '달리기' '날 위로하려거든', 김동률의 '출발' 등) 이런 분들이 있다. 그분들 가사는 테크닉이 훌륭한 게 아니다. 그냥 가사 자체가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사실 가사의 테크닉으로 말하자면 내가 쓴 작사법에 나온 것만 숙지하면 비슷비슷한 수준이 된다. 뭔가 특출나게 돋보이는 가사란, 쓴 사람의 사유가 얼마나 깊은지, 거기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연설문 보좌관 출신으로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라는 책을 쓴 강원국씨가 이런 말을 했다. "스피치 라이터는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연설 주인공에게 빙의돼야 한다. 그 글에서 '나'는 사라져야 한다"고.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 작사가도 비슷한 것 같다.

맞다. 내 책에서도 계속 그렇게 강조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수록 잘 하는 작사가다. 작사가란 문학인이 아니라, 음악 산업의 스태프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분명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고비가 한번은 온다. 나도 그랬다.

내가 좀 일거리가 많은 작사가가 됐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아이돌 그룹 댄스곡을 맡거나 하면 '내 이야기'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리듬을 맞춰야 하고, 젊은 사람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문장이 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있다. 같은 가사의 짧은 후렴구를 반복하는 후크송이 그렇다. 가령, 내가 쓴 곡 중에 '어쩌다'란 곡이 있다. 후렴구가 반복되면서 계속해서 '어쩌다'란 말이 나와야 한다. 이런 걸 쓸 때 가사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내 문장을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그 '문장'이란 게 이 곡과는 안 어울릴 수 있다. 그런 것과 계속 싸워야 한다.

또 가사를 쓰면서도 자신은 어떤 길을 갈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중에 김이나 작사가라는 이름으로 통계를 낼 때, "모든 가사가 한결같이 주옥같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아니면 업계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더라도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나는 후자 쪽이다.

작사가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자신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직업인으로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작사가로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내 이름을 알고 노래를 듣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작사가들이 그런 유혹에 쉽게 빠진다.

나만 해도 이번에 책을 쓴 뒤 관련 기사가 60건 이상 나왔다. 그 기사라는 게 결국 내 이름을 검색해야만 나오는 것들 아닌가? 그런데도 그날 하루는 온 세상이 내 얘기만 하고 있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그렇게 경계해오던, 그런 (자아도취)병에 걸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평정심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웃음)

-선호하거나 자신 있는 장르가 있나?

음악만으로 치면 미디엄 템포의 곡. 나는 내가 시적인 가사를 대단히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댄스곡은 정말 기발하게 잘 하는 어린 친구들이 따로 있다. 지드래곤이나 블락비(Block B)의 지코(Zico) 같은 친구들 리듬감은 내가 따라가질 못한다.

그 대신 리듬감도 어느 정도 있으면서, 어른들이 들을 만한 가사도 쓸 수 있는 곡. 그런 곡이 미디엄 템포라고 생각한다. 그런 곡을 받을 때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기술과 감성 둘 다 필요한 장르다.

-자기 가사 중에 가장 좋아하거나 인상 깊게 남은 곡이 있다면?

사실 그때그때 달라진다. 작사가의 경력 측면에서 본다면 조용필 선생님과 작업한 '걷고 싶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선생님과 작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엄청난 거다.

가사만으로 본다면 박정현의 '서두르지 마요'와 에일리의 '저녁 하늘' 두 곡에 애착이 간다. '서두르지 마요'는 가사 속의 캐릭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보통 가사를 쓸 때는 캐릭터를 설정하곤 한다. 그럴 때 흔히 택하는 게 어딘가 한 군데 결점이 있는, 삐뚤어진 구석이 있는 캐릭터다. 그래야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하지만 '서두르지 마요'에서는 정말 성숙한 인간상을 상상하고 썼다. 그런데도 가사가 굉장히 잘 나왔다. 내가 박정현이라는 가수를 상상했을 때도 그런 성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 만났더니 내 상상과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었다. 내게 신기(神氣)가 있나 싶을 정도다.(웃음) 그렇게 노래하는 가수가 내 상상과 꼭 맞으면, 정말로 그 사람의 가사가 된 것 같아 굉장히 애착이 간다.

'저녁하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보통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잘 담지 않는 편인데, 이 곡은 내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사실 내 모티브가 들어간 가사는 이 곡 외에도 꽤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 가사는 쓰고 나서 속으로 걱정을 좀 했다. 이게 너무 '내 이야기'라서, 사람들이 이걸 '아픔'에 비유하는 걸 공감하지 못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작곡가가 좋아했고, 대중이 좋아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다. '아, 내가 대단한 아픔이나 상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 '쓸쓸함'에 대한 정서가 누구에게든 보편적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곡이다.

-가사 쓰기 전에 노래 부를 가수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

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보거나 하면서 어떤 사람일지 많이 상상한다.

-신인은 어렵겠다.

알려진 가수에 비해, 신인은 얼굴도 모르고 별다른 정보가 없는 상태여서 가장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가수 성별, 나이 같은 기본 정보는 당연한 거고, 구체적으로 각 멤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도 묻는다. 어떤 콘셉트를 잡고 가는지도. 걸그룹이라면 모범생인지, 노는 애들인지도.

잘 하는 회사는 확실한 콘셉트가 있다. 가령 '투애니원보다는 덜 놀았지만 포미닛보다는 더 논 정도' 하는 식으로.(웃음) 어떤 기획사는 막연하게 "알아서 잘 해주세요" 한다. 그런 게 가장 어렵다.

-가수를 직접 만나서 물어보기도 하나?

그 정도는 아니고.(웃음) 원래 내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추려는, 한 마디로 눈치를 많이 보는 게 있다. 약간의 생존 본능이라고나 할까.

-책에도 썼던데, 부모님이 헤어진 후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고 한 게 영향이 있었을까?

아마 그럴 거다. 굉장히 생뚱맞은 이야기까지 흘러가는데.(웃음)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일을 해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두 분한테는 내가 손녀니까 칭찬을 무척 많이 해주셨다. 어릴 때부터 칭찬 받는 데에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칭찬을 못 받으면 굉장히 불안해지더라.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반에서 1등을 했는데, 4학년이 돼서 10등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차마 그걸 말씀을 못 드렸다. 여전히 칭찬을 받고 싶으니까. 그런 식의 '인정'에 대한 욕구가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적당한 선에선 그 욕구가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평생 그런 것과 싸워온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본다고 했는데, 그런 성향도 거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이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면, 이 사람이 날 좋아하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까를 자꾸 생각하는 거다. 무의식중에 자꾸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가사를 쓸 땐 굉장히 도움이 된다.

-대화를 하다 보니 남의 관심과 칭찬을 얻는 기술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생존 본능이…(웃음)

-그런 감각이 대중가요 작사가에게는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예술가라면 아마 '누가 뭐래도 난 이거야' 할 텐데.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동의를 얻으려 한다. 다행히 그런 내 성향이 잘 발현된 것 같다.

뭐, 지금처럼 작사가가 못 됐더라도 나는 잘 살아남지 않을까. 어디서든 눈치를 보면서…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다.(웃음)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 따로 공부도 하나?

예전엔 공부라기보다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다. 소설, 특히 추리소설 같은 게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이번 책을 쓰면서 내 부족한 점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 생각을 비유나 수사 없이 정리하는 걸 참 못하더라. 어떤 걸 써도 꾸밈이 들어간다. 말을 하듯이 재미있는 걸 섞어서 이야기한다면 잘할 수 있겠지만, 그냥 텍스트로만 쓰면 참 부족하구나, 그런 기본기가 참 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전엔 내가 글은 좀 쓴다고 생각했다.(웃음) 가사도 빨리 쓰는 편이고, 작사가로 데뷔하기 전 블로그에 쓴 글도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어서일 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요즘 국어사전을 새삼스럽게 다시 본다. 일부러 딱딱한 글도 많이 읽는다. 기본적인 문장을 익히고 있는 거다. 지금의 내 문장은 너무 비틀어져 있다고 해야 할까.

-작사가라면 지금 말한 비유와 수사가 중요한 것 아닌가?

물론 그래야 하지만, 가사에도 뼈대는 있어야 한다. 너무 그쪽으로 치우치면 가사도 굉장히 느끼해진다. 기본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 이런 멋 저런 멋을 부리는 것은 괜찮다. 가령, 송창식 선생님이 대충 부르실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잘 하는 분이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을 다 구사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거장들 모창만 하고, 흉내만 낼 줄 아는 사람은 발성법부터 차이가 난다.

모든 일이 그렇다. 먼 훗날에 봤을 때 멋이나 요령만 남아있지 않으려면 근본을 잘 다져야 한다. 내 일에서는 어쨌든 가장 근본에 가까운 게 글자다. 요즘 국어사전 보면서 깨닫는 게 많다.

'현실'을 한 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하면 분명히 아는 말인데도 당황하지 않나? 사전을 보면 모호했던 뜻이 명쾌해진다. 그래서 '맞아, 맞아, 이런 뜻이지' 하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소설로 감성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단어의 의미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니까.

또 하나. 긴 글을 쓰면서 보니 내가 같은 단어를 너무 많이 쓰더라. 짧은 글을 쓸 땐 잘 몰랐는데, 그런 점에서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그래서 책을 쓰면서 편집자에게 "이 단어와 같거나 비슷한 뜻의 단어를 최대한 많이 찾아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좋은 가사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좋은 가사'가 뭔지 고민한다. '이 곡 작사 누가 한거야?' 이런 말을 듣는 가사를 쓰고 싶은 건지, 아니면 '곡이 뜨도록' 만드는 가사를 쓰고 싶은지.

같은 곡을 놓고도 다른 가사로 불러보면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심지어 멜로디까지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니 '가사가 참 예쁘다, 좋다'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다른 글 쓰는 것과는 정말 다른 작업이다.

일부러 내 책 편집자에게도 같은 곡을 다른 가사들로 불러보라고 했다. 그 차이란 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사실 책에도 QR코드를 넣어서 독자가 체험하게 할까 생각도 했다. 책에 아무리 글로 써도 그걸 체감하기 전까진 잘 모르니까. 마치 수영을 말로만 설명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결국 좋은 가사란 곡을 잘 살리는 가사라고 생각한다. 작사가로 칭찬 받고 싶어서 쓰는 건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런 걸 하려면 차라리 싱어송라이터를 하라고 얘기한다. 내가 가사를 붙이는 이 곡이 잘 되고, 가수가 잘 되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

10대 아이돌 댄스곡에, 조용필 선생님께 드릴 가사를 붙이면 엉망이 되고 만다. 가사를 잘 팔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아니다. 가수에게 잘 맞는 가사를 쓰면, 그 노래가 잘 팔리고 결국 내 가사도 잘 팔리는 거다. 그러니 가수에게 어울리는 가사를 쓰는 게 1차 목표다. 그 다음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는 가사를 쓰는 거다. 가수와 잘 맞지 않는데도 잘 된 곡을 나는 본 일이 없다. 얼마나 한 곡을 위해 스태프가 마음을 합쳐 노력했느냐의 문제이고, 결국 협업이다.

-지금은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있다. 개인이 부각되는 일 아닌가?

물론 그게 모순이긴 하다. 그래서 지금 이상으로 '나'를 더 알리기 위한 활동은 안 하려고 한다. 다만 이런 건 있다. 사람들이 방송에서 나를 보고 '작사가 김이나'인 줄은 알지만 어떤 노래에 가사를 붙였는지까지는 쉽게 연결을 못 시킨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 모습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방송도 하고 책도 쓰는 걸 보면, 작사가 이상의 다른 페르소나를 꿈꾸는 것 같다.

그런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 정체성은 늘 작사가로 생각하고 있다.

작사가와는 별개의 꿈은 있지만, 그 꿈이란 게 '언젠가 이걸 하고 싶은데 작사가는 그 길로 가기 위한 전 단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양인자 선생님처럼 나이가 들더라도 작사가로 남고 싶다. 그 때에도 '작사가 김이나'로 소개되는 게 꿈이다.

그렇게 무조건 이루고 싶은 '작사가'라는 꿈이 있고, 다른 꿈이 하나 더 있는 거다. 그건 다른 책을 써서 "어, 이 사람이 작사가인 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썼어?" 하는 식으로 확장되는 거랄까.

-가사 쓸 때 징크스가 있나?

빨리 쓸 때 잘 나온다. 한 시간 안팎에 완성하면 굉장히 괜찮은 결과가 나온다.

-작가들은 많이 고쳐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들 하는데?

내 경우는 많이 고치기 시작하면 이미 실패한 가사가 돼간다는 증거다. 고친다고 해봤자 가수 발성이나 발음에 따라서 바꿔주는 것 정도?

그런데 작년부터는 조금씩 가사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번 감으로 쭉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실이 따로 있나?

월세 내는 작업실을 따로 뒀다. 사실 가사 쓰는 일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가능하면 집 안에서는 안 한다.

-선호하는 시간대는?

해가 진 뒤. 이건 이쪽에선 공통적인 것 같다.

-하루 중에 자신만의 '리추얼(ritual, 반복된 습관 같은 일)' 같은 게 있나?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면, 일어나는 시각이 굉장히 늦다. 책 나오고 요즘은 비정상적으로 부지런히 살고 있다. 보통 점심 때쯤 일어나고 새벽 4시에 잔다. 남편도 이쪽 일을 하니까 생활 패턴은 비슷한 편이다. 아침에 눈 뜨면 믹스 커피부터 마신다.(웃음)

-책에서 가사의 '야마 세우기' '마감' 이런 말을 쓰던데 기자들 용어랑 비슷하다.

나도 최근까지는 '야마'라는 말이 기자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인 줄 몰랐다. 깜짝 놀랐다.

-원래 '야마'가 산(山)이라는 뜻의 일본말인데, 기사의 경우에는 전하려는 게 뭔지 확실히 세워 쓰라는 얘기다.

그렇다. 그게 통한다. 내가 생각하는 '야마'란 건 뭐랄까. 섹시함? 명확하게 꽂히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중가요 가사의 태반이 사랑, 이별 타령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 세계 대중가요 가사 대부분이 그렇다. 사실 대중가요에도 다른 내용의 가사는 굉장히 많다. 하지만 히트 치는 곡은 대부분 사랑 얘기다. 잘 아는 음반 프로듀서와 작업할 땐 가끔 사랑 말고 다른 이야기로 가 보자고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선지 앨범 타이틀 곡은 대부분 사랑과 이별을 다룬 노래다. 그게 가장 안전하니까. 어쨌든 대중가요 가사도 수요,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거니까.

-뮤지컬 같은 데 도전해 볼 생각은 없나?

'캣츠' 우리나라 버전으로 만들 때 개사를 도운 적이 있다. 양재선 작사가가 개사했는데 내가 좀 도왔다. 하지만 뮤지컬은 전혀 다른 분야로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만 해도 더 하고 싶은 게 많다.

-질투가 나는 다른 작사가가 있나?

사실 내용의 '깊이'로는 그렇게 질투가 안 난다. 나도 더 살면 깊이가 쌓일 테니까. 하지만 '감각'이 질투나는 경우는 있다. 대표적인 친구들이 에픽하이의 타블로, 지드래곤, 지코다. 이 친구들은 랩퍼다. 랩퍼는 작사가와 또 다르다. 멜로디가 없이 랩만으로 타악기 역할을 한다. 그런 리듬감에 글 감각까지 갖춘 삼인방이 이들이다. 이 친구들이 쓴 가사는 나와 태생이 다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감각이다. 내가 지금부터 5년 동안 랩을 한다 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건 어릴 때부터 몸에 문화가 배어 있어야 가능한 거라서.

-지금 쓰고 있는 곡은?

일단 전제로 해야 할 게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다고 해서 발표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가수 윤상씨와 오래 작업해 온 작곡가 '다빙크(Davink)'가 앨범을 낸다고 해서 그 분 곡 가사를 쓰고 있다. 또 가수 케이윌과 같은 소속사에서 나올 신인 곡 작사를 의뢰 받았고,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가 됐던 그룹 '짜리몽땅'이 데뷔하는데 그 가사도 써야 한다.

-발표될 보장이 없다는 건 무슨 얘긴가?

보통 대중가요의 경우 한 곡에 대해 여러 가사가 경쟁해서 이긴 하나가 채택된다. 나는 그래도 비교적 타율이 높은 편이다. 보통 60~70% 정도 된다. 이거,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웃음)

-특정 작사가에게 의뢰하거나 찍어서 주는 일은 없나?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난 부담스러워서 싫다. 경쟁자가 있을 때 탈락하면 조금 발끈해서 다른 사람들 것도 들어보고 한다. 그것도 내 발전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작사를 붙이는 방식은 작곡가들마다 다른데, 나한테만 주는 작곡가(이민수 작곡가 등)가 있는 반면, 다른 분들은 여러 명한테 돌린다. 그러면서도 꼭 나한테만 줬다고 거짓말을 하곤 한다.(웃음) 그러면 내가 더 정성을 쏟아서 빨리 쓸 줄 아는 모양이다. 그거 착각이다.(웃음) 나는 다른 사람과 경쟁할 때 훨씬 더 빨리, 더 잘 쓴다.(웃음)

-마감 시한은 얼마나 주나?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한 일주일 정도 주는 편이고, 넉넉하면 2, 3주 정도 주기도 한다. 처음 쓴 곡은 한 시간 만에 내야 했다.

요즘 들어서는 한 시간 만에 쓸 일은 없다. 한 시간 안에 내놓으라면서 일이 들어오는 건 정말 급박한 상황이다. 여러 사람한테 다 받아봤는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비상 상황인 거다.

그래서 '평소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내가 끊임없이 하는 거다. 작사가를 꿈꾸는 신참에게까지 돌아간 곡은 정말 급한 일이다. 언제든지 써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내가 처음 가사를 의뢰 받았을 때, 한 시간 만에 써 낼 수 있었던 것도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로 운도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가 멀어서 출퇴근에 각각 한 시간 반씩 걸렸다. 만약 내가 퇴근길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 곡 의뢰 전화를 받았다면 가사를 써서 보낼 수 있었겠나.

-아까 가사를 순식간에 써야 잘 나온다고 했다. 시한이 넉넉해도 그런가?

아까 말한 건 순수하게 자리잡고 앉아서 쓰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다. 손으로 아무것도 안 쓰고 있다고 해서,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계속 머릿속에서는, 무의식 안에서는 뭔가 돌아가고 있다. 내 나름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도 있다. 내가 너무 빨리 써서 주면 '대충 썼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러 완성해 놓고도 늦게 주는 일이 종종 있다. 더 뜸을 들였다가 주면 더 좋아하기도 한다. 이제는 내 작업 스타일을 아는 분이 많아져서 좀 낫다. 사실 빨리 쓰는 게 초기엔 내 경쟁력이기도 했다.

-인생 목표에서 지금 어느 정도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

작사가로서는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유지'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목표치라는 게 없다. 목표가 있다면 버티는 거다. 남는 자가 되는 것.

어느 정도에 와 있나? 이런 건 별로 상관 안 한다.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쓰는 시간까지 세기보다는 메인스트림, 핫한 곳에서 오래 버티고 싶다.

-곡의 가사 의뢰를 받아서 하는 일이라면 좀 수동적인 일 아닌가? 더 도전해보고 싶은 건 없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한 꿈은 있다. 그 밖에 음악 시장에선 A&R(artists and repertoire)? A&R은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해당 가수한테 맞는 레퍼토리를 뽑아내고 정리하는 업무다. 한때 그 일을 해보면서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결코 프로듀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나는 사람 컨트롤을 잘 못한다. 프로듀서는 직접 사람들 지휘도 하고, 필요하면 싸우고 자르고, 악역도 자처해야 한다. 나는 딱 실무자일 때 가장 편하게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나눠주지 못한다. 내가 다 하는 게 속 편하다. 효율적으로 할 수가 없다.

그게 회사 다닐 때도 똑같았다. 대리 때가 제일 신났고, 팀장을 달고선 너무 힘들었다. 아랫사람이 많아지니 회사 다니기가 싫어졌다.(웃음)

-책에서 "꿈을 위해 무모해지지 말라"고 했다. 대개들 "도전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태생적으로 그런 성향인 것 같다. 내가 말하는 무모함이란,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장밋빛 안경을 쓴 채 고통과 어려움은 미화해 버리는 거다. 그런 시간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피해 의식에 젖기 쉽다. 잘 된 사람은 왜 잘 된 건지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나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뻔뻔함과 무모함은 있었다. 김형석 선생님께 겁도 없이 작곡 배우고 싶다며 찾아간 것. 그런 식의 무모함은 있어도 된다. 하지만 예술계에 관심 갖는 사람 중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라면서 무작정 직장부터 그만두는 사람이 많지 않나.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꿈을 이뤘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거다. 무모해지지 말라고.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버킷 리스트 같은 게 있나?

글쎄,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 매일매일을 열심히 사는 스타일이라… 이거 없어서 큰일이네. 억지로라도 만들어야겠네. 아바나 가고 싶어요...이런 거?(웃음)

로망은 하나 있다. 내가 이야기 쓰고 싶다는 충동을 처음 가진 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본 뒤였다.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나이 많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나와 히트치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분들이 주인공인 영화 시놉시스도 썼다. 주변에서 재미있겠다고도 말해줬고. 그걸 풀어내는 게 안돼서 그만뒀지만.(웃음)

어쨌든 그런 걸 쓰고 싶다. 연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나는 정말 재미있으니까. 특히 내가 아직 30대일 때, 나보다 훨씬 어르신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가 이미 나이 들어서 쓰는 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테니까.

-애독하는 책이 있나?

김훈의 '칼의 노래'. 솔직히 보통 책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읽지는 않는데, 유일하게 세 번까지 읽은 게 '칼의 노래'다. 꾸밈이 적게 쓴 게 너무나 흡인력이 있어서. 그냥 담담한 게 아니라. 나는 책 보고 눈물 나본 적이… 중고등학교 때 이후로 없는데 이건 정말 좋았다. 자꾸만 보게 된다.

◆김이나 자신이 쓴 가사 중 Best 5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오늘' 기준으로 선곡)

①아이유/가인 - 누구나 비밀은 있다

②임재범 - 어떤 날, 너에게

③에일리 - 저녁 하늘

④조용필 - 걷고 싶다

⑤이재훈(쿨) - 안녕들한가요?

◆다른 작사가의 펀치라인(결정적 한 줄) Best 5

①'요즘따라 내 꺼인듯 내 꺼아닌 내 꺼같은 너' (소유/정기고 '썸')

②'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어, 아직은 쓸만해 죽지 않았어' (지드래곤 'Heartbreaker')

③'사랑한다는 그 말, 아껴둘 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 맘, 표현해야 하나' (성시경 '내게 오는 길')

④'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넌 나의 사람이 된다는걸' (윤종신 '본능적으로')

⑤'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한 남자가 있어, 사랑해 말도 못하는' (김종국 '한 남자')

◆작사가 김이나

에이팝엔터테인먼트 소속 작사가. 대학 졸업 후 사브 로즈마운트 코리아 등 음악과 관련 없는 곳에서 일했다. 모바일콘텐츠 회사에서 휴대전화 벨소리 음원차트 만드는 일을 하던 중 우연히 작곡가 김형석을 만나면서 작사 시작. 2003년 성시경이 부른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했다. 2015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선정한 '저작권료 수입 1위'의 작사가. 지금까지 300여곡의 노랫말을 지었다.

수상경력

2010년 멜론 뮤직어워드 송라이터상

2012~2014년 가온차트 K-POP 어워드 3년 연속 올해의 작사가상

2015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2만여 명의 회원 중 저작권료 수입 1위 작사가에게 주는 KOMCA 대중 작사 부문 대상

작품

아이유 '좋은 날' '잔소리' '너랑 나'

브라운아이드걸스 '아브라카다브라' '어쩌다'

가인 '피어나' 'APPLE' 'PARADISE LOST'

조권&가인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 '걷고 싶다'

엑소 'LUCKY' 샤이니 'HELLO' 동방신기 'DESTINY'

윤상 'RE: 나에게' 윤하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임재범 '어떤 날 너에게' 박정현 '서두르지 마요'

김건모 '울어버려' 신승훈 'YOU ARE SO BEAUTIFUL'

이효리 '천하무적 이효리' 보아 'ADRENALINE'

인피니트 'TIC TOC' 빅스 '다칠 준비가 돼 있어'

써니힐 'GOODBYE TO ROMANCE' 투빅 '요즘 바쁜가봐'

케이윌 '가슴이 뛴다' 성시경 '10월에 눈이 내리면'

드라마 '궁' OST 'PERHAPS LOVE'

드라마 '시크릿가든' OST '나타나'

신화 'ON THE ROAD' 에일리 '저녁하늘' 토이 '인생은 아름다워' 매드 클라운 '화' 등 300여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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