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관심을 '덜' 가져주세요"

입력 2015. 4. 17. 15:30 수정 2015. 4. 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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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생존 학생과 부모들의 상담과 심리치료를 해온 단원고 김은지 마음건강센터장… "'외상 후 성장'하도록 아이들을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봐주길"

와아~, 우우~, 까르르~. 지난 4월6일 찾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단원고등학교 운동장. 아이들은 새순처럼 파릇파릇한 색깔의 체육복을 입고는 축구와 피구를 하며 왁자지껄했다. '하낫둘, 하낫둘' 힘찬 구령 소리도 울려퍼졌다. 학교 정문 앞에 붙은 '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펼침막과 곳곳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그리고 1년 전만 해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을 '영원한 2학년' 빈 교실 10곳이 아니라면,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애써서, 공들여 그려낸 평범한 풍경화다. 세월호 참사로 261명의 교사와 학생을 떠나보낸 슬픔은, 단원고에 남은 이들에게 평범한 행복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전국 유일의 '스쿨닥터'

단원고 5층에 있는 마음건강센터는 남은 이들을 지난 1년간 도닥여온 공간이다. 원래 독서실이었던 이 공간은 지난해 9월 그림과 인형들이 놓인 아기자기한 상담 공간으로 개조됐다. 상담실에서 문학 수업을 마친 예닐곱 학생들이 문을 열고 나오면서 김은지 센터장에게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한다. 세월호 참사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이들이다. 살아남은 75명은 해가 바뀌어 고3이 됐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인 김 센터장과 임상심리사 2명이 이들의 마음을 돌본다. 생존 학생과 부모들의 임상심리검사, 양육평가, 개별심리상담, 인지행동치료 등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김 센터장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해 4월18일 단원고에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전국 유일의 '스쿨닥터'로 학교에 눌러앉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이 곧 돌아온다. 아이들은 잘 지내나.

'기념일 반응'이라는 심리적 증상이 있다.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은 피해자의 기일이나 생일 등을 맞았을 때 평소보다 더 우울해지거나 슬퍼진다. 자동반사적인, 정상 반응이다. 큰일이 났던 그때의 감정이나 신체 느낌이 올라오는 거다. 심하면 깊은 우울감이나 식욕 저하, 수면 곤란을 겪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왜 이러지?' 놀라지 말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줬다. 사고 당시에 부딪힌 후유증으로 팔과 허리 등에 근골격계 통증이 나타나거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두통, 역류성식도염,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겪기도 한다.

운동장이나 방금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 보여서 다행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안쓰럽다. 생존 학생들이 이슈가 되고 사회의 상징처럼 돼버리면서 아이들이 굉장히 사회 환경에 침습적(정신의학에서는 원하지도 않는데 특정 생각이 반복되는 증상을 '침습사고'라고 부른다)이 됐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정서 변동 폭도 크다. 지난 1년 동안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청소년기엔 불안하고 우울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고2를 그렇게 보냈고, 고3이 돼서도 4월이 다가오니까 또 집중이 어렵다. 학업 계획이 있어도 성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대학 입학 정원 외 특별전형 도입에 대해 '특혜'라는 비판 여론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아이들은 그 정도의 배려를 받을 만하다. 생리적으로 공부를 진짜 못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특혜 논란 이외에 지난 1년 동안 어떤 사건들이 아이들을 흔들었나.

일베 '오뎅' 사건, 유민 아빠의 단식에 대한 인신공격, 대리기사 폭행사건 등등 1년 내내 계속 그랬다.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공격적으로 이슈화하는 건 아이들한테 칼을 들이대는 거나 마찬가지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추적 관찰해보면, 오히려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외상 후 성장'이다. 그렇게 되려면 아이들을 둘러싼 지지 체계가 중요하다. 좁게는 가족·친구, 넓게는 학교·지역사회·국가일 수 있다. 아이들의 회복 상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지난 1년간 아이들을 얼마나 지지해줬느냐'고.

"아이들을 직접 치유하는 건 부모와 교사"

자분자분 말을 이어가던 김은지 센터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월호 참사는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트라우마를 생존자들에게 남겼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기본적 믿음'(Basic Trust)이 손상된 것이다. 1년이 지났지만 똑같다. 사회는 "너희들은 그래도 보호받고 있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주지 못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 지금보다, 졸업 이후가 더 걱정된다.

학부모들에게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원하는 치유를, 원하는 곳에서 받을 수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의료 및 심리지원 서비스 자원을 마련해놓는 게 사회의 몫이다. 우선 안산 지역사회 내에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현재 안산에는 안산시 위탁을 받아 고려대 안산병원이 운영하는 '안산온마음센터'와 민간 치유공간 '이웃', 힐링센터 '쉼과 힘' 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유가족들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역사회가 유가족들을 온전히 품어안고 가야 하는데, 지금은 '편안하게'가 안 된다. 지역사회 안에서의 편가르기나 갈등이 정돈돼야, 아이들도 사회에 녹아들 수 있다.

교사들도 죄인 취급을 받고, 실시간 카카오톡으로 학생들 주검을 보고서 신원을 확인해주는 등 심적 고통이 컸을 텐데.

학교나 교사는 이를테면 '엄마'다. 많은 아이를 잃은데다, 남아 있는 아픈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다. 그런데 '애들을 어떻게 챙겼길래 그러냐?'는 분노를 다 받아내야 했다. 여전히 학교에 대해 '제대로 하는 게 맞냐?'는 시선이 너무 많다. 그러면 학교의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지고, 교사들의 트라우마도 전혀 회복이 안 된다. 교사들은 과도한 행정 업무와 진도 팽목항을 오가야 하는 상황 등으로 인해, 제자와 동료 교사들을 잃은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픈 애를 둔 엄마가 자신의 아픔을 돌보지 못한 셈이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들의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4월이 되어 학교에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하자, 교사들 사이에서도 꾹꾹 눌러놨던 감정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잠을 못 이루거나, 울컥울컥하는 식이다. "단원고의 심리치유는 의사인 내가 아니라, 교사들이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언을 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직접 치유하는 건 부모와 교사다."

교복에 이름표처럼 붙어 있는 '노란 리본'

김 센터장은 지난 2월 골든레트리버 강아지 2마리를 학교에 데려왔다. 개를 키우면 마음 치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강아지 이름은 단이와 원이.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우르르 강아지 앞으로 몰려들었다. 강아지 똥을 치우는 건 '핫도그'라는 동아리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 교복 깃에는 '노란 리본'이 이름표인 양 하나씩 붙어 있었다. 4월16일을 앞두고는 마음건강센터 안에 작은 꽃집도 만들 예정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먼저 떠난 친구를 위해 꽃다발을 만들고 엽서를 적을 것이다. 아이들은 추모행사 때 친구들에게 바치는 합창도 준비 중이다. 아이들에게 세월호의 기억은 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애도하고 기억해야 할 대상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일단은 관심을 덜 가져줬으면 한다. 아직도 단원고 교복을 입고 다니면 '몇 학년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의 그런 궁금증 때문에 아이들이 편안하게 사회로 나가지 못한다. 아이들도 '우리를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봐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나."

안산=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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