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는 청춘에게 '빛'을 빌려드려요

김승재 기자 입력 2015. 4.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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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연대은행 김진회 이사장] 시작 2년… 15~39세 379명 가입, 月 5000원 내면 긴급 생활비 대출 "또래 청년끼리 모은 소중한 돈… 담보·이자 없어도 다 갚더군요"

4년 전,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던 서른두 살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숨졌다. '남는 밥과 김치 좀 달라'는 쪽지 한 장만 남았다.

꽃다운 청춘의 죽음에 충격 받은 청년 150명이 돈을 모아 재작년 2월 '청년연대은행'을 만들었다. 이들이 매달 5000원, 1만원씩 내놓은 출자금으로 긴급히 생활비가 필요한 청년에게 돈을 빌려준다. 담보도 이자도 없다.

설립 당시 "고작 1000만원 출자금으로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주변 우려와 달리 청년연대은행은 2년 넘게 순항하며 성장하고 있다. 설립 때 참여해 올해 초 2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김진회(25)씨를 만났다. 강원과학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그는 이사장에 취임하며 자퇴서를 냈다. "전공이 안 맞기도 하고, 무엇보다 은행을 제대로 이끌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이사장을 맡기까지 고민 많았어요. 생계는 유지할 수 있을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하지만 보람 있는 일이니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결정했어요." 이사장 월급은 130만원이다. 월세 15만원 반지하 방에 살면서도 그는 "월세방을 싸게 구한 덕에 한 달에 30만원은 저축할 수 있다"며 웃었다.

청년연대은행의 조합원 조건은 하나다. 만 15~39세 사이 청년. 다달이 출자금으로 5000원 이상만 내면 첫 달부터 30만원은 대출받을 수 있다. 100만원까지 빌리려면 10개월 이상 납부하면 된다. 2년 전 조합원 150명에 출자금 1165만원으로 시작한 이 은행은 현재 조합원 379명에 출자금 6300만원으로 성장했다. 대출도 첫해 20건에서 지난해 80건으로 늘었다.

조합원들 직업은 화가·디자이너·독립영화인·영세 상인 등 다양하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비정규직이다. "초기에는 대출받으려는 사람보다 취지에 공감해 후원하겠다는 분이 대부분이었어요. 지금은 대출이 필요해서 가입한 조합원이 70%일 정도로 활발해요." 대출 목적은 월세·난방비·병원비 등 긴급한 돈부터 수강료·여행비까지 다양하다.

청년연대은행은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는다. 추심 없이도 상환율이 90%에 달한다. 김씨는 "빌려가는 사람도 또래 청년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소중한 돈임을 알기에 좀 늦더라도 꼭 갚는다"고 했다. 그간 대출받은 128명 가운데 연락이 두절된 경우는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매일 청년들의 팍팍한 삶과 마주하는 김씨는 유명무실한 최저임금제도를 비판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당장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적은 돈으로 부려먹는 것부터 정부가 막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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