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는 없다, 분노범죄 실체 밝힐것

입력 2015. 4. 8. 18:03 수정 2015. 4. 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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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강력사건, 그 막전막후에 있었던 남자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내면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항상 당대의 연쇄살인범들이 따라붙는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51) 이야기다.

지난 2년간 경찰수사교육원 교수로 강단에 섰던 그는 올 초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로 복귀했다. 직책은 분노·충동범죄 TF팀장, 전국에서 활약 중인 프로파일러 11명과 함께 일한다. 살인도 성폭행도 아닌 충동범죄 대응팀이라니… '의외의 복귀'라는 질문을 던졌다. 권 경감은 지난 2월 신설된 경찰청 생활범죄수사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잃어버린 자전거나 카메라, 교통카드를 찾아주는 일이 사소해 보이죠? 저는 이게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는 싸구려 고물 자전거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일 수 있거든요. 경찰이 수사해주면, 피해자는 위로와 보호를 받고 가해자는 엄연한 범죄란 걸 깨닫게 돼요. 이게 제도적 규범, 시스템으로 굳어지면 놀라운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분노범죄 TF도 같은 맥락입니다. 큰 둑이 무너지기 전에 '작은 구멍'부터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연초부터 이어진 총기 난사, 묻지마 방화, 토막시신 발견 소식에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분노범죄는 무섭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도 난망이다.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걸까? 권 경감은 '묻지마 범죄'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노·충동범죄자의 내면에는 '왜 나만 이렇게 살지?'라는 무력감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이 깔려 있다"며 "그렇게 쌓인 분노가 어느 지점에서 폭발하는지, 똑같은 자극을 받고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어떤 유형인지 분류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위험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해소할 방법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를 위해 TF팀은 뇌과학부터 CCTV 분석 기법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위험자 측정도구와 일선경찰서에 배포할 안내서를 만들 예정이다.

권 경감은 1989년 경찰에 입문해 1993년부터 현장감식을 다녔고, 2000년부터 프로파일러 일을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안 보고 살 수 있을 끔찍한 일들을 목격하고 900명이 넘는 범죄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며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들과 맥주 한잔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교육원에 있던 2년간 형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더 인간적인 교류를 했다고 할까.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많이 보고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부담스러워했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형사들과 프로파일러 후배들을 내세우고 싶다고도 했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제 일이 중요한 거잖아요. 그럴듯하게 과장하거나 사실이 아닌 걸 이야기하는 건 파렴치한 일이고요. 저는 1호일 뿐 최고가 아닙니다. 최고의 프로파일러는 우리 후배들 중에서 나올 겁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권 경감은 중간중간 기자에게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깨달았다. 속내를 다 들킨 것은 물론, 그가 많은 부분을 '공감'해주며 인터뷰했다는 것을. 달리 최고 프로파일러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경찰청에 있다는 것이 왠지 안심이 됐다. [신찬옥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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