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나영석 PD "케이블 방송은 뒷골목 식당 같아..입소문 나야 살아남죠"

유재혁 2015. 4. 6.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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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예능프로 '미다스의 손' 나영석 CJ E&M PD 만난 사람=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쉼표' 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예능프로 제작 원로배우 기용·먹고 사는 소재 전면 부각 유재석 등 주도한 '예능 불문율' 깬 게 성공 비결 쉽게 나온 아이디어엔 허점 많아..토론으로 검증

[ 유재혁 기자 ]

나영석 PD(39)는 방송가에서 하나의 '신드롬'이다. 안정된 KBS 공채 PD에서 2013년 케이블 방송사 CJ E&M으로 전격 이적해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세끼'까지 줄줄이 히트작을 쏟아냈다. 최근 막을 내린 '삼시세끼 어촌편'은 금요일 밤 10시 예능 전쟁터에서 14~15%대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방송 가입 가구 기준)을 기록하며 지상파를 포함해 동시간대 최강자로 올라섰다.

그는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 사이의 높은 장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시청자층도 10대부터 70~80대 노인까지 전 연령대로 확대시켰다. 예능의 금기도 과감하게 깼다. 노인들을 전격 기용했고, 일상적으로 먹고사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나 PD를 만났다.

▷지난달 27일 새로 시작한 시즌 '꽃보다 할배-그리스 편'도 시청률 9.5%로 높은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PD로서 욕심을 크게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이 네 번째인데 많이 바꾸고 파격적인 구성을 시도하면 시청률은 올라갈지 몰라도 어르신들이 힘들어 하고 여행의 본질이 퇴색하거든요. 새로운 멤버를 들이면 불편할 수도 있고요. 많이 바꿔서 피곤하게 만들기 싫었습니다. 여행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진행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다들 조금씩 달라요. 이 프로그램은 어르신에겐 경계가 불분명한 쇼예요. 그냥 여행하듯 하는 거죠. 여행을 잘 마치는 게 숙제죠. 종일 옆에서 감정이나 체력 상태를 체크하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노력합니다."

▷'꽃보다 할배'는 어디서 가능성을 보고 시작했습니까.

"'꽃보다 할배'는 뭔가를 자극하는 점이 있어요. 출연자들이 고령이라 어쩌면 내년, 내후년에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아련함 같은 거죠. 이런 선생님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또 이 프로그램에는 어떤 가치가 있습니다. 우선 네 어르신의 존재가 새롭지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분들이에요. 이런 인지도가 무기죠.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충분히 호기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귀엽다'는 반응이 나오면 성공할 것으로 봤습니다. 우리에게 어르신은 무조건 불편하고 힘든 존재니까요. 이분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저와 시청자들을 모두 매료시켰죠."

▷'삼시세끼'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꽃보다' 시리즈를 계속 만드니까 짜증이 나더군요. 일이 너무 많았어요. 2~3개가 잘되니까 주변에서 더 잘해주길 바랐고, 그 요구를 들어주려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투덜거렸어요. 그만하고 어디 시골 가서 처마 밑에 앉아 비 구경이나 하며 부침개 먹고 싶다고요. 그런데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할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제 또래 직장인 중 30% 이상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죠. 사람들이 '쉼표'를 원한다는 것을 예능에서 소프트하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감이 왔습니다. 그런데 예능의 기본을 깨야 했어요. 두 사람밖에 안 나오고, 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장소도 한 곳에 고정하니까요."

▷예능 프로그램 법칙을 새로 썼다는 평가입니다.

"예능은 '이래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어요. 유재석, 강호동 중 하나는 있어야 하고, 웃기는 사람, 즐거운 사람, 잘생긴 사람, 그러니 4~5명으로 구성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누가 정한 게 아니에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해온 거죠. KBS 시절 '1박2일' 끝내고 1년 정도 쉬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령 힐링하고 농촌에서 밥이나 먹고, 고민 없는 삶을 보여주고 싶다면 거기에 왜 비주얼이 필요하고 웃기는 캐릭터는 왜 필요하냐는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유혹을 떨치지 못해요."

▷프로그램들을 모두 히트시킨 비결은 뭡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유행의 교집합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저도 즐겁게 만들고 시청자도 재밌게 봅니다. 저 혼자 좋아하는 기획 아이디어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항상 냉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런 판단이 힘들 때 주변 참모들이 직언할 수 있어야 하죠. 제가 정신을 못 차리면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키라고 농담삼아 말합니다. '삼시세끼'의 경우 누군가 제주도 부동산 상황을 알아보니 빈 땅이 없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고 하더군요.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방송을 시작하게 됐죠."

▷'꽃보다 할배'나 '삼시세끼' 등을 '관찰 예능'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예능 PD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뭘까요.

"임기응변과 유연성이 매우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1박2일' 때부터 훈련이 돼서 지금 이런 일을 할 수 있죠.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관련된 사람이 모여서 빨리 판단하지 않으면 현장이 굴러가지 않아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런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하루에 10개를 하자고 계획을 짰는데, 뜻밖에 비가 와서 당황하거나 큰일났다고 발만 구르는 경우가 많죠. 그런 때에도 비가 와서 오히려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뭐죠.

"운동 선수가 무수한 훈련으로 조금씩 기록을 당기는 것처럼 여기에도 늘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작가와 조연출을 만나서 회의하고 주고받는 말 속에 아이디어가 나오면 끄집어내는 거죠. 쉽게 나오는 아이디어는 파면 팔수록 허점이 나옵니다. 누구나 '이거 괜찮겠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는 한 번 듣기만 해도 결론까지 뻔히 보여요. 잘되는 프로그램은 오히려 '머뭇거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삼시세끼'도 촬영을 마쳤을 땐 '진짜 망했다' '오만했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예상 외로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죠."

▷KBS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전엔 가수 몇 사람을 섭외해 한 시간 녹화하고 한 시간 방송했는데, 지금은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1주일을 불태워야 해요. 이걸 매주 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중국도 시즌제로 하거든요. 이곳(CJ E&M)은 기본적으로 시즌제로 방송을 합니다. 사기업이기 때문에 하다 잘 안 되면 바로 내려서 다른 프로젝트를 하죠. 그게 제 취향에 맞았어요. 지상파는 이를테면 학동사거리 양쪽에 있는 백화점 세 개예요. 그곳은 뭘 해도 사람이 찾아요. 케이블은 그 뒤에 골목 두 개 꺾고 들어가야 나오는 식당이죠. 입소문 나려면 아주 힘들어요. 게다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해 두 번 왔는데 변한 게 없으면 더 이상 안 오죠."

▷방송 한류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3~4년 전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을 수출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중국 덕분에 활발해졌어요. 중국인이 한국 문화나 풍습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한국 사람이 느끼는 재미를 같이 느끼면서 폭발한 거죠. 요즘 한류 콘텐츠의 세계화는 80%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데 불안한 부분도 있습니다. 너무 (중국으로만) 몰려가고 있어요. 더 커지려면 보편성을 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죠. 그래야 중국 말고 다른 나라에도 접근할 수 있어요.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어요. 유럽만 해도 일반인은 몰라도 콘텐츠 기업 고위층은 다 알고 있어요. 한국 콘텐츠가 끓어넘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요.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나영석 PD는…

나영석 PD는 '1박2일'을 연출할 때 화면에 직접 등장해 주목받았다. 이전까지 프로듀서는 얼굴도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그가 출연자와 어울리는 모습은 새로운 볼거리를 줬다. 나 PD는 이를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실내 프로그램과 달리 돌발상황이 자주 생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매번 촬영을 끊고 편집하면 인과관계의 오류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것. PD가 적절히 개입해 상황을 부드럽게 이어가고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1976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 신흥고 졸업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KBS 공채 프로듀서 △CJ E&M 프로듀서 △2009년 한국PD대상 TV예능부문 작품상 △2014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작품상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정리=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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