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두 다리가 되겠다던 16세 딸.. 4명 목숨 살리고.. 아빠 가슴속에 남았습니다

대전/김정환 기자 입력 2015. 4. 3. 03:05 수정 2015. 4. 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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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가 다른 분 4명에게 생명을 베푼 만큼 이 사회에 4배 이상의 좋은 에너지가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3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 김영배(43·택시기사)씨는 지난 2월 외동딸 민지(16)를 하늘로 보냈다. 올 초까지만 해도 댄스 동아리에서 신나게 춤도 추고 대회도 5개나 나갈 정도로 건강해 보이던 딸이었다. 그런 민지가 지난 1월 26일 갑작스러운 두통과 구토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민지의 뇌에 5㎝ 크기의 종양이 있었다. 민지는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지난 2월 2일 뇌사(腦死)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뇌종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민지의 장기가 현재 다른 사람 4명의 몸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하지만 몸이 불편한 김씨에게 외동딸 민지는 딸 이상의 딸이었다. 민지는 어릴 때부터 '우리 아빠는 내가 지킬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아빠를 챙겨줬고, 2년 전 새엄마가 된 이모(39)씨에게는 수시로 '엄마, 우리 힘들지만 같이 힘내자'며 격려 편지를 건네던 효녀였다.

"지난해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갈 때 민지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가서 내 성적표를 떼왔어요. 여행이 끝나고 민지는 '나도 아빠처럼 열심히 공부하겠다'면서 내 성적표를 자기 책상에 끼워 놓았지요. 그런 민지를 키우기 위해 소변도 참아가며 12시간 동안 택시를 운전하는 건 힘들지도 않았어요."

민지를 잘 키우려고 식당일, 휴대폰 판매, 택시기사 등을 하면서 억척같이 살아왔다는 김씨에게 딸의 뇌사 판정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었다.

"멍하니 응급실 벽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순간 제 눈에 띈 것이 응급실 벽에 걸려 있던 '새 생명을 살리는 장기기증제도' 광고였어요. 인터넷에서 장기 기증이 뭔지를 찾아봤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할 때 각막 기증을 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어요. 우리 착한 민지도 김 추기경님을 본받는 '삶'을 살게 하는 게 부모로서 마지막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씨는 "죽는 사람 중에 뇌사가 1%고 그중에서도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 민지가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것도 선택받은 아이"라고 가족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민지는 뇌사 판정을 받은 지 하루 뒤 췌장 1개, 신장 2개, 간장 1개를 기증하고 영영 떠나갔다.

지난 1일 대전 목동의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는 사회에 베푼 일이 없었지만, 우리 민지만큼은 좋은 일을 하길 바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지의 49재가 지나고 내 마음이 홀가분해진 걸 보니 아마 민지도 장기 기증을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민지 심장도 다른 사람에게 기증해 딸의 심장이 뛰는 걸 보고 싶었어요. 심장 이식 성공률이 20%밖에 안 돼 기증을 못 한 게 아쉽지만, 딸의 장기들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생명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니 우리 민지가 지금도 내 곁에 숨 쉬고 있는 듯합니다."

충남 계룡시에서 식당을 하는 민지 할머니도 장학회를 만들어 민지의 모교인 충남여중에 매년 100만원씩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할머니 김씨는 "민지를 키우려고 열심히 번 돈이었는데, 이제는 그 돈을 민지 후배들을 키우는 데 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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