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소설은 법학의 延長"

김성현 기자 2015. 3.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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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67)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해 딸 재인(17)과 함께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관람했다. 예고(藝高)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딸이 뮤지컬에 흥미를 보이자 안 교수는 "저 작품의 원작을 아빠가 번역하고 있는데"라고 했다. 당시 그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번역 중이었다. 안 교수가 저서와 번역, 공저(共著)를 합쳐 50권의 책을 내는 동안 "너무 어려운 이야기만 쓴다"고 불만을 털어놓던 딸도 "이번엔 꼭 읽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안 교수가 최근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허먼 멜빌의 중단편집(홍익출판사)을 번역 출간했다. 지난 2013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후 영어 소설 번역만 세 권째다. 198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대에서 '법과 문학'을 가르쳤던 안 교수는 "법과 문학은 대척(對蹠) 관계가 아니며, 지적으로 성숙한 사회일수록 법률과 사회 제도에 대한 비판과 고민을 담은 작품도 많다"고 말했다. 실례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카뮈의 '이방인',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들었다.

인권 변호사 조영래(1947~1990) 평전, '법과 문학 사이'와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같은 교양서까지 안 교수의 저작들은 '법망(法網)'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문학과 역사의 영역으로 '탈주'를 꿈꿨다. 그는 "우리의 법학은 대중과의 소통이나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적다는 점이 불만이었다"고 했다.

번역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다른 판본들과는 달리 안 교수의 번역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에 가깝다. '동물농장' 때는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러시아혁명 전후의 시대상을 풀이한 해설을 붙였다. '두 도시 이야기'와 멜빌 3부작에도 각각 20~30쪽에 이르는 '옮긴이의 글'을 책머리에 실었다.

법학자 입장에서 바라본 멜빌은 "월 스트리트라는 경제 권력과 인종 문제 등 현재 미국의 실상과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가"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법률가'라는 작가의 낭만적이고 비(非)법률가적인 발상"이 담겨 있다. 이처럼 '소설은 문학만의 것이 아니라 법학의 연장(延長)이기도 하다'는 것이 안 교수의 믿음이다.

환경 문제와 사생활 영역에서 진보적 판결을 남겼던 미 연방대법원 판사 윌리엄 더글러스 전기와 소설가 이병주 평전 집필,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디킨스의 초기작 번역까지 이 교수의 작업은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이다. "여러 일을 동시에 벌여 놓고 하는 편이에요. 적어도 몇 년간은 번역 작업도 더 해야 하고요." 앞으로 그에게는 전 국가인권위원장,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 국제인권법률가협회(ICJ) 위원 앞에 '소설 번역가'라는 직함이 하나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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