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바꾸면 사람도 바뀝니다"
"흉악범의 글씨는 속도가 느리고 각(角)이 심하게 지며 마지막 부분이 흐려지고 필압(筆壓)이 무겁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무질서하고 읽기 어려우며 크기와 간격의 변화도 심하다."
21년간 조직폭력·마약·살인 등 주로 강력 사건을 수사했던 구본진(50·사법연수원 20기) 전 성남지청장이 내린 결론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과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등을 지내고 지난 2월 검찰을 떠난 그가 낸 책이 검사들 사이에 화제다.
구씨는 검찰 조사실에서 만난 수많은 피의자의 자술서를 관찰하다가 '글씨가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는 열쇠'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글씨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심리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글씨체에는 뭔가 더욱 특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구씨는 "피의자가 쓴 자술서를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예측해보고 나중에 수사 결과와 비교해보곤 한다"며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실력'이 쌓였는지 예상과 결과가 일치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구씨는 아예 필적학(筆跡學)을 공부하고, 고조선 이전 홍산(紅山·중국 북동부)문화부터 근대 항일운동가들의 필적까지 분석해 최근 '어린아이 한국인'(부제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이라는 책을 냈다.
책 제목에서 한국인을 '어린아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곧 그가 내린 결론과 같다. 우리 민족의 필적이 다른 민족보다 활력이 넘치고 장난기가 가득해 마치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다. 그는 광개토대왕비와 김구 선생의 글씨체를 비교하며 '1000년 이상 시간이 지나도 글씨체는 유전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광개토대왕비와 김구 선생의 글씨체는 모두 용기 있고 꾸밈없는 천진한 성품을 반영한 글씨입니다. 두 글씨체는 눈으로 보이는 유사성을 넘어서 독특한 점까지 일치했어요."
구씨는 6년 전에도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이란 책을 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0년간 전국 각지에서 항일운동가 400여명의 글 600여점과 친일파 150여명의 글 400여점 등을 수집해 분석한 연구서다. 구씨는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대체로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고 크기가 일정할 뿐 아니라 각지고 힘찬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전체적으로 빠르고 크기가 들쑥날쑥하며 행 간격이 좁고 아래로 길게 뻗는 경우가 많다"고 결론 내렸었다. 그는 이후 우리나라 최고의 글씨 수집가로 꼽히게 됐고, 미국필적학회(AHAF)와 영국필적학자협회(BIG)에서도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필적학자로 인정받게 됐다.
구씨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전설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 독재자 히틀러 등 유명인들의 필적도 분석했다. 그들의 서명을 보고 '글씨가 오른쪽 위로 향하는 것은 낙천적 기질을, 그 반대는 우울증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글씨는 사람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글씨를 바꾸면 사람의 내면도 바뀔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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