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어떻게 하면 순간순간의 즐거움 줄지 고민"

입력 2015. 3. 22. 07:32 수정 2015. 3. 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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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끝나니 시원섭섭..식빵이 가장 감동" "단기 프로젝트, 아이디어 바로 시도할 수 있어 재미"

"'삼시세끼' 끝나니 시원섭섭…식빵이 가장 감동"

"단기 프로젝트, 아이디어 바로 시도할 수 있어 재미"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97년 늦가을 신촌 연세대 학생회관 꼭대기에 자리한 극장에서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랐다.

지금까지도 이 대학 사회과학대 극회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작품으로 꼽힌다는 '삽질'이라는 이름의 창작극이었다.

'삽질' 극본을 썼고 연출도 맡았던 남학생은 다음과 같은 연출의 변을 남겼다.

"연극은 재미있어야 한다. 극적인 재미나 카타르시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말장난이나 오버액션에 난 관심이 있다. 그런 것들이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그 남학생이 바로 요즘 '사소함의 활력'으로 우리 마음을 훔친 나영석(38) PD다.

나 PD는 자기 자리를 확실히 굳힌 몇 안 되는 예능 PD 중 한 명이다.

그는 2001년 입사한 첫 직장 KBS에서 여행 버라이어티인 '1박 2일'로 이름을 알렸다.

2년 전 CJ E&M으로 자리를 옮긴 나 PD는 배낭여행 프로그램인 '꽃보다' 시리즈에 이어 밥 짓는 예능 '삼시세끼'까지 대흥행시켰다.

특히 올해 초 방영된 '삼시세끼-어촌편'은 신들린 요리 실력의 배우 차승원이 일으킨 '차줌마' 열풍으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로 연결된 나 PD는 "시원섭섭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첫 방송을 앞두고 터진 장근석의 하차라는 악재를 수습하고 '대박'을 터뜨리기까지 가슴 졸였을 그의 마음고생이 엿보이는 말이었다.

"'삼시세끼-어촌편'이 큰 사랑을 받고 시청률도 정말 잘 나왔는데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섭섭하죠. 이 정도로 흥행할 줄 몰랐어요. 모든 PD가 자기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잘 되길 바라지만 흥행하리라 확신은 못하죠."

◇ "다른 방송과 차이라면 한가함과 여백"

'삼시세끼'가 보여준 것은 두메산골이나 외딴섬에서 힘들여 밥을 지어 먹는 풍경이 전부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나 PD는 "누구에게나 벌어 먹고사는 일이, 특히 도시에서 사는 일이 정말 힘들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시세끼' 안에서는 세끼 해먹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우냐고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그곳(정선과 만재도)은 세끼 밥을 지어먹는 일 말고는 걱정거리가 없는 곳이잖아요. 사람들이 TV로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위안받지 않을까 싶었어요."

나 PD의 말대로 시청자들은 '삼시세끼'를 보면서 위안받았지만 동시에 고통도 느꼈다. 금요일 밤에 난데없이 치솟는 식욕 때문이다.

홍합짬뽕, 누룽지탕, 계란말이, 콩자반, 꽃빵, 어묵, 채소볶음, 홍합밥, 홍합미역국, 거북손 무침, 식빵, 초밥, 해산물 피자…….

차줌마와 바깥양반 '참바다'(유해진 별명), 조수 손호준이 합심해 만든 요리 목록이다.

나 PD는 주부들마저 놀라게 한 요리들에 대해 "워낙 현장에서 변수가 많아서 70~80%는 흘러가는 대로 두고 가능하다 싶을 때 20~30% 정도의 비중으로 특정 요리를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감동적인 맛을 선사한 요리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단번에 "그 자체로 신기함을 줬던" 식빵을 꼽았다.

나 PD는 "즉흥성, 재미, 사람 냄새 나는 것, 정(情), 감동 등 진정성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책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인터뷰)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주제 의식을 담은 TV 프로그램들은 많은데 나 PD의 프로그램이 유독 큰 호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PD는 그 이유를 묻자 "글쎄요"라며 답변을 주저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우리 프로그램은 한가해요. 화면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힘들다, 바쁘다고 푸념하지만 (웃음)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가하고 여백이 많죠. 시청자들에게 '아, 나도 저러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

◇ "순간의 즐거움 주는 데 초점"

인터뷰 도중 '삽질'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민망해하는 나 PD의 모습이 전화선을 타고 전해졌다.

학창시절을 보낸 청주를 떠나 대학에 입학한 그는 "낯 가리고 소심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욕심을 부리는 성격"인지라 용감히 연극 동아리인 토굴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과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의 재미"를 느꼈고 예능 PD가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나 PD는 20년 전 '재미'를 앞세웠던 연출의 변에 대해 묻자 "지금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모든 프로그램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전 가능하면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면서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순간순간 즐거워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나 PD는 연출했던 프로그램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방송으로 "가장 오랫동안 연출했고 찍는 내내 큰 재미와 배움을 얻었던" '1박 2일'을 꼽았다.

10여 년간 일했던 KBS를 떠나 과감히 적을 옮기고 나서 달라진 점은 "제작 환경의 유연성"이라고.

"이렇게 단기 프로젝트를 계속 할 수 있는 방송국은 이곳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방송국에서는 대부분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반응이 좋으면 계속 하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접습니다. 단기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때그때 묵혀두지 않고 시도할 수 있죠. 하나가 끝나면 금방 다른 것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점이 재미를 줘요."

나 PD가 다음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는 27일 첫 방송되는 '꽃보다 할배-그리스편'이다.

젊은이들의 문화로 인식됐던 배낭여행에 '할배'들을 끌어들인 시도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꽃할배'가 신화의 나라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시청자들의 기대가 크다.

나 PD는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 프로그램이라 딱히 관전포인트라 할만한 것은 없다"면서 "그리스를 '할배'들과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편안히 봐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달부터 '삼시세끼-정선편2' 촬영에 몰두해야 하는 만큼 '꽃보다'와 '삼시세끼' 이후 포맷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구상하지 않고 있다고.

"저도 바쁘게 사는 직장인이에요.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일하면서 독촉받고 윗사람에게 혼나는 사람이죠. 그래서 제가 만드는 TV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느리게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답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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