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소리를 잃었고 시력도 잃어가는 캐릭터 '베니' 作家 구경선 씨

최보식 선임기자 2015. 3. 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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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선(32)씨가 처음 말을 건넸을 때, 내게는 "따따따따따…"하는 소음처럼 들렸다. 인터뷰가 쉽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젊은 층에 꽤 알려진 토끼 캐릭터 '베니'〈작은사진〉의 작가다. 두 살 때 열병(熱病)으로 청각을 잃었다. 이는 언어 장애를 동반한다. 그걸로 끝나지도 않았다. 재작년 '망막색소변성증' 진단까지 받았다. 시력마저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가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책을 냈다. 글과 그림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담은 것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이 동화(童話) 같은 책에 빠졌다.

책은 '사실 전 소리를 듣지 못하거든요'로 시작하지만, 내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튼튼한 체격에 선머슴 같은 그녀는 깔깔거렸다.

"마음이 착한 사람들만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청각을 잃은 그녀는 상대의 입 모양으로 알아듣는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내 발성은 해독(解讀)이 어려운 모양이다.

"입 모양이 작아요. 말할 때 입을 좀 더 크게 벌려주세요. 대개 남자들이 이래서 어려워요."

동행한 출판사 여직원이 중간에서 통역했다(나중에 이메일로 보충 인터뷰를 했음). 둘은 몇 번 만나서인지 그런대로 말이 통하는 게 신기했다.

―어떻게 입 모양으로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게 됐나요?

"열병이 걸린 게 두 살 때였어요. 말을 못 해본 내 혀가 굳을까 봐 엄마는 가장 걱정했어요. 내 입 주위에 설탕을 묻혀 빨아먹도록 했어요. 혀를 계속 움직이게 한 거죠. 말을 가르칠 때 엄마는 발음에 따라 입 모양이 어떻게 되는지를 계속 반복해서 보여줬어요. 'ㅂ'과 'ㅍ' 발음이 다르잖아요. 엄마는 휴지를 입에 물고 떨리는 정도를 알려줬어요. 내 손을 엄마 목에 갖다 대고 울림을 느끼게 해줬어요. 다시 내 손을 내 목에 갖다 대고 비슷한 울림이 나올 때까지 계속 연습시켰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입 모양도 알아보게 된 것 같아요."

그녀의 어머니는 보험설계사라고 했다. 그녀를 일반 초·중학교에 입학시켰다. 보통 아이들 속에서 커갈 수 있도록 바랐던 것이다. 난색을 표시하는 학교 측에 "내 딸은 귀가 잘 안 들릴 뿐 잘하는 게 많다"고 설득했다.

―책에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써 있더군요.

"엄마는 정말 저를 위해 많은 걸 해주셨어요. 어렸을 때는 당연한 엄마 노릇으로 여겼지요. 하지만 제가 엄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 엄마에게 갚고 싶어요."

―일반 학교에서 적응이 됐나요?

"초등학교 입학식 때 선생님이 '모두 앉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만 혼자 우뚝 서 있었어요. 수업은 대부분 알아듣지 못 해도 교과서와 칠판 필기를 보고 따라갔어요. 엄마가 매일 글을 쓰게 하고 책을 많이 읽혔어요. 학교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 사이에 따돌림을 받지는 않았고?

"어릴 때는 마냥 즐거웠어요. 친구들과 씨름도 하고, 솔직하고 활발한 푼수였어요. 사춘기를 겪으며 피해망상이 생겼고 어두운 성격이 됐어요. 애니메이션고를 중퇴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하, '질풍노도 시기'라고 하잖아요.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죠. 학교에서 사고를 칠 때마다 엄마는 달려오곤 했어요. 계속 저를 붙잡았어요. 포기하지 말라고.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왜 포기하냐고. 고등학교를 졸업 못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하지만 결국 학교를 나왔어요."

―학교를 중퇴해서는?

"처음 6개월간 방 안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요. 엄마는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안타까워했어요. 그러다가 네일아트(nail art)를 배웠어요. 재미도 있고 재능도 있어 미용실에 취직했어요. 하지만 말이 안 통해 2주일 만에 해고됐어요. 현실의 벽 앞에서 상처가 많았어요. 폐인처럼 인터넷 게임에 1년 동안 빠졌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살아 숨쉬고 있는 한 절망만 할 수는 없잖아요. 24세 때쯤 그림으로 돌아와 '베니' 캐릭터를 그리게 된 거죠."

―왜 토끼였나요?

"제 소망이었죠. 소리를 못 듣는 저 대신 잘 들어달라고 귀가 큰 토끼를 그렸죠. '베니'의 표정을 그릴 때면 거울을 통해 제 얼굴을 들여다봐요."

―영국 동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1866~1934)의 유명한 토끼 캐릭터 '피터 래빗'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제가 '베니'를 세상에 보여주자 한 친구가 그랬어요. '왠지 피터 래빗이 연상돼'라고 했어요. 그때서야 피터 래빗을 보게 됐고 반했어요."

―비교하면?

"피터 래빗은 아름답고 따뜻한 느낌, 동화 같아요. 대신 베니는 단순하고 만화 같은 요소가 있어 가볍게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내가 듣기로, 그걸로 싸이월드의 '스킨(미니홈피의 표면을 디자인하는 것) 작가'가 됐다고 하던데.

"인터넷 일은 사람들과 안 마주쳐도 가능했거든요. 부지런히 그려 올려서 아홉 달 만에 스킨 작가가 됐어요. 하지만 한 달에 20만~30만원 수입밖에 안 됐어요. 때가 되면 의무적으로 그림을 올려야 하는데 너무 지쳤어요. 어느 날 토끼가 누워 있는 그림을 올리고는 '다 귀찮아'라고 달았어요. 이게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인기가 좋았어요."

처음으로 꽃 피는 기분을 맛봤지만, 이번에는 활동 무대인 '싸이월드'가 망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업도 함께 끝이 났다.

"장애인 생활 보조금을 알아보러 동(洞)사무소에 갔어요. 뇌성마비 여직원이 담당자였어요. 그분의 삐뚤빼뚤한 입 모양을 알아볼 수 없었어요. 그러자 그분은 또박또박 한 글자씩 힘주어 써나갔어요. 절 도와주기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 모습을 봤어요. 나도 이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요."

―그 답을 찾았나요?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 전 세계의 꿈이 없는 아이들을 만나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교회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라는 미술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어요. 30개국을 목표로 삼았어요."

재작년 9월, 네 번째 나라인 필리핀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야맹증이 심해지고 이유 없이 자주 부딪혔다.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개그맨 이동우씨에 의해 알려진, 터널처럼 가운데만 보이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됐어요. 청각 장애 하나에도 충분히 버겁게 살았는데, 왜 자꾸 내 것만 뺏어가는 걸까요. 왜? 어째서? 왜 나야? 대체 왜? 엄마를 보니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어요. 평생 엄마의 짐으로 살아가야 하나."

밤새 울었다고 한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창밖으로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첫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어요. 지금까지 무엇을 본다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그제서야 '앞으로의 시간은 행복하게 살아보자. 아무런 후회도 없이.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미련이 안 남게 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녀는 앞으로 남은 시간에 꼭 해야 할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작업실 갖기, 어머니에게 미역국 끓여주기, 돌고래와 헤엄치기, 파리 오르세 미술관 가기 등등이다.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겠지만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늘 미뤄놓기만 하죠. 하지만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하루라면 달라지죠."

―'버킷 리스트'를 얼마나 달성했나요?

"절반쯤 했어요. 이번 봄에는 운전면허 따기와 마라톤도 할 거예요. 6월에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갈 거예요."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는 '김연아 선수 만나보기'는?

"소치올림픽 이후 마지막 아이스 쇼에서 '키스앤크라이'석(席)을 예매하면 공연 전 김연아 선수와 팬 미팅을 잠깐 할 수 있댔어요. 꼭 구입하리라 별렀는데, 4시간 만에 모든 좌석이 매진됐어요. 너무 아쉬웠어요."

―김연아 선수는 '베니'를 구매해 자신의 싸이월드를 단장했는데.

"김연아 선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제가 특별하다고 우겨 단둘이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이기적인 것 같아서요. 공평하게 아이스 쇼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제가 완전히 안 보이기 전에 김연아 선수가 다시 아이스 쇼를 한 번만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지금 얼마큼 보이나요?

"지름 8.8㎝ 안에서만 보여요. 선생님의 전체 모습은 다 안 보이고, 눈 코 입만 보여요. 가까이 접근하면 입밖에 안 보이고요. 이 병은 점점 나빠지는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나빠져요. 한 단계 더 떨어지면 지름 5㎝로 줄어든대요."

―외출은 거의 못 하나요?

"시야가 좁혀지니 걷다 보면 갑자기 사람이 휙 나타나는 것처럼 돼요. 밤에는 아예 안 보여 못 나가요. 그래도 좋은 점은 외출할 때 남자 친구들이랑 팔짱을 낄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남자는 다 겁쟁이예요."

―겁쟁이라니?

"남자들은 저를 사랑하는 걸 겁내요. 저는 '라푼젤'(그림 형제 동화의 주인공), 높은 탑 꼭대기에 갇혀 있어요. 왕자님이 무서운 괴물을 물리치고 구해주러 온 것처럼 저도 지금 용감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버킷 리스트에 '소개팅 해보기'도 있던데.

"어색한 떨림을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요. 딱 한 번 소개팅을 해 소원을 풀었지만 수줍어 말도 못 했어요."

―앞으로 그림을 못 그리게 되는 상황이 올까요?

"어떤 날에는 시계를 보고 싶지 않아요.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눈이 안 보인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다른 삶이 있겠지요. 어쨌든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예요. 손의 감촉으로 그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줄기세포 이식수술이 개발될 가능성이 있대요.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

가끔 그런 놀라운 일도 일어나야 인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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