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아들 잃고 속죄의 봉사

박석원 2015. 3. 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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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관심 호소 모른 척 하다

도호쿠 대지진 때 방 안 나와 참변

지금은 같은 고민 가진 부모들 상담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는 3ㆍ11 도호쿠(東北)대지진 당시 지진해일의 피해가 컸던 곳으로 300, 400여구의 시신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여성은 "14세의 딸이 방에 틀어박힌 지 1년 반"이라며 "앞으로도 계속될 그럴 걸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다"고 울먹인다. 그 앞에 사사키 요시히토(佐佐木善仁ㆍ64)씨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지난달 말 이와테현 오후나토(大船渡)시에서 등교거부나 히키코모리(운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모임이 열렸다. 모임의 사무국장인 사사키씨는 4년 전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였다. 그의 사연을 3ㆍ11 참사 4주년을 맞은 12일 아사히(朝日) 신문이 소개했다.

사사키씨는 평생을 교단에 머물며 부하직원에게 "가정을 소중히 하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자신은 아침 6시에 나가 밤 9시 넘어 귀가하는 '일 벌레'였다. 주말이라고 두 아들과 놀아준 기억은 거의 없다. 차남인 진야(仁也)의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하키코모리가 됐다. 리쿠젠타카타시에서 가마이시시(釜石市)로 전학하면서부터다. 아내가 환경변화에 민감한 둘째 아들이 새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지만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차남이 고교를 졸업하고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자 아내는 8년 전부터 '부모들의 모임'을 만들게 된다.

3ㆍ11 대지진 당일. 사사키씨는 리쿠젠타카타 시립소학교 교장직을 퇴직하기 직전이었다. 아내와 차남이 실종됐지만 피난소로 변신한 학교에서 학생들 안위 확인에 경황이 없었다. 1주일 뒤 학생 전원이 무사하다고 확인할 때까지 자신의 가족 2명은 소식이 없었다. 1주일 뒤, 차남인 진야의 주검과 대면했다. 살갗이 흰 28세 청년의 모습이었다. 3주 뒤엔 57세이던 부인 미키코의 시신도 발견됐다. 대지진 당시 차남은 2층 방에서 한번 나왔지만 황급히 피난을 재촉하는 미키꼬와 장남에게 "도망치지 않는다"며 다시 들어갔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던 것이다. 히키코모리가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피난이 늦어진 부인이 파도에 휩쓸리면서 장남만 목숨을 건졌다.

대지진으로부터 1개월 후, 남편은'부모모임'을 이어받기로 했다. 차남과 진심으로 마주하지 않은데 대한 후회, 아내가 시작한 모임을 이어가는걸 속죄의 길로 생각했다. 그러나 모임에 참가해보니 고민을 토로하는 부모들에게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지 난감했다.

장남과 함께 사는 셋집에는 차남의 고교 졸업앨범이 영정으로 놓여있다. 이제는 사사키가 과거의 아내처럼 히키코모리 전문서적을 읽고 있다. 차남은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아침마다 목욕탕을 청소했었다. 사사키씨는 지금 차남의 마음이 돼 욕조를 닦는다. "사회로 나갈 수 없어 초조해할 때 기력을 쏟을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게 아니었을까." 은둔형 외톨이 대부분은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섬세하고 마음이 과민해서 외출할 수 없게 된다. 새롭게 얻은 지식은 차남에게 오버랩 됐다. "살아만 있어준다면…"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하지만 부모모임에 나가면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엄마들을 만난다. 부모들의 고민을 듣고 아내와 차남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비로소 자신이 생각하는 말들이 터져 나오게 됐다.

"아이들도 괴롭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충전기간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려주면 안될까요."

눈물 흘리는 부모들에게 사사키씨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도쿄=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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