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사는 법, 시력 잃고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화성/최보윤 기자 입력 2015. 3. 12. 04:01 수정 2015. 3. 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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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그냥 눈이 좀 나쁜 줄 알았어요. 군대도 멀쩡히 병장 제대 했다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보험 수백 개는 들어놓는 건데…. 또 아나요. 한 100억원은 받았을지. 하하."

커피 중소 제조업체인 아로마빌 노환걸(52) 대표는 계속 웃었다. "지금 앞에 계시는 거죠?"라고 몇 번을 묻고, 바로 앞에 있는 종이컵도 겨우 잡아채면서도 계속 눈을 마주치려 했다.

그는 시각장애 1급이다. 5년 전에 받은 판정이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거침이 없었다. 스물다섯 나이에 동서식품에 입사해 마케팅부장까지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시각적인 면에서 특히 탁월했다. 탤런트 이나영과 광고 작업을 하면서 헤어 색상 하나하나 세심하게 따졌다.

2008년 무렵 광고 시안 회의를 할 때였다. 그의 목에 핏대가 올랐다. "포인트가 없으니 빨간색을 더 넣자고 말했죠. 갑자기 주위가 싸해 지는 거예요. 이미 빨간색 작업이 돼 있는 거였죠. 뒤돌아서니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터널 좁아지듯 빛이 줄더니 현재는 형체가 있다는 걸 겨우 인식하는 수준이다. 종국엔 암흑 같은 어둠 속에 살아야 한다 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

병 진단 뒤 2년간은 버틸 수 있었다. 동료가 그를 도왔다. A4용지 한 페이지에 한 글자씩 인쇄하기도 했다. 고마움도 잠시. 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회사를 나왔다. "좌절감이 제일 크긴 했는데, 무엇보다 괜스레 주변에 섭섭함이 크더라고요. 사소한 건데 그렇게 섭섭해요. 가족과 대화도 줄고, 어디 제대로 같이 나가 볼 수도 없고. 친구들하고도 멀어지죠. 나보다 높은 사람도 나한테 고기를 구워 받쳐야 되는 거예요. 사회생활이 되겠어요? 어렵죠. 참 외로워요.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운영하던 커피 제조 업체(지금의 아로마빌)으로 출근했다. 2002년 설립해 대기업 커피 OEM을 따내며 꽤 성장했다. 연간 매출 50억원에 달했다. "우연인지, 대기업으로부터 하도급이 갑자기 끊긴 거예요. 자체 생산을 하게 됐다더군요. 사실 잘해주신 거죠. 보통 7~8년 정도만 납품해도 오래간다 하는데 10년이나 우리 물건을 받아줬으니. 언젠간 졸업(일종의 퇴출)시켜 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준비가 없어 당황했어요." 한 곳에만 납품했던 터라 매출은 하루아침에 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HACCP 위생 기준에 맞추느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공장을 키웠기 때문이다. 몇 달간은 송장처럼 지냈다. 집안 소파에 누워 TV 소리를 듣기만 했다. 거리를 나섰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졌다. 겨우 살았다.

"퍼뜩 드는 생각은…. 살지 말자였어요. 도움도 기쁘지 않았어요."

◇산에서 삶을 얻다

시각장애인 동호회 등산 클럽을 찾았다. "어쩌면 동기가 불순했을지도 몰라요. 그냥 떨어져 죽자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오, 그런데 정신이 번쩍 나는 거예요. 나보다 나이가 굉장히 많으신 분도 펄펄 날아다니는 거예요. 그분들 따라가느라 아, 정말 죽을 뻔했다니까요. 하하.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행운이었어요.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무엇보다 등산을 도와주시는 산악 자원봉사자들한테 감동이었어요. 여기 디뎌라 저기 디뎌라, 나뭇가지 있다 하나하나 말씀 주시고.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자기 몸처럼 생각해주더라니까요."

마라톤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즈음이다. 거의 책상을 떠날 줄 몰랐던 그에게 마라톤이란 건 상상도 못했던 단어다. 어울려 활동하는 게 좋았다. '어울림'이란 단어가 그렇게 사무칠 수 없다.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하프 코스에도 도전해 3번 완주했다. 3년 전에는 싱가포르 마라톤 하프 구간에 청각장애인과 노란 끈을 묶고 함께 완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뭐랄까요. 외톨이로 있던 내가 사회에 묻혀간다는 느낌? 좋더라고요. 눈이 보였으면요? 더 타락했을 수도 있겠죠. 하하. 눈은 안 보일지 몰라도 몸은 더 건강해졌다니까요. 올해는 조선일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려고 해요."

좋은 일도 한꺼번에 온다. 비슷한 시기 이마트에서 노 대표의 커피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당시 가공식품 본부장이었던 최성재 상무(현 부사장)가 한 식당에서 마신 자판기 커피 맛에 반해 제조회사를 수소문한 게 발단이었다. "처음엔 사기인 줄 알았죠. 수십 군데 회사를 다니고 수백 번 노크했지만 벽이 높더라고요. 대형마트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어요. 그런데 먼저 전화가 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믹스 커피에서 인정을 받은 뒤 일회용 원두커피 스틱을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간 원두를 드리퍼에 내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캠핑용 제품이 특히 인기다. 그 외에도 웅진, 남양, 티젠 등 유명 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다. 한때 마이너스에 치달았던 매출은 22억원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에게 있어 돈이란 건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보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사람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에요. 2020년까지 장애인 1000명 고용하겠다는 목표도 세웠고요. 극복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기능이란 게 많지는 않지만 그간 살면서 받았던 걸 돌려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사람의 key word 3

나를 인정하라

시각장애인의 상징인 흰 지팡이를 짚는데 수십 개월이 걸렸다. 앞이 안보인다는 걸 드러내는 사회적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장애를 인정하고 나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점차 줄었다. 하나가 없어지면 하나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날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 있다.

유머로 하루를 시작하라

노 대표의 첫 인사는 "미인이시네요"였다. 상대를 기분좋게 하는 칭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은 버릇이 됐다. 눈동자를 마주치지 못해 느낄 수 없는 공감을 유머와 웃음으로 얻는다. 안보이니 의심이 많아지는데, 긍정적인 마음도 생겨난다.

어울려라

장애든, 부도든 불행이 닥쳐오면 처음 느끼는 것이 '소외'와 '외로움'이다. 끼워주지 않는다. 사회에서 배제된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라. 골방에서 나와라. 마음의 벽을 깨라. 몰입할 수 있는 걸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성취감도 따라온다. 운동도 좋은 해결책이다. 건강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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