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국내 최대 장난감박물관 '토이키노' 손원경 대표 "어른에게는 추억의 시간을 아이에게는 꿈과 창의성을"

입력 2015. 3. 11. 10:23 수정 2015. 3. 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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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더 이상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립식 모형 장난감인 프라모델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 상품의 70% 이상을 어른용으로 꾸미는 점포까지 등장했다. 장난감이 세대를 가리지 않는 놀이문화로 발전한 셈이다. 각종 장난감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가 3월 11일 개관한다. 서울 정동 경향아트힐 2층에 문을 여는 이 장난감 전시장에는 미키마우스부터 슈퍼맨 등 수만 점의 장난감과 포스터들이 가득하다. 단돈 몇백원짜리 문방구 장난감부터 한정판으로 제작된 고가의 작품까지, 손가락 크기의 피규어부터 사람 크기의 인형까지 장난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수많은 장난감을 수집한 이는 손원경 토이키노 대표(43). 손 대표를 만나 장난감에 얽힌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체 이 많은 장난감을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나요.

"제가 외동아들이라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갖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외국에 다녀오시면서 사다주신 장난감총과 장난감로봇은 물론 바비인형까지 다 모아두었습니다. 특히 성격과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 장난감에 매료되었는지 만화나 영화의 주인공을 캐릭터화한 장난감을 좋아했죠.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살았는데 그때부터 장난감 외에도 어머니가 신문 스크랩을 하시는 걸 지켜보면서 저도 따라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등의 기사를 오려 모으기 시작한 스크랩북이 초등학교 때 것만 10권이 넘습니다. 본격적인 수집은 중학교 2학년 때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가필드 고무인형을 사면서 시작됐어요. 당시에는 '수집가'라는 거창한 생각은 꿈에도 못했고 그냥 귀여워서 샀어요. 그 후 가필드 시리즈를 한 개 두 개 모으다가 미키마우스, 배트맨 등도 모으게 됐지요. 병원을 운영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시면 그 돈으로 장난감을 사모았는데 친구들에겐 창피해서 비밀로 했어요. 그 당시 제 또래 아이들은 프라모델 장난감을 좋아했었는데 남자아이가 인형을 사면 오해받을 것 같아서요."

왜 캐릭터 인형을 주로 수집했습니까.

"캐릭터 인형 수집이 제겐 좀 특별했어요. 행복했던 유년기의 회귀라고나 할까요.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에 단란하고 화목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흥선대원군 별장인 세검정의 '석파랑'에서 제가 태어났는데 할아버지는 고서 등을 수집하셨고 서예도 가르쳐주셨죠. 그런 따스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저에게는 장난감인 거죠. 중·고등학교 때는 간간이 장난감을 사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장난감 수집이 불붙기 시작했어요. 백화점과 수입상가, 청계천 도깨비시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구입했어요. 압구정에서 인테리어 소품 숍을 하시던 신 사장님이란 분이 계셨는데요, 저의 열정을 기특하게 보셨는지 미국에서 컨테이너로 물건을 들여올 때마다 캐릭터 장난감도 함께 실어 보내주셨습니다. 그 당시 그 가게에서 엄청나게 장난감을 산 기억이 납니다. 1998년 이후부터는 인터넷으로 미국에 직접 주문하거나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 취향의 장난감들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장난감을 모았습니까.

"30만~40만점 정도를 모았다가 너무 물욕 같아서 일부를 정리했습니다. 지금은 한 20만점쯤 됩니다. 고전 프라모델은 100% 정리했고 바비인형, BB탄총, 직소퍼즐 등도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나중에 은퇴하면 퍼즐이나 하고 살아야지 싶었는데 제 성격상 은퇴 안 하고 뭔가 계속 일하고 있을 것 같아 떠나보냈습니다."

40만여점의 장난감을 모으려면 돈도 엄청 들어갔을 텐데 무슨 돈으로 모았나요.

"전 대학에 들어간 19세 때부터 돈을 벌었습니다. 첫 전공과목이 시각디자인인데 광고대행사를 하는 어머니를 도와 자료와 정보를 모으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대학도 마음에 드는 전공을 이것저것 고르다 11개 대학을 다녔고 5개 대학에서 학위를 땄어요. 카메라를 5대 구입하고 VJ를 고용해 방송작품을 만들어 케이블 방송에 납품하는 일도 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과 상업 영화 프로듀싱도 했는데, 지금도 제가 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 대학교 시간강사나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장난감을 수집했습니다. 2005년 서울 삼청동에 '토이키노'란 장난감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유료 관람객이 32만여명이었습니다. 경기도 헤이리에서도 장난감 박물관을 운영했고, 신세계·현대백화점 등에서 전국 순회 전시도 했죠. 그렇게 번 돈을 대부분 장난감 구입에 썼습니다. 다들 대체 그 비용이 얼마 정도인지 궁금해하는데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어 말씀드리기 싫습니다. 뭐 수십억원은 될 거예요."

너무 속물스러운 질문입니다만 그 돈으로 강남 부동산에 투자했으면 부자가 되었을 거란 생각은 안했나요.

"재테크라기보다 제대로 된 장난감 박물관을 짓기 위해 부암동에서 빌라 사업을 했다 망했습니다. 저와 부동산은 인연이 없나 봐요.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장난감들이 제 재산입니다. 팔 것은 아니지만요."

즐거워서, 행복해서 하겠지만 장난감 수집에 어떤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시대마다 그 시기를 대표하거나 유행했던 물건들이 있습니다. 옷과 신발, 장인이 만든 가구와 그릇, 유명 작가의 책과 음반 등등.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들을 쓰다가 버리곤 합니다. 이런 것들을 단순히 생필품으로 보기 때문이죠. 반면 수집은 그림과 같은 예술품이나 골동품에 국한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집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역사적 관점에서,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들이 등장한 겁니다. 장난감도 그런 수집품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장난감 수집은 왜 뒤늦게 부각되었을까요. 인류는 오랫동안 성인들에게 어린 자아를 숨기도록 강요해왔습니다. 어른답게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식이었지요. 혹자들은 장난감 애호가들을 '피터팬 증후군', '키덜트', '오타쿠' 등 다양하게 부릅니다. 장난감 수집가들을 마치 어른이 되길 두려워하는 피터팬처럼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장난감을 가까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요. 장난감은 하나의 물건에 불과합니다. 터부시하거나 특이하게 보는 게 더 이상하고 우스운 일입니다. '만화책 보지 말아라''공부해야지 무슨 영화냐' '사내자식이 옷에 무슨 관심을 갖냐'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억압입니다. 개인의 감각, 센스를 사회가 차단해버리는 것이지요. 전 부모님이 이혼한 후 방임되어 키워진 덕분에 그런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제게 장난감 수집은 동심의 회복, 감각과 안목 키우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게 장난감은 진시황의 병마들 같은 존재들입니다. 저를 지켜주는 군사들이죠."

장난감 수집에만 너무 몰두하다 보면 친구들도 없고, 사회생활도 힘들 것 같은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 더 풍성하고 풍요로워집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교류하기도 하고, 장난감을 구입하기 위해 일도 더 열심히 합니다. 해외에 출장을 가도 시간만 생기면 장난감을 사러 돌아다니죠.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런던 같은 대도시에 가면 꼭 장난감 가게에 들르곤 합니다. 작년에 모스크바 영화제 때문에 방문했던 러시아가 생각납니다. 사실 장난감이 많을 거란 기대를 별로 안했는데 막상 돌아다녀 보니 예쁜 인형과 장난감이 너무 많아 정말 눈이 뒤집힐 정도였습니다. 장난감은 대부분 영화나 만화 주인공이고, 그것들은 우리 시대나 사회상을 반영하는 주인공들이라 역사 공부와 사회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39세에 결혼했는데 미술 큐레이터인 아내가 제 장난감 박물관을 보고 반한 결과죠. 또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아들과 함께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요즘은 아들을 기준으로 장난감을 고르고, 버리고를 선택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 특히 이렇게 광적으로(?) 수집하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많습니다. 손 대표도 그런 시선이나 비아냥을 받지 않았나요.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성격이었으면 이 정도까지 못 왔을 겁니다. 전 제 자신이 제일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거나 그걸로 어떤 만족을 얻을지는 전적으로 제 자신의 행복이 판단 근거입니다. 제 대학 동기모임 중에 소위 '잘나가는 애들' 모임이 있습니다. 간만에 도산공원 쪽의 자갈밭이 있는 멋진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다들 양복 빼입고 BMW 같은 고급차를 끌고 오더군요. 저는 그냥 지금처럼 스니커즈에 저렴한 백팩 가방 메고 장난감을 한 보따리 사서 나타났죠. 그런 제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고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족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스스로 재밌어서 이렇게 수집을 하고 있고, 또 그렇게 계속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을 통해서 충분히 사업화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집품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장난감 박물관을 만든 이유는 뭔가요.

"우선 제 행복과 기쁨을 남들에게도 나눠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번에 연 박물관은 1관과 2관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1관은 키즈존(kids zone)으로 전 세계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국내 고전 장난감, 2관은 키덜트존(kidult zone)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종 슈퍼히어로 캐릭터들과 함께 스포츠 선수들의 피겨, 액션피겨가 전시됩니다. 전시장에는 관련 포스터가 함께 전시되어 장난감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과거 시간을 거슬러 70년대 학교 앞이나 동네 문방구에서 아이들이 즐겨 찾던 오래된 장난감부터 오늘날 다양한 TV 방영물,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등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추억은 오늘날 새로운 문화적 소비와 생활 밀착형 콘텐츠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죠.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 아이들에게는 꿈과 창의성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와서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장난감 캐릭터가 주인공인 만화나 영화 이야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 다시 그 주제를 찾아보거나 영화를 다시 감상할 수도 있는 공감과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동 토이키노 박물관에서 아카데미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우리 회사 이사 가운데 미술교사 출신이 있는데 '장난감 아저씨와 미술 선생님이 함께하는 장난감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 소양과 콘텐츠가 풍부하면 장난감을 주제로도 얼마든지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다른 계획도 있나요.

"우선 장난감 박물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많은 장난감 수집가들과 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해서 각 지역마다 장난감 박물관을 만드는 거죠. 곳곳에 문을 닫은 폐교, 파출소, 동사무소 등이 있는데 그걸 활용하면 현지 주민만이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볼거리가 되고 명소가 되지 않을까요. 또 앞으로 장난감의 역사에 대해 꾸준히 써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장난감일지라도 그 속엔 많은 역사가 숨어 있거든요. 장난감과 별개로 캐릭터의 역사도 정리해보고 싶어요. 제 수집품의 대부분이 캐릭터 장난감이거든요. 캐릭터의 탄생 일화와 영화와 만화 속에 녹아든 한 캐릭터의 변천사들을 장난감 이미지와 함께 집필해보고 싶어요. 1년에 3권의 책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요즘 인기인 아이언맨부터 1928년 월트 디즈니가 처음 만든 미키마우스 인형까지 손원경 대표가 수집한 장난감은 다채롭고 다양하다. 장난감 하나 하나를 보다 보니 장난감의 역사가 아니라 그 장난감이나 캐릭터를 봤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인형 하나를 선물받고도 매우 행복해서 가슴이 벅차오르던 시절, 동화의 주인공이 불행해지면 따라 울던 순수한 시절…. 우리가 정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동안'(童顔)이 아니라 이렇게 순수했던 '동심'(童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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