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의 연인' 레부엘타, 세상을 떠나다

장은교 기자 2015. 3. 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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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장례식은 조촐히 치러

"그 사람이 나보다 혁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원망한 적은 없어요. 그래도 그를 내 마음속에서 지워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연인이자 혁명동지인 나탈리아 레부엘타(89)가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났다. 외신들은 그가 폐기종을 앓다가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장례식은 가족들과 소수의 지인만 참석한 채 조촐하게 치러졌다. 레부엘타는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말했다고 지인은 전했다.

나탈리아 레부엘타(왼쪽)·피델 카스트로

레부엘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천주교 재단 여학교를 다녔고 워싱턴의 머조리 웹스터 칼리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쿠바로 돌아왔다. 아바나의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레부엘타는 22살에 20살 연상의 심장병 전문의와 결혼했다. 레부엘타는 딸을 낳고 평탄하게 사는 듯 보였지만, 늘 일에 빠져 사는 남편과 지루하기만 한 파티를 쫓아다니는 삶에 지쳐있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금발에 초록색 눈을 가진 레부엘타는 '등장'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인이었다. 1952년 시위현장에서 레부엘타를 만난 카스트로는 화려한 외모와 지성미를 갖춘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카스트로는 지인을 보내 만남을 청했고, 이후 레부엘타의 집은 카스트로가 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아지트로 활용됐다.

레부엘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카스트로의 혁명을 도왔다. 저축한 돈을 몽땅 혁명자금으로 보탰고,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등 보석도 전당포에 맡겼다. 혁명전사들이 입을 옷을 만들고, 혁명선언문을 언론사에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1953년 카스트로가 감옥생활을 할 때 레부엘타는 편지와 책으로 그를 위로했다. 카스트로가 좋아하던 해변을 떠올릴 수 있도록 편지봉투에 모래를 담아 보내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1954년 옥중에서 보낸 편지에 "당신의 편지 없이는 살 수 없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유부남이었던 카스트로는 출소 후 1955년 부인과 이혼하고 레부엘타와 연인관계가 됐다. 레부엘타는 카스트로의 아이를 가졌지만, 혁명준비를 위해 멕시코로 떠나는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 멕시코로 와서 결혼하자는 그의 청도 거절했다. 이듬해 태어난 딸은 12살이 돼서야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됐다.

1959년 혁명이 성공한 뒤 레부엘타는 잠시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꿈을 꿨지만 카스트로는 그녀를 멀리했다. 그해 레부엘타의 남편은 그녀와 이혼하고 자신의 딸을 데리고 떠났다. 카스트로와 레부엘타의 딸은 1993년 미국으로 망명해 마이애미에서 살다가 지난해 8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21년 만에 재회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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