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얼굴도 돌아서면 까먹어 .. 울면서 만화 그렸지요

정아람 2015. 3. 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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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컷'배진수 작가얼굴 억지로 다르게 그리려 하니기괴해진 캐릭터, 그게 되레 통해IQ 156 멘사 회원? 육감 둔해요독자 기대치 커져 부담스러워가리지 않고 많이 읽는 활자중독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장르 도전

1995년 고등학생이던 배진수(37) 작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 학년이 되면 같은 반 친구들은 몇 주, 늦어도 몇 달 안에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배 작가는 한 학년이 끝날 때까지 같은 반 친구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애써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위로했다. 대학생 시절 그는 1년 넘게 군대 생활을 같이한 후임을 제대 후 만났다. 그런데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안면인식장애'였던 거다.

 "웹툰 작가라면 얼굴을 그리는 일이 주업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얼굴을 인식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분명 처음에는 멀쩡해 보였던 얼굴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보면 달라져 있더라고요."

 눈썰미는 고사하고 타인의 얼굴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 그리는 만화.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작가는 30살이 넘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작가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은 셈이다.

 실제로 배 작가의 만화는 기교적으로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콘텐트와 형식이 돋보인다. 데뷔작 '금요일'에서는 놀라운 반전으로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연재 중인 '하루 세 컷'은 형식을 파괴해 이야기를 단 세 컷으로 압축했다.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서사 구조에서 '승'을 생략해 군더더기를 최소화한 것이다. 뒤늦게 웹툰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배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남들보다 뒤늦게 만화를 시작했는데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평생 이 일을 하면 과연 행복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문득 어렸을 때 꿈이었던 시나리오 작가가 떠올랐어요.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에는 재능이 부족하고, 시나리오를 만화로 옮기면 어떨까 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 처음에는 고생이 많았겠어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어려움이 많았어요. 울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 맞을 거예요. 낮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피자 배달을 하고 새벽에는 병원 야간 경비를 서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 2012년 드디어 네이버 웹툰 '금요일'로 데뷔했는데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물론이죠. 남들보다 늦은 서른넷에 어렵게 데뷔하기도 했지만, 웹툰 '금요일'은 안면인식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담긴 작품이에요. 억지로 얼굴을 다르게 그리려다 보니 점점 인간의 이목구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해지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기괴한 분위기가 현실 비판적인 '금요일'과 잘 어울리면서 제 만화의 특징이 됐습니다."

 - 안면인식장애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사물 기억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취약하다 보니 당연히 고민일 수밖에요. 셀카를 찍어 다양한 표정을 그려보는 등 수없이 노력했어요. 그래도 다른 작가들에 비해 실력 향상이 더딜 수밖에 없더라고요."

 - 장애를 뛰어넘는 작가로서의 강점이 있나요.

 "일단 뭐든 가리지 않고 많이 읽는다는 게 저의 장점이에요. 활자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즐깁니다. 이러한 습관은 창작하는 직업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심지어 더 쉽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 IQ 156인 멘사 회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로 인한 장점은 없나요.

 "단순히 '머리가 좋다'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오체와 육감이 모두 둔한 편이에요. 장점과 단점을 평균내면 특별한 게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멘사 회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자들의 기대치가 커져 부담스러웠던 적이 많습니다."

 - 연재 중인 웹툰 '하루 세 컷'은 세 컷짜리로 형식이 독특한데 탄생 배경이 있나요.

 "그림 실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어떻게 하면 차별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나름 시장 조사한 결과, 만화의 플랫폼이 휴대전화로 이동했고 소비자들이 직관적이고 가벼운 콘텐트를 선호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스낵 같은 만화를 그리고자 했어요."

 - 앞으로 그리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아직은 모든 장르를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금요일' 같은 작가주의 작품도 했다가 '하루 세 컷' 같은 독자 편의 작품도 하면서 방향을 고민하고 있거든요.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장르에 많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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