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 할머니의 초등학교 입학식, "선생님 될거에요"

박정현 기자 2015. 3. 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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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이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열심히 배워서 저처럼 못 배운 사람들 가르치고 싶어요."

3일 오전 양원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린 마포구 염리동 마포아트센터. 분홍색 모자를 쓴 김말순(90) 할머니가 무대에 올라 인사하자 관객석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아흔살인 김 할머니는 올해 전국 초등학생 신입생 가운데 '최고령자'다. 50~80대 학생들이 모인 양원초등학교 내에서도 왕언니인 셈이다. 양원초는 50세 이상 만학도를 대상으로 하는 4년제 초등학교로 이날 350명의 신입생을 받았다.

이 학교 이선재 교장이 "할머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하고 묻자 김 할머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올해 아흔살입니다"를 외쳤다. 관객석에 앉은 할머니 신입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김 할머니는 "못 배운 게 평생 한이 되어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며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 열심히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학교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워낙 엄격했던 탓에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 집에서 세 골목만 내려가면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한 번도 못 가봤어. 결혼해서 아들 셋, 딸 하나 낳고 손주들까지 학교 보내고 살다보니 대학 나오고 배운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

김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을 돕기를 좋아하고 열정이 넘치는 성격이다. 결혼 이후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고, 동네 산모들의 아이도 많이 받았다. 교회에서 시신 염습을 한 적도 있고, 간병인이 되고 싶어 자격증도 땄다. 그는 "미국에 시집간 딸을 보러 놀러 가서도 한 달간 가사 도우미 자리를 구해 돈을 벌었다"며 "요즘에는 책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앞으로 양원초 교사들처럼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내가 직접 원하는대로 글을 써서 책을 내보고 싶어. 그리고 나처럼 못 배운 사람들에게 도움 줄 수 있게 가르치고 싶어."

김 할머니는 4일부터 양원초 1학년 8반에서 신입생 생활을 시작한다. 김 할머니는 "학교에서 '2015년 3월 3일 오전 10시 마포아트센터'라는 쓰인 입학식 안내장을 미리 나눠줬는데, 그저께 집에서 앉아서 네 번을 베껴 써봤다. 그거 조금 쓰는데도 아주 힘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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