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저고리'로 사랑의 대물림을 만드는 사람들

이경숙|백선기 기자|이로운넷 에디터 2015. 2.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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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 사회적 경제의 현장]협동조합 바늘한땀과 마을기업 이야기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백선기 이로운넷 에디터] [[쿨머니, 사회적 경제의 현장]협동조합 바늘한땀과 마을기업 이야기]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서울시 불광동의 한 작은 공방에 한 젊은 여성이 외국인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이 공방이 미혼모의 아기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만들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며 "곧 아이를 입양할 텐데 배냇저고리 한 벌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여성은 한국 출신 입양아였다. 함께 온 미국인 남성은 그의 약혼자였다. 그가 청혼했을 때 여자는 수락의 조건으로 '한국 여자아기를 입양하는 것'을 내걸었다고 했다.

자기와 같은 처지의 한국 아기를 입양해 자신이 양부모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물려주고 싶었던 그가 찾아온 공방은 마을기업 '바늘 한 땀 협동조합(이사장 곽경희)'이다.

이곳 조합원들은 해마다 200벌을 동방사회복지회, 구세군,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기증하고 있다. 그렇게 기증된 배냇저고리가 1천여 벌이 넘어선 지난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자원봉사로 하던 일이 조합원 일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끝까지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 대신 메시지 전하는 봉사자들

매월 둘째 주 화요일, '바늘 한 땀' 공방에는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인다. 미혼모가 낳은 아기한테 입힐 배냇저고리를 짓기 위해서다.

재능기부자인 이숙 씨는 "이 일을 시작한 후 애들이 엄마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며 "부모로서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고 저도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애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존경심 어린 그 눈빛이 자기를 이곳으로 이끌고 있단다.

이들은 단순히 저고리만 짓는 것이 아니다. 엄마를 대신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적어 보낸다. 입양 보내졌던 아기가 먼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래도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 어른으로서 끝까지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 잘 성장해주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이 거기에 담겼다.

◇3명에서 20명으로...한 땀 한 땀 엮어낸 관계의 힘

이들의 봉사는 우연히 시작됐다. 30년 경력의 한복 짓기 전문가인 곽경희 이사장이 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 한 교수로부터 미혼모들에게 배냇저고리 만들기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솜씨 좋은 친구들' 세 명과 함께 미혼모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던 어느 날, 한 미혼모는 배냇저고리를 완성한 후 그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입양 보내는 아가에게 엄마로서 저고리 한 벌이라도 입혀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면서. 많은 미혼모가 배냇저고리를 짓다가 마음을 돌렸다. 입양을 보내는 대신 자신이 키우기로 결심했다.

배냇저고리 만들기는 주변 사람들의 변화도 만들었다. "언니 애나 잘 돌보라고 흉보던" 여동생도, 은평구청에서 배냇저고리 만드는 법을 가르쳤던 수강생들도 봉사에 동참했다.

자원봉사자는 20여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형편이 어렵거나 혼자 지내는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100여 벌의 수의를 지어 전달했다. 그러던 중 곽 이사장이 사회적 기업에 대해 눈을 뜨면서 마을기업을 알게 됐다.

"바로 이거다 싶었죠. 제가 꿈꾸는 일들은 혼자서는 하기 힘들거든요. 봉사자들과 의기투합해 마을기업을 꾸렸어요."

◇"바느질로 미혼모·어르신 일할 기회 만드는 게 꿈"

이들의 활동은 지난해 국민추천포상 행정자치부장관 표창과 대한민국 세종대왕 나눔 봉사대상을 받았다.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면서 재능기부로 시작한 지역사회 공헌 활동이 일자리 창출과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올해 들어 이들은 한국 전통 문양과 바느질 기법으로 앞치마, 상보, 바늘꽂이 등 일상 용품을 만들어 올해부터 전국 320개 홈플러스 매장에 판매할 수 있는 길을 뚫었다. 지난 설 명절 전엔 3주 동안 부천 홈플러스 상동점에서 상품을 팔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의 꿈은 바느질 공방을 통해 어르신, 미혼모, 여성가장들에게 일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곽 이사장은 "4월쯤에는 산전 미혼모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쳐 함께 배냇저고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산 후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배울 여유가 없어요. 미리 바느질을 가르쳐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일자리를 마련해주려고요. 자립해야 하는데 미혼모들은 여건 상 취업하기가 힘들잖아요."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되는 아기들의 90%는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양 문제를 푸는 첫 단추는 미혼모 문제 해결이지만, 정부의 지원은 부족하고 사회 편견 역시 높아 미혼모의 홀로서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 10여 년 동안 스스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양육 미혼모'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10년 국회입법사무처 조사에 따르면 양육 미혼모의 숫자는 2005년 1968명에서 2009년 2491명으로 26.6%가 증가했다. 미혼모는 10대 청소년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곽 이사장과 조합원들의 시도가 이들에게 아기와 함께 살아갈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바늘 한 땀 한 땀마다 변화의 물결이 일렁인다.

[팁]마을기업이란?

마을기업이란, 마을공동체에 기반을 둔 기업 활동을 뜻한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동적 관계망에 기초해 주민의 욕구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적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마을기업을 "민주적 운영과 협동조합의 원리에 기초해 마을주민이 주도적으로 지역의 특성화된 자연· 인적자원, 가공 제품, 문화 등 유·무형의 각종 자원을 활용해 안정적 소득 및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행정자치부로부터 지정 받은 마을기업은 지자체를 통해 2년여 동안 사업비, 교육, 컨설팅 등 육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각 지자체의 사회적경제과나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통해 상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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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기자 kslee@mt.co.kr, 백선기 이로운넷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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