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처럼 의지하며 공부..학사모 쓴 70代 두 학생

정경화 기자 2015. 2.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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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경기도 성남 가천대 졸업식장. 머리가 희끗희끗한 두 학생이 학사모를 쓰고 활짝 웃었다. 고희(古稀)에 가천대 경영학과(야간) 11학번으로 입학해 이날 졸업한 늦깎이 학생 유정자(여·74)씨와 제광웅(73)씨였다. 제씨는 쉰 살쯤 어린 동기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으며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라고 말했다.

두 만학도(晩學徒)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진학을 포기했다가, 어렵게 자수성가해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됐다는 것이다. 유씨는 경기 화성시 차량용 냉동기 제조 업체 '화성T&T'를, 제씨는 경기 광주시 주방 세제 제조 업체인 '웅진산업'을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더 공부해보고 싶은 열망이 쌓였지만, 자녀를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두 사람에게 쉽지 않았다. 매일 수업 시작하기 2~3시간 전 등교해 함께 예습·복습을 했지만 첫 학기 성적은 둘 다 4.5점 만점에 2점대에 머물렀다. 특히 영어로 된 전문 용어나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유씨는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교 정문 앞에서 차를 돌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학생이니 손에 물도 묻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남편이 응원해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유씨는 대학생에게 수학 과외도 받고 영어 학원도 다녔다.

제씨도 "경영수학이나 금융투자론 수업을 들을 때는 머리에 쥐가 났다"며 "2학년 때까지 학교를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제씨에게 3학년 1학기 지성학 강의 시간이 전환점이 됐다. 어느 날 강사가 제씨에게 "선생님은 누구세요?" 묻기에 "학생입니다" 하고 답했다. 늦게 대학에 입학한 사연을 이야기하자 학생 650명이 '멋지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후 제씨는 '나도 진정한 대학생이 됐다'는 생각에 공부 의지를 다졌다고 했다. 마지막 학기 제씨는 중국경제학 수업에서 1등을 했다.

그동안 서로 격려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해온 두 사람은 평점 4.5점 만점에 유씨 3.7, 제씨 3.4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유씨는 "20대에 대학에 다녔다면 절실함이 없어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배운 것을 경영에 접목하는 재미를 알게 돼 내친김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졸업장을 받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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