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본사도 반한 '예스맨' 청각장애인

입력 2015. 2. 25. 03:07 수정 2015. 2. 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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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 알바로 시작.. 성실-친화력에 본사 정규직원 오른 최정일씨

[동아일보]

최정일 씨가 자신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던 세븐일레븐 종로인사점 앞에 서 있다. 청력장애 5급인 최 씨는 현재 이 점포를 비롯해 편의점 15곳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노(No)보다는 예스(Yes)를 외치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하도를 걷다가 친구가 부르는데 갑자기 들리지가 않는 거예요."

그때 최정일 씨(33)의 나이는 14세였다. 청력 장애는 소년의 삶을 예고 없이 덮쳤다. 9년 전 트럭에 치인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다. 정확히는 '언어청력장애'. 사람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현상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보청기도 끼지 못했다. 보청기는 한쪽에 300만 원이 넘었다. 수업 내용을 조금이라도 잘 듣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마저도 안 들리면 선생님의 입 모양만 바라봤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집안 사정도 걸림돌이었다. 최 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일부러 메뉴판의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받았다. 목소리는 남들의 두 배였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일한 지 3개월째 됐을 때 그는 정직원이 됐다. 월급은 고스란히 자신보다 각각 8세, 12세 어린 두 동생을 챙기는 데 쓰였다. 2006년에는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오후 3시까지 일한 뒤 학교에 가 밤 12시가 넘어 집으로 오는 생활이었다.

"2008년이었어요. 가게 사장이 여직원을 성희롱한 것을 따지다 다툼이 있었죠. 그러고는 일을 그만뒀어요. 이후 다른 곳에서 일할 때마다 3개월을 못 버티겠더라고요. 아침에 알람소리를 잘 못 듣는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기도 하고…. 나태해졌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난다면 차라리 '낮밤을 바꿔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2010년 5월 편의점 세븐일레븐 종로인사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낮에는 전단을 돌렸다. 타고난 성실성과 붙임성이 살아났다. 주변 상인들은 어느새 단골이 됐다. 점포 사장은 그에게 '월급쟁이 점장'을 맡기며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을 관리하게 했다. 그러고는 "귀 때문에 불편하지 않으냐. 돈을 빌려줄 테니 보청기를 착용하라"고 말했다. 거금 700만 원을 선뜻 건넸다. 최 씨는 그 돈을 100만 원씩 일곱 달 동안 갚았다.

"29세 때 처음 보청기를 꽂았어요. 신기했죠. 이렇게 잘 들릴 수 있다니, 나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긴 것 같았어요."

야간 근무를 하루도 빼먹지 않은 성실성과 아르바이트생들을 관리하는 통솔력, 그리고 주변 상인과 가족처럼 지내는 친화력까지. 소문은 본사에까지 들어갔다. 세븐일레븐은 그에게 인턴사원에 지원할 것을 권유했다. 최 씨는 2013년 5월 인턴사원이 됐고 넉 달 후 정규사원이 됐다. 현재 그의 소속은 영업팀. 종로구 일대 점포 15곳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가 관리하는 점포 중에는 그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던 점포도 있다.

최 씨는 돈을 벌기 시작한 14년 전부터 저축을 거른 적이 없다. 100만 원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귀가 안 들렸을 때나 지금이나 타인의 도움을 안 받는다. 돈을 아껴 빚을 갚았고 두 동생을 돌봤다.

"부잣집 아들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철들지 않았겠죠. 지금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도 모두 저에게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죠."

그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는 희망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는 또래에게 "노(No)보다는 예스(Yes)를 외치며 일단 부딪쳐라"고 말한다.

"찾아보면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일단 해보는 거죠. 누구나 부족한 점은 있어요.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끼고, 저는 청력이 좋지 않으니 보청기를 끼고, 그렇다고 그게 큰 문제는 아니잖아요?"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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